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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창경궁 (昌慶宮)

by 까망잉크 2021. 10. 8.

 

창경궁 (昌慶宮)

  • 요약 본래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수강궁이었다. 그후 1483년 수강궁 자리에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했다.
  •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 다시 세웠으며,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소실된 많은 전각들이 1633년에 중건되었다. 1656년에 요화당·난향각·취요헌·계월각 등 4개의 전각을 지었다.
    1909년 일제가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어 불렀다. 1984년 일제가 철거했던 문정전과 월랑 등을 복원하고 정비하면서 다시 이름을 창경궁으로 환원했다.
    이 궁궐의 전체적인 배치는 창덕궁처럼 지형의 높고 낮음을 그대로 두고 꼭 필요한 곳만을 골라 집터를 잡고 정원을 꾸민 것이 특징이다.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1656년(효종 7)에 요화당·난향각·취요헌·계월각 등 4개의 전각을 지어 효종의 네 공주들을 머물게 했다. 1909년에는 일제가 강제로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든 다음 일반인들에게 관람시켰으며,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이름을 창경원로 격을 낮추어 불렀다. 1984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던 문정전과 월랑 등을 복원하고 정비하면서 다시 이름을 창경궁이라고 했다.이 궁궐의 전체적인 배치는 창덕궁처럼 지형의 높고 낮음을 그대로 두고 꼭 필요한 곳만을 골라 집터를 잡고 정원을 꾸민 것이 특징이다. 〈동궐도 東闕圖〉(국보 제249호, 고려대학교 박물관)를 통하여 1830년대의 창경궁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통명전
  • 통명전 앞의 연못과 돌다리ⓒ 연합뉴스
  • 통명전통명전, 창경궁, 보물 제818호,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
  • 처마는 겹처마이고 팔작지붕이며, 특히 용마루가 없는데 이것은 궁궐 침전 건물의 특징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합각마루와 추녀마루는 양성을 하고 용두를 놓았다. 이 통명전의 서쪽에는 연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장대석들을 바른층쌓기 하여 장방형의 연못을 만들고 중앙에 돌다리를 놓고 가장자리에 돌난간을 돌렸다. 이 방지의 북쪽에 우물이 있는데 돌로 물길을 만들어 연못의 물을 끌어들였다.
  •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한 기단 위에 다듬은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끝이 날카로운 수서 2개를 둔 이익공으로 재주두가 있으며, 기둥 위에 주두와 첨차를 두어 주심도리 장여를 받치고 있다. 현재는 바닥이 모두 우물마루로 되어 있으나 궁궐도형과 〈궁궐지〉에 따르면 중앙에는 대청마루(3×2칸)가, 좌우에는 온돌방(1×2칸)이 있었다고 한다.
  • 보물 제818호. 경춘전의 서북쪽에 있으며, 〈궁궐지〉에 의하면 1575년(선조 8)에 이 전각에서 인순왕후가 승하했고, 1790년(정조 14)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34년(순조 34)에 복원했다고 한다. 현재 창경궁에 남아 있는 내전 가운데 유일하게 월대가 있는 전각이다.
  • 홍화문 
  • 홍화문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보물 제384호, 서울 종로구 와룡동
  • 보물 제384호. 1484년에 건립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616년에 중건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 건물로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비슷한 모습이다. 원래 석조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초석을 놓았는데 현재 기단 부분은 땅에 묻혀 있다. 다듬은 돌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앞과 뒤쪽은 평주이고, 문짝을 단 중앙기둥은 아래·위층을 연결하는 높은 기둥이다. 2층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앞뒤 양옆에 창문을 내어 사방을 감시할 수 있도록 했다. 공포의 짜임은 다포식으로 외2출목·내3출목이며, 쇠서는 날카로운 앙서로 되어 있고 안쪽은 교두형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양성을 했으며, 그 위에 치미·용두·잡상을 늘어놓아 장식했다.
