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역사) 이야기

조선 최대의 뇌물사건 (2)

by 까망잉크 2022. 9. 22.

조선 최대의 뇌물사건 (2)

뇌물을 추징하여 대신이 재물을 탐내는 마음을 그치게 하소서

by두류산Sep 02. 2022

뇌물을 받은 자들의 죄질은 뇌물을 준 자와 같습니다

 사헌부는 뇌물수수에 연루된 자가 백 명이 넘는 개국 이래 최대의 뇌물 사건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사헌부는 연명하여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김주가 권세 있는 고관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었는데, 받은 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 이름이 장부에 적히지 않은 자도 많겠지만, 최소한 이름이 장부에 적혀 있는 자는 사면령이 내려 비록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받은 물건은 몰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금은 사헌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성종실록, 재위 7년 11월 22일)

 다음날, 사헌부는 또다시 임금에게 아뢰었다. 

 "김주가 자기 집에 들여오고 남에게 뇌물 준 물건은 모두가 백성의 고혈(膏血)이니, 공도(公道)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또 뇌물을 받은 자들의 마음을 살펴보면 재물을 탐하는 마음이니 김주의 죄질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청컨대 아울러 몰수하여 염치를 장려하게 하소서.”

 임금은 역시 들어주지 않았다. (성종실록, 재위 7년 11월 23일) 

 비리를 저지른 관리를 탄핵하는 책임이 있는 사간원도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대사간 최한정과 사간원 간원들이 조정의 신하들이 김주에게 받은 물건은 반드시 몰수해야 한다고 청했으나 임금이 들어주지 않았다. (성종실록, 성종 7년 11월 24일)

사간원의 종 3품 사간(司諫) 윤민이 경연장에서 김주가 남에게 준 뇌물에 대해 반드시 징수해야 한다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성종실록, 성종 7년 11월 29일) 

 임금이 정승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간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연의 영사(領事) 윤자운이 나서서 모호하게 답했다. 

 "대간의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일이 번거로울까 염려됩니다.”

 영사(領事)는 주로 경연(經筵), 춘추관(春秋館), 관상감(觀象監) 등의 특수 부서에 정 1품의 고관이 겸직이나 명예직으로 임명되었고, 경연에는 3인, 춘추감과 관상감 같은 부서는 1인을 두었다.

 임금이 정승들을 돌아보니 임금과 눈이 마주친 김질이 움찔하며 아뢰었다. 

 "신의 농장이 현풍(玄風, 지금의 대구지역)에 있는데, 김주가 현풍에까지 와서 신의 종에게 들깨를 주었습니다. 근일에 신의 종이 와서 말하는 것을 듣고 신이 처음 알았습니다. 곧 아뢰려고 하였으나, 옥사(獄事)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사헌부 정 4품 장령 경준(慶俊)이 김질의 말을 듣고 정승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분연히 아뢰었다. 

 "다른 사람은 족히 논할 것도 없지만, 한명회와 김질과 같이 성상의 은혜가 이미 족하고 부귀가 또한 지극한데도 오히려 작은 고을에서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낸 물건을 받았으니, 대신의 도리가 과연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또 칠원의 백성들은 괴롭게 무거운 부담을 당하여 원통하고 답답해하는 자가 많을 것인데, 만약 조정에서 내버려 두고 징수하지 않는다면 민심을 어찌 따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이 정승들을 변명했다. 

 "대신이 먼저 요구하여 청한 것이 아니고, 김주가 스스로 뇌물을 주며 아첨을 한 것이다. 지금 상락(上洛, 김질을 칭함)이 말한 것을 보건대 그가 먼저 청하지 않은 것이 명백하다.”

 경준은 김질을 면전에서 비웃었다.  

 "김질이 비록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김주가 뇌물을 바치면, 물리치지 않을 것을 헤아리고서 재물을 주었을 것입니다.” (성종실록, 성종 7년 11월 29일) 

사헌부가 다시 나섰다. 대사헌 윤계겸과 사헌부 관리들은 연명하여 김주가 뇌물로 바친 물품의 징수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신들이 의금부에서 추국한 문안을 살펴보면, 김주의 뇌물을 받은 자가 위로는 재상에서 아래로는 사대부까지 무려 수백 인이 됩니다. 주상께서 밝은 정치를 하시는데, 이와 같이 탐오한 풍습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직급이 낮고 용렬한 조정의 관리들은 족히 논할 것도 없지만, 한명회와 김질 등은 몸은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는 재상의 지위에 있고, 집에는 천금(千金)의 재물이 쌓여 있는데, 어찌 반드시 남의 뇌물을 받은 뒤에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또 김주가 수령으로서 착복하고 뇌물로 바친 물건은 모두가 우리 백성의 고혈(膏血)이니, 오직 김주가 착복한 물건만 몰수하고 받은 자의 물건은 내버려 두고 징수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옳겠습니까? 청컨대 아울러 추가로 모두 몰수하여 탐오한 자를 징계하고 선비의 맑은 기풍을 바로 세우도록 하소서.”

