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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外 시간여행·문학 기행기

해장국 골목 점령

by 까망잉크 2018. 12. 31.

 

[김명환의 시간여행]  밤샘 '고고族'들, 해장국 골목 점령… 애인 다툼 난투극에 반나체쇼까지

오피니언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1975년 4월 28일 서울시가 "오늘부터 매일 오전 4~6시 남산공원 앞 광장의 차량 통행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통금이 있던 시절이니, 광장엔 한밤중부터 동틀 무렵까지 차가 못 다니게 한 것이다. 이 조치는 남산공원 안의 소(小)동물원(2006년 철거)에서 생활하는 원숭이, 꽃사슴 등 130여 동물의 '수면권'을 지켜주려는 고육지책이었다. 당시 고고춤 열풍이 불면서 클럽에서 밤새워 놀던 남녀가 새벽 4시에 통금 풀리면 쏟아져 나와 택시나 승용차로 남산공원 부근 해장국집으로 몰려와 남산의 고요를 깼기 때문이었다. 서울시는 "종일 관객들에게 시달리고 잠자던 동물들이 차량 소음으로 깨어나는 일이 많아 할 수 없이 통금 조치를 취했다"고 이해를 구했다.

“야근 마친 직장인들이 즐겨 찾던 새벽 해장국 골목이 고고 붐이 일면서 여인들로 붐비기 시작했다”고 보도한 신문기사(조선일보 1972년 3월 25일 자).

70년대의 고고 열풍은 도심 동물원 동물들에게까지 고통을 안길 정도로 극성스러웠다. 상당수 클럽은 통금 시간에도 셔터만 내린 채 밤새 불법 영업을 했다. 1974년 외국인용 시설로 심야 영업을 허락받은 관광호텔 나이트클럽 28곳의 출입자를 조사해 보니 95%가 내국인 청소년이었다. 탈법 철야 영업은 마침내 참사로 이어졌다. 1974년 11월 3일 오전 2시 47분쯤 일어난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때 사망자 88명 중 밤새 춤추던 클럽 손님이 72명이었다. 고고족들은 화재 때 홀이 정전돼 깜깜해지자 '키스 타임!'이라고 환호했다. 참사 이후 한동안 유흥업소의 철야 영업에 대한 제재가 강화됐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통금 시간에 문 닫아건 클럽에서 미친 듯 놀던 고고족들은 통금 풀리면 쓰린 속을 달래려 해장국 골목으로 몰려갔다. 본래 새벽의 해장국집이란 야근한 직장인들, 차선 도색 등 야간 공사를 마친 근로자 등 주로 남자들로 붐비던 곳이었다. 그 골목에 밤새 마시고 흔들던 고고족들이 100여 명씩 몰려와 식당들을 점령하니 시민들 시선이 곱지 않았다. 초미니스커트와 짙은 화장의 여성도 많았다. 한 택시 운전사는 "해장국집 가자는 고고족들을 태울 때마다 말할 수 없는 메스꺼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청진동 골목에 새벽의 여인 러시'가 일어나고 있다며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해장국 골목에는 전에 없던 소란도 잦아졌다. 가끔 애인 쟁탈전이 벌어졌고 술에 취한 여인들이 즉흥적으로 반나체 쇼까지 벌였다(조선일보 1972년 3월 25일 자). 심야 고고족을 단속하려는 경찰이 클럽 대신 새벽 해장국집을 급습해 77명을 무더기로 연행했다가 '인권유린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일도 있다.

1982년의 통금 해제 이후 '새벽 도심의 클럽족'들이 사라진 줄만 알았더니 요즘 이른 아침 강남 거리에 흐트러진 남녀들의 진풍경이 다시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밤새도록 놀다가 다음 날 아침 그대로 직장으로 직행하려는 2030세대를 겨냥해 오전 2시부터 10시까지 영업하는 나이트클럽이 늘면서 생긴 새 풍속도다. 아침까지 클럽에서 노는 걸 뜻하는 '모닝 클러빙(morning clubbing)'이라는 말도 생겼다. 아침 시간에 강남 번화가에서 20대가 경찰관에게 주정을 부리는가 하면, 노출 심한 옷차림의 여성이 취한 채 빌딩 입구에 주저앉아 행인들에게 불쾌감도 안긴다고 한다. 추태 부리던 옛 고고족들과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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