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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外 시간여행·문학 기행기

'박정희 우표' 판금…

by 까망잉크 2018. 12. 8.

 

[김명환의 시간여행] [133] 6대 대선 때 DJ 항의로 '박정희 우표' 판금… 대통령 취임 우표, 직전 발행량 2배 찍어

="박정희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우표는 대선 기간 중 판매 금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제6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둔 1967년 4월 초 김대중 당시 신민당 대변인이 중앙선관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3월의 서독 대통령 방한 때 박정희와 뤼브케 두 대통령 얼굴을 넣어 발행한 기념우표를 대선 기간에도 계속 판매하는 건 현직 대통령 재선을 돕는 홍보 아니냐는 항의였다. 박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한 때였지만, 중앙선관위는 뜻밖에도 DJ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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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이승만 대통령 80회 탄신 기념우표’(1955년), 제6대 대선 기간 중 판매 금지된‘뤼브케 서독 대통령 방한 기념우표’(1967년). 역대 최다인 1100만장 발행된‘전두환 12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1981년).
선관위는 문제 된 우표와 담배를 선거 기간 중 판매 금지해 달라고 정일권 총리에게 공식 요청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매우 타당한 결정"이라며 "중앙선관위가 행정부의 '산하기관'인 것처럼 무기력했던 지난날의 기우를 일소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칭찬했다(1967년 4월 9일자). 결국 며칠 뒤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우표와 담배를 선거 기간 중 판매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상 외교 기념우표의 본질 중 하나가 집권자의 치적 홍보 수단이라는 걸 정부가 사실상 인정한 셈이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엔 현직 대통령이 기념우표에 얼굴을 내미는 일이 너무 잦았다. 윤보선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 취임 때마다 우표가 나왔다. 제1공화국 땐 이승만 대통령의 80회, 81회 탄신 기념우표도 발행했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대엔 해외 순방이나 외국 국가원수 방한 때마다 꼭 우표를 찍어냈다. 전두환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기념우표는 무려 47종이나 발행돼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온 국민 집집마다 전두환 대통령 우표 몇 장씩은 굴러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이하게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의 발행량은 이전 취임식 때의 2배쯤으로 늘린 경우가 꽤 많았다. 1963년 박정희 5대 대통령 취임 때의 우표는 50만장인데 6대 때는 100만장, 7대 땐 200만장으로 뛰었다. 박 대통령의 마지막 임기였던 9대 취임 때의 우표는 350만장이나 됐다. 이에 질세라 1980년 전두환 11대 대통령 취임 때는 9대 때의 2배인 700만장을 발행했다. 12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 땐 역대 최다인 1100만장을 발행했다. 얼마나 많이 찍어냈던지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고 전두환씨는 구속 중이던 1996년 1월에도 '전두환 대통령 취임' 우표가 붙은 편지가 가정에 배달됐다. 이를 받은 시민이 "아니 어떻게 이 우표가 아직도 유통되느냐"고 언론사에 제보해 가십 기사로 보도되는 해프닝도 있었다(경향신문 1996년 1월 17일자).

민주화 시대의 대한민국은 현직 대통령 얼굴을 우표에 자주 싣던 후진국형 관행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작년의 취임 100일 우표에 이어 최근 남북 정상회담 우표에 대통령 얼굴을 또 넣어 독재의 유산 아니냐는 비판을 불렀다. 이 우표 판촉을 위한 홍보물까지 대량 발송돼 '치적을 홍보하려는 과잉 충성'이란 지적이 일었으나 우정사업본부는 전면 부인했다. '서독 대통령 방한 우표는 대선용'이라는 야당 공세에 굴복해 우표를 거둬들였던 50년 전 정부가 차라리 솔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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