 임금은 사헌부의 상소를 읽고, 상소문을 여러 정승에게 보여주며 의논하게 하였다. (성종실록, 재위 7년 11월 29일)

성종 7년 12월 1일, 사간원도 사헌부의 공세에 가담했다. 대사간 최한정과 사간원 간원들은 부패한 관리 김주와 뇌물을 받은 대신들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 

 "김주는 본래 간사한 소인(小人)인데, 청탁으로 말미암아 수령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백성의 고혈을 착취하여 주요 직책에 있는 모든 관리들과 권세가 있는 대신의 집에는 어디나 다 뇌물을 보내었습니다. 그중 지위가 소소한 사람들은 헤아릴 것도 없으나, 대신이 된 자는 임금의 녹봉을 먹는 것만도 실로 넉넉한데, 또 버젓이 뇌물을 받고도 태연하게 부끄러움을 몰라 스스로 신고하여 처분을 기다리려고 하지도, 혐의를 인정하지도 않으니 대신의 도리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신들이 보건대, 지금 세상에서 탐욕의 풍습이 날로 일어나고 염치의 도리가 없어진 것은 일찍이 이들 대신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어찌 세상의 도(道)가 한심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뇌물을 추징하여 대신이 재물을 탐내는 마음을 그치게 하소서.”

임금은 상소를 읽고 답하였다. 

 "이는 김주가 대신들에게 아부하느라고 한 짓이요, 대신들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염치의 도리가 없어진 것은 과인의 덕이 부족한 때문이요, 정승들에게 관계되는 것이 아니니, 책하려면 너희들은 과인의 잘못을 마땅히 간(諫)해야 할 따름이다.” (성종실록, 성종 7년 12월 1일)

성종이 보기에 조정의 거의 모든 대신들은 많든 적든 김주가 보낸 물건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성종은 조정의 대신들에게 실망하였다. 할아버지인 세조 대왕이 왕위에 오를 때 큰 공을 세웠으나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았다. 그런데 성종은 왜 이들의 잘못을 덮고 넘어가려고 했을까? 

 훈구대신들은 삼정승과 육판서를 모두 차지하고 있어, 뇌물을 받았다고 드러내고 벌을 주거나 망신을 주기에는 조정의 체통이 달린 문제였다. 더구나 원자의 탄생으로 이미 사면령을 내렸으니 처벌을 할 명분도 약했다. 대간들이 청한대로 받은 물건을 몰수하게 되면, 대간들은 몰수에 그치지 않고 당연히 이름을 더럽힌 자들의 파직을 청할 것이다. 대간의 말을 들어주자면, 재상뿐만 아니라 백 명이 넘는 관련자를 모두 파직하거나 징계를 내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더구나 성종은 이즈음 성년이 되어 대왕대비의 섭정을 마감하고 친정을 막 시작하였으니 정치적 안정을 위해 염치를 잃은 조정의 대신들이지만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모두 내치면 누구와 정사를 돌볼 것인가. 김종직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등장하게 되는 사림 세력도 당시는 조정의 신진 관리에 불과하여 훈구대신들을 대체할 세력도 없었다. 

성종 7년 12월 3일,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은 김질이 어전에 나와 변명하였다.

 "김주가 신(臣)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현풍에 사는 고덕산에게 깨를 주었습니다. 고덕산이 곧 전해서 보내지 않다가, 마침 신의 종이 현풍에 갔을 때에 고덕산이 넘겨주었으나, 신의 종도 짐이 많아서 역시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근일에야 신이 비로소 알았는데, 대간들은 신이 교묘한 말로 꾸며서 과실을 숨긴다고 합니다. 신이 성상의 은덕을 치우치게 입어 작위가 이에 이르렀는데, 감히 성상 앞에서 교묘한 말로 속이겠습니까? 마음이 아파 못 견디겠습니다. 만약 고덕산을 국문하면, 신의 마음속을 드러내어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간이 말하더라도 나는 그렇지 않은 줄 아는데, 무슨 혐의할 것이 있겠는가?” (성종실록, 성종 7년 12월 3일)

 의정부 정승들은 대간들의 상소를 돌려 읽으며 대책을 의논하였다. 정인지, 조석문, 윤자운이 함께 나와 임금에게 아뢰었다.  

 "《대명률(大明律)》에 의하면 사면령이 내리면 주범인 김주도 사면되는데, 그가 남에게 준 물건은 당연히 사면 대상입니다. 사면이라는 것은 지난 흠을 씻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김주가 증여한 일은 이미 사면을 받았으니, 그가 준 물건도 추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되옵니다.”

 성종은 정승들의 말이 가소로웠다. 

 "윤 정승은 전에 경연에서 김주에 관하여 말할 때에 뇌물을 준 자는 반드시 징계해야 한다고 말하더니, 이제 의견이 달라진 것은 무슨 까닭이오?”

 임금의 뼈 있는 질문에 윤자운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신이 《대명률(大明律)》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성종실록, 재위 7년 12월 5일) 

 

(다음 편에 계속)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