  • 옥천교보물 제386호. 길이 990cm, 폭 660cm. 1484년에 세운 것으로 궁궐의 정문인 홍화문과 명정전의 정문인 명정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개천의 중앙에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동서 양쪽으로 뻗은 2개의 홍예를 형성했으며 이 홍예 위에 화강석으로 귀틀을 만들고 여기에 마루널 모양의 장대석과 판석을 끼워 바닥을 만들었다. 다리의 네 귀에는 엄지기둥을 세우고, 이 엄지기둥 사이에 같은 간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는 난간두겁대석을 끼웠으며, 이들 난간두겁대와 기둥 사이에 하엽을 부조하고 안상을 조각한 넓은 판석을 끼워 마무리했다. 다리의 양측 엄지기둥에는 서수를 조각해 얹었는데, 앞쪽의 2마리는 서로 마주보고 있고 다른 2마리는 명정문 쪽을 바라보게 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 옥천교(보물 제386호)
  • 동향한 궁궐의 정문인 홍화문을 들어서면 금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이 개천 위에는 금천교인 옥천교가 있다. 옥천교를 건너면 정전의 정문인 명정문에 이르고, 이 문을 들어서면 높은 월대 위에 서 있는 정전인 명정전과 마주하게 된다. 동서로 길게 뻗은 월랑은 홍화문과 명정문의 남북 양쪽에서 뻗어나온 월랑과 합쳐져 'ㅂ'자 모양을 이루면서 정전의 좌우 앞쪽을 둘러싸고 있다. 명정전의 남서쪽에는 편전인 문정전과 그 월랑이, 북서쪽에는 많은 내전과 행각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나머지 수천 간의 전각과 행각 등은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
  • 창경궁창경궁 전경
  •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 다시 세웠다. 이때 동향으로 세워졌던 명정전을 남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김일손의 상소가 있었으나 도감에서는 만약 남향으로 할 경우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의 내청룡으로 이어지는 맥이 함춘원의 남쪽 지맥을 끊게 된다면서 그대로 둘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소실된 많은 전각들이 1633년에 중건되었다.
  • 사적 제123호. 이 궁궐에서 장조·정조·순조·헌종(憲宗) 등 여러 왕들이 태어났다.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다른 궁궐은 모두 남향하고 있으나 이 궁궐만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동향하여 있다. 본래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면서 자신이 거처할 궁궐로 지은 수강궁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1484년(성종 15) 이 수강궁 자리에 새로이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했다.
  • 명정전
    처마는 겹처마이고 용마루는 양성을 했으며 용마루 끝에는 취두를, 합각마루 끝에는 용두를,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을 늘어놓았다. 특히 정면 월대 앞으로는 봉황을 조각한 면석을 놓은 어계가 있고 그 앞으로 어도(御道)가 명정문까지 뻗어 있다. 어도의 좌우에는 문무백관이 조하 때 품계에 맞추어 늘어섰던 품계석들이 있다.
  • 창경궁창경궁의 명정전(조선 중기), 국보 제226호, 서울 종로구 와룡동
  • 가구는 전면 툇간에 고주를 세우고 고주의 웃몸 중간에 퇴보와 대들보를 걸고, 고주 위에 중보의 한쪽을 또 대들보의 다른쪽에 동자기둥을 세워 중보를 걸고 다시 중보 위에 종보를 걸어 키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바닥은 전을 깔았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특히 보개천장(寶蓋天障)을 만들고 봉황 1쌍을 목조로 깎아 걸어두었다. 어칸의 안쪽에는 어좌를 만들고 어좌 뒤쪽으로 일월오악병풍을 둘러쳤다.
  • 월대 가장자리에는 돌난간을 돌리지 않아 돌난간을 두른 경복궁과 비교할 때 격이 낮아 보이는데, 이것은 창경궁이 정궁이 아니라 이궁(離宮)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평방을 놓고, 기둥 위에는 물론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짜놓아 다포양식을 이루고 있다. 출목은 내외3출목으로 살미첨차의 끝은 날카로운 수서로 되어 있고, 안쪽은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조선 중기의 공포양식을 잘 보여준다.
  • 국보 제226호.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건물이다. 1484년에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6년에 다시 지은 조선 중기의 건축물이다. 화강석의 장대석을 바른층쌓기한 2단의 높은 월대 위에 장대석 한벌대의 기단을 쌓고, 다듬은 초석들을 놓은 다음 두리기둥을 세웠다

<출처> 다음백과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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