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e 13.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9
서병(暑病)으로 고달팠던 밤의 황제, 성종(제 9대왕 1457~1494)
성종은 12세 어린 나이부터 25년동안 성실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으로 조선왕조를 태평성대라 불릴 정도의 안정적 기반에 올려놓은 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예종의 양자로 장인 한명회의 권력 속에서 왕좌에 올랐지만, 세조비 정희왕후의 수렴청정과 대신들이 중심이 된 ‘원상제’로 불가피하였는데요, 재위 7년 친정(親政)을 시작하면서 ‘삼사제도의 확립’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훈구대신들을 견제하기도 합니다.
국가전반을 체계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제도를 완비했다는 선언으로 <경국대전>을 완성시켰는데요. 국가의 예법절차를 적은 <국조오례의>, 조선의 지리를 기록한 <동국여지승람>, 신라에서 고려시대의 역사서인 <동국통감>, 조선시대의 의식이나 악보를 정리해놓은 <악학궤범> 등을 편찬하고, 학술연구기관인 ‘홍문관’을 재건하기도 하였습니다. 두 차례의 여진족정벌을 성공으로 이끄는 등 원만한 왕권을 바탕으로 많은 책을 완성한 동시에 군사력 또한 증강시켰습니다.
조선의 제도가 완성되며 임진왜란 전 가장 좋은 시기여서, 야사에는 조선시대 신하들에게 최고수준으로 평가받았으며, 가장 최고의 명군왕은 세종이 아닌 성군이었다고도 전합니다. <실록>에는 “천성이 뛰어나면서 학문을 좋아하고 게으리지 않는 유교에서 가장 좋아할만한 왕이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더위에 약했던 성종은 11세부터 평생을 서증(暑症 더위먹은 증세)으로 괴로웠습니다. 또한, 왕이 되기전, 한명회의 집에 있는 동안 성종은 별 볼일 없는 존재였기에 자존감에 답답하고 아마 분노의 감정으로 잘 흥분하고 예민해졌을 것입니다.
<실록> 성종14년 6월11일에는 “정해년에 심한 더위를 먹어 여름만 되면 이 증세가 발병한다.”고 하고, 6월 25일의 기록에는 정희왕후의 제사를 지내지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밝히기도 합니다.
성종이 더운 여름날씨에 고열로 목이 마르며 땀이 많이 나는 증상을 고치기 위해서, ‘오미자탕(五味子湯)’이 처방되었다고도 전하니 심각성을 알수 있습니다.
성종 15년 1월29일에는 ‘주사안신환’이 처방되는데, 이 약은 열이 심하게 떠올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과 화를 진정시켜 정신을 편안하게 하는 효과입니다. 또한, 잘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계(驚悸)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19년 6월 7일은 의정부 더위 때문에 경연과 국정활동을 중지했고, 25년에는 머리가 아프고 더위먹은 증상으로 경연을 취소까지했다고 합니다.
또한, “내가 어려서 한 정승의 집에 있을 때 더위를 먹어 인사불성이 되니, 대부인이 손수 목욕시켜 구료하여 다시 깨어났는데, 지금까지 더운 철을 만나면 항상 더위를 먹어 병이 날 것 같아 6월부터 7월까지는 경연에 나아가 정사를 보는 것을 중단한 것이 오늘날 비롯된 것이다.”고 한명회의 집에서 지내면서 얻은 것임을 고백합니다.
성종은 재위 19년 12월 21일, 형 월산대군이 죽자, “나의 증세는 본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마음이 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고달픈 증세를 호소하기도 하였다고 전해내려옵니다.
뿐만 아니라, 가뭄이 들면, 물에 밥을 말아 먹는 수반(水飯)을 먹어 도덕성을 과시하기고 하였지만, 실은 애간장을 태우는 성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고, 무절제한 여성 편력으로 훗날 기묘사화(己卯士禍)라는 비극까지 겪기도 하는데요. 세 명의 왕비와 13 명의 후궁, 16남2녀의 자식부자였지만, 폐비 윤씨의 죽음과 후궁들의 암투 속에서 여복은 별로 없었다고 해석됩니다.
평생을 약골로 등창(종기)와 설사, 두통, 요통, 소갈증, 천식, 수전증, 치통 등까지 다양한 질병을 앓다가, 결국 폐결핵 합병으로 38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옛(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K 순금만 휘감은 백제 무령왕 부부…신라왕은 금은 합금 선호 (0) | 2022.10.31 |
---|---|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13> 남해안 ‘물길 귀신’ 광양현감 어영담 (0) | 2022.10.27 |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8 (0) | 2022.10.19 |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7 (0) | 2022.10.13 |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12> 부산포전투 순국 녹도만호정운 (0) | 2022.10.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