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명환 外 시간여행·문학 기행기

'복장 불량' 학생 단속

by 까망잉크 2018. 12. 14.

[김명환의 시간여행] [76] 대학 교문에서 '복장 불량' 학생 단속 "미니스커트, 강사의 강의 방해"

주장도

 

 

이 학교 교문 앞에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용모·복장 불량 학생' 단속이 이어졌다. 중·고등학교 이야기가 아니다. 1971년 9월 중순 H대 캠퍼스 풍경이다. 단속에는 학생회 임원이 총동원됐다. 장발 남학생은 즉석에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여학생의 경우 초미니스커트, 핫팬츠, 판탈롱 착용을 단속했다. 총학생회 측은 '오후 늦게 등교하는 학생 중에 복장 불량자가 더 많다'며 저녁 8시까지 교문을 지켰다. 언론은 대학 학생회 간부들이 '고등학교 기율부원처럼' 서 있었다고 표현했다(경향신문 1971년 9월 16일자). 경찰이 미니스커트 여성을 붙들어 30㎝ 자로 치마 길이를 재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그 거친 통제 방식을 대학 학생회도 따라 했다. 1972년 3월 15일부터 부산 D대학 교문에서도 학생회 간부들이 교복 안 입은 학생을 불러세워 되돌려 보냈다. 학생회 측은 "단속을 벌인 지 한 달 만에 재학생 82%가 교복을 입는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1971년 가을 고려대 학생 40여 명이 이화여대 앞에서 벌인‘여대생들의 사치 배격’시위(왼쪽 사진·조선일보 9월 29일자)와 1961년 숙명여대 캠퍼스를 메운 교복 차림의 여대생들(경향신문 6월 1일자).
1971년 가을 고려대 학생 40여 명이 이화여대 앞에서 벌인‘여대생들의 사치 배격’시위(왼쪽 사진·조선일보 9월 29일자)와 1961년 숙명여대 캠퍼스를 메운 교복 차림의 여대생들(경향신문 6월 1일자).
대학생 복장 규제는 광복 직후부터 있어 왔다.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6월 1일 문교부는 '혁명정신에 입각한 청신한 기풍과 질서의 확립'을 내세워 모든 대학생에게 제복을 입으라고 지시했다. 그해 여름, 캠퍼스와 거리에서는 흰색 상의와 검정 치마의 여대생 교복이 물결쳤다. 여대생 교복은 1967년을 전후해 폐지되기 시작했지만, 그 대신 단정한 느낌의 '통학복'이라는 게 여러 디자인으로 등장해 한동안 '강력 권장'됐다. 1970년 11월 숙명여대는 '유행에 민감한 사치스러운 복장이 캠퍼스 내에 침입'했다며 '통학복 정비 운동'을 펼쳤다.

대학생 복장 규제가 거론될 때마다 주요 타깃은 늘 여대생이었다. 호화 의상, 장신구, 하이힐이 사치와 겉치레의 상징처럼 도마에 올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71년 9월 28일 낮 12시 30분에는 고려대 학생 40여 명이 이화여대 앞에 갑자기 몰려와 '여대생들 사치 풍조'를 성토하는 시위를 벌였다. 고대생들은 '하이힐 벗고 단화를 신어라' '달랑거리는 핸드백을 내던지고 두툼한 책가방을 들어라'는 등의 내용이 적힌 유인물을 이대생들에게 나눠줬다(조선일보 1971년 9월 29일자). 이에 대해 이대 학생회장단은 "우리도 사치 배격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렇게 극단적 방법으로 성토하는 것은 몰지각한 짓"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화려한 여대생 옷차림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사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학생 옷이 너무 알록달록하면 교수님이 강의할 때 피로를 느낀다", "여학생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 젊은 강사들은 강의 진행을 못 한다"는 주장이 여학생들에게서 제기되기도 했다.

이젠 대학교 교문에서 복장 검사를 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아는 사람조차 드문 시대가 됐다. 지난달 어느 여대가 교내 축제 때 ▲민소매 ▲크롭티(배꼽이 살짝 드러나는 티셔츠) ▲오프숄더(어깨를 드러낸 옷) ▲지나치게 짧은 치마 ▲딱 달라붙는 의 상의 착용을 금지하자 일부 여학생이 '성차별' 아니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남자들은 웃통을 벗어도 문제 삼지 않으면서 여자가 몸을 드러내면 선정적이라고 보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반세기 전 어느 여대생이 "우리가 차분한 교복을 입는 게 교수님이 강의할 때 좋을 것"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갑자기 까마득한 선사시대 일처럼 느껴진다.

'김명환 外 시간여행·문학 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트리킹'(나체 질주)  (0) 2018.12.19
극장서 애국가…   (0) 2018.12.17
'이승만 대통령 5초 영상'  (0) 2018.12.12
'박정희 우표' 판금…  (0) 2018.12.08
'낯선 이와의 同乘'  (0) 2018.12.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