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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2

by 까망잉크 2022. 9. 24.

# Trace 6.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2

불면을 극복한 운동중독, 정종(제 2대왕 1357~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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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은 ‘1차 왕자의 난’때 떠밀려 왕위에 올랐지만,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후에는 태종 이방원에 자리를 물려준 것처럼, 거의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태조왕처럼 왕성한 활동을 좋아했던 정종은 왕좌에 오르기 전부터 스스로가 격구를 심하게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요.

정종 1년 9일의 <왕조실록>에 보면 “과인이 병이 있어 수족이 저리고 아프니, 때때로 격구를 하여 몸을 움직여서 기운을 통하게 하려고 한다.”

3월 13일에는 “내가 무관(武官)의 집에서 자랐기에 산을 타고 물가에서 자며 말을 달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으므로, 오래 들어앉아서 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병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잠정적으로 격구하는 놀이를 하여 기운과 몸을 기르는 것이다.”고 합니다.

또한, 좁은 궁궐에서 하기 싫은 왕노릇을 억지로 하다보니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스트레스가 매우 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인이 본래 병이 있어서, 잠저(潛邸 왕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때부터 밤이면 마음 속으로 번민하여 자지 못하고, 새벽에야 잠이 들어 항상 늦게 일어난다. 그래서 여러 숙부와 형제들이 게으르다고 하였다. 그런데, 즉위한 이래로 경계하고 삼가는 마음을 품어서 병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데, 근일에 다시 병이 생겨서 마음과 기운이 어둡고 나른하며, 피부가 날로 여위어진다.”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신하들조차 그만 즐기라는 상소를 계속 받았다고도 합니다. <왕조실록>에는 ‘격구(擊毬)’를 가지고 신하들과 입씨름하는 장면이 곳곳에 나올정도입니다. 정조 1년 5월 1일에는 격구폐지를 요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신하들에게는 징계를 내리기까지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정종 1년 8월 29일과 10월 13일에는 왕이 앓던 병이 낫자마자 바로 격구놀이를 시작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결국, 그는 팔다리져림증과 불면증 등의 몸과 마음의 치료를 위해 운동요법을 택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처럼 갇혀지내는 것이 아니라 궁궐 안밖에서 활동적인 운동을 한 임금이 건강하고 장수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짧은 재위기간이었지만, 아버지 태조대왕과 같은 가족력으로 노환과 풍질(風疾)로 고생하시다가, 오복(五福)을 갖추고 6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알.쓸.신.기.동의보감>,<치매백문백답>,<알파고 동의보감>,<뇌건강을살리는계절음식>등의 몇몇 책들을 국내외에출간하였습니다.한의사,칼럼니스트,강사,콘텐츠개발자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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