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44] 추억(Remembrance)
입력 2021.11.08 00:00
모든 것은 끝났다! -꿈이 알려준 대로;
미래는 희망에 빛나기를 그만두었고
내 생애 행복한 날들은 얼마 되지 않네
불행의 차가운 바람에 얼어붙어
내 삶의 새벽은 흐려졌구나.
사랑이여 희망이여 기쁨이여 모두 안녕!
추억에도 작별을 고할 수 있을까!
-바이런(George G Byron·1788∼1824)
가을은 추억의 계절인가? 봄이 더 감질나게 추억을 환기시키지 않던가? 찬 바람 부는 11월에 읽으니 ‘불행의 찬 바람’이 더 실감 난다. 내 생의 새벽에, 여고 1학년 시절에 만든 시화집에 실려 있는 시를 다시 꺼내 음미했다.
행복할 날들은 얼마 남지 않았네.
시에 쓰인 영어는 중학생도 이해할 만큼 쉽다. 겨우 서른여섯 해밖에 안 산 시인이 모든 것이 끝났다고 단언하다니. 그의 조숙함이 놀랍지는 않다. 십 대 후반에 사랑을 알았고, 스물네 살에 펴낸 시집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로 19세기의 수퍼스타가 되었고 서른여섯 살에 그리스의 독립을 염원하다 낯선 땅에서 죽기까지 그는 숱한 염문과 모험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충분하고도 남을 환멸을 맛보았으리. 귀족으로 태어난 바이런, 삶의 새벽을 덮은 먹구름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날 때부터 다리를 약간 절었다. 조지 고든 바이런의 희망과 절망을 꿰뚫을 만큼 늙었으니, 나의 환멸이 더 크다. 꿈에서라도 바이런을 만난다면 내가 더 위로받아야겠다.
*** 시 원문 ***
Remembrance
‘Tis done! - I saw it in my dreams;
No more with Hope the future beams;
My days of happiness are few:
Chill’d by misfortune’s wintry blast,
My dawn of life is overcast;
Love Hope, and Joy, alike adieu!
Would I could add Remembrance too!
-George Gordon Byron (1788∼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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