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101] '無錢여행' 붐… 한 해 6000명 전국 떠돌아… 구걸
무임승차 저질러 "사회악"취급도
입력 2017.12.27 03:12
"경찰은 오늘부터 각 기업체나 버스 정류장 등을 돌면서 '이 사람'들을 단속하기로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도 이 사람들을 발견하면 파출소에 즉시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1962년 9월 내무부 치안국이 마치 간첩처럼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해야 할 대상을 새로 발표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무전(無錢)여행족', 즉 최소한의 돈만 들고 전국을 떠도는 청년들이었다. 1960년대 들어 무전여행이 낭만과 모험의 상징처럼 크게 유행하면서 일부 학생들이 농가에 몰려와 숙식을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민폐가 속출하자 공권력이 나선 것이다.
'무전여행'은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다. 그땐 학생들의 멋진 도전처럼 여겨졌다. 식민지 청년들은 방랑처럼 고행처럼 국토 곳곳을 몇 달씩 걸으며 동포들을 만나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전국 일주엔 민족 계몽이란 뜻도 깃들어 있었다.
'무전여행'은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다. 그땐 학생들의 멋진 도전처럼 여겨졌다. 식민지 청년들은 방랑처럼 고행처럼 국토 곳곳을 몇 달씩 걸으며 동포들을 만나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전국 일주엔 민족 계몽이란 뜻도 깃들어 있었다.
![무전여행이‘구걸 행각’이 되는 등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비판한 신문 기사(조선일보 1965년 8월 12일자).](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712/26/2017122602703_0.jpg)
길에서 인생을 배우겠다는 발걸음은 광복 후에도 이어졌다. 고교생 둘이 건빵 다섯 봉지만 들고 2주간 서울, 부산, 제주도 등 전국 4000리(약 1600㎞)를 걸어서 순회한 여행기가 무용담처럼 신문에 실렸다(경향신문 1959년 3월 30일자). 무전여행이 슬슬 변질된 건 1960년대쯤부터다. 돈 없이 구경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무전여행 한답시고 전국을 떠돌았다. 1965년의 무전여행자 총수는 약 6000명 선으로 집계됐다. 가진 거라곤 객기(客氣) 하나뿐인 청년들이 '어딜 가건 설마 밥 한술 안 주랴'는 생각으로 무작정 길을 나서니 반(半) 거지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무원과 숨바꼭질을 벌이며 무임승차하는 건 기본이다. 기차를 공짜로 타고 가다 적발된 무전여행자 수가 1965년 8월 대전 철도국 관내에서만 하루 80명 안팎이나 됐다(조선일보 1965년 8월 12일자). 무전여행족들은 관공서를 불쑥 찾아가 숙소나 식사를 해결해 달라거나 여비를 보태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민가에 찾아가 아예 밥을 구걸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전여행이 아니라 '구걸 여행'이었다. 심지어 1965년 4월엔 부산에서 서울로 무전여행 온 19세 청년이 이틀을 굶은 끝에 가정집에 침입해 도둑질을 하다 붙잡혔다. 며칠 뒤엔 열차에 무임승차했다가 차장에게 쫓겼던 무전여행 학생이 한강 철교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학생이 열차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학생들에게 시달리던 주민들은 "방학을 단축해서라도 '악의 버섯'들을 없애 달라"는 원성까지 터뜨렸다. 사실 교통·통신망이 빈약했던 시절엔 서울 청년이 찾아와 들려주는 서울 소식과 대학교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유익했다. 세상이 달라지자 밥 달라고 떼쓰는 학생들을 무작정 예쁘게 봐줄 수만은 없었다. 경찰이 1962년부터 무전여행을 '사회악'으로 규정해 단속에 나서면서 붐은 식어갔다. 궁핍했던 무전여행의 시대는 '아프도록 그리운' 추억의 한순간으로 남았다.
학생들에게 시달리던 주민들은 "방학을 단축해서라도 '악의 버섯'들을 없애 달라"는 원성까지 터뜨렸다. 사실 교통·통신망이 빈약했던 시절엔 서울 청년이 찾아와 들려주는 서울 소식과 대학교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유익했다. 세상이 달라지자 밥 달라고 떼쓰는 학생들을 무작정 예쁘게 봐줄 수만은 없었다. 경찰이 1962년부터 무전여행을 '사회악'으로 규정해 단속에 나서면서 붐은 식어갔다. 궁핍했던 무전여행의 시대는 '아프도록 그리운' 추억의 한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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