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65] 봄
기사입력 2022.04.11. 오전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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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아도
지난 계절은 돌아오고
시든 청춘은 다시 피지 않아도
시든 꽃은 다시 피고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아도
빈 술잔은 채워지고
-주병권 (1962~)
짧지만 폐부를 찌르는 시. 다시 돌아오는 계절과 돌아오지 않는 시절의 대비, 다시 피지 않는 청춘의 비유도 훌륭하다. 내용도 좋지만 형식미도 갖추어 더 아름다운 시가 되었다. 두 행이 한 연을 이루는데, 모두 두운을 주었고 서로 상반되는 서술어를 붙였다. ‘지난’으로 시작한 1연, ‘시든’이 반복되는 2연, ‘빈’으로 시작한 3연. 빈자리를 빈 술잔이 메울 수 있을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어 더욱 커지는 당신의 빈자리. 봄꽃들을 보기가 괴롭다.
행의 끝에 ‘도’와 ‘고’가 엇갈려 반복되고 세 연이 모두 ‘고’로 끝난다. 보면 볼수록 그 완벽한 짜임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주병권 시인은 누구 못지않게 시를 사랑하고 언어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다.
그의 시집 『떠나는 풍경』에 좋은 시들이 많다. 이런 깨달음은 어떤가. ”노년은 겨울
삶도 죽음도 아닌 날들이 지나지
멀리 떠날 준비를 하며
기억들은 잊혀져가지”
(‘사계의 삶’)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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