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11] 교통事犯에 초강수…사망사고 땐 '폐차'… 경찰, 불법주차 차량 번호판 떼기도
우리 역사상 교통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가장 가혹했던 시기는 아마도 5·16쿠데타 직후부터 50일간일 것이다. 그해 5월 19일 조흥만 치안국장은 뜨뜻미지근한 처벌로 질서를 잡을 수 없다며 교통사고나 법규 위반에 대한 엄벌 방침을 전 경찰에 시달했다. 처벌 수위는 경악할 만했다. "차량 전복, 추락, 화재 등 사고로 사상자가 나면 운전자는 면허 취소, 차량은 폐차 또는 1년 이상 운행 정지한다. 밀수품 등을 운반하거나 자가용 영업을 한 차량도 폐차 처분한다…." 운전자뿐 아니라 사고 차량까지 징벌하듯 폐차토록 한 게 이채롭다. 과속·추월·신호 위반 등을 하다 한 번만 적발돼도 운전자는 무려 3개월 면허정지다(조선일보 1961년 5월 20일 자). 이 초강력 처벌 방침은 반발 여론 때문이었는지 시행 50일 만인 7월 5일 대폭 개정됐다. 인명 사고 차량에 대한 폐차 처분은 '사망자를 냈을 경우'에만 한하기로 하고, 과속·추월·신호 위반 운전자의 면허 정지 기간도 3개월에서 '10일 이상'으로 완화했다. 그래도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이만저만 무거운 게 아니었다. 제3공화국 시절엔 경찰이 불법 주차 차량의 번호판을 뜯기도 했다. 한밤 공터에 세워놓은 택시 3대가 번호판을 뜯길 정도였다. 범법 차량의 번호판을 뗀 일은 1960년 신문에도 보인다. 4·19혁명 직후 사회 개혁의 전면에 나선 '대학생 국민계몽대원'들은 불법 운행한 관용차 34대의 번호판을 뗐다.
번호판을 되찾으려면 운전자가 경찰서를 찾아가 범칙금을 내야 했다. 위법 차량에 대한 물리적 조치로는 바퀴에 족쇄를 채우거나 견인하는 방법도 있으나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이에 비해 번호판 제거는 비싼 장비 없이도 차량 운행에 타격을 입히는 방법이다. 과거 우크라이나에서 불법 차량을 견인하는 대신 번호판을 떼어 비용을 절약한 일은 성공한 아이디어의 사례로 책에 기록되기도 했다.(김영식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2002년 9월 유엔 주재 각국 외교관 차량의 불법 주차로 골치를 썩이던 뉴욕시는 3회 이상 주차 위반한 차량의 번호판을 뗌으로써 불법 주차를 95%이상 없앴다. 번호판을 뜯긴 운전자는 불쾌감과 분노를 맛보기 마련이다. 1973년엔 서울 시내 구청 건물 앞에 세워놓은 청소 트럭 3대가 경찰에 번호판을 뜯기자 운전자들이 불만을 품고 큰길의 통행을 트럭으로 2시간이나 가로막는 행패를 부려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1979년 3월 20일엔 광화문 체신부 청사 앞에 세워둔 체신부 고위공무원들 차의 번호판을 경찰이 모조리 뗐다가 체신부 직원과 경찰 간에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갔다. 결국 경찰은 1979년부터 주차 단속 때 번호판을 떼는 대신 스티커 부착이나 견인하는 방법만 쓰기로 했다. '여러 시비와 부조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엔 주차위반차의 번호판을 뜯는 일은 없다. 다만 장기간 세금을 안 낸 차량에 대해서는 공무원이 종종 번호판을 뗀다. 법규에 따른 조치인데도 반발이 크다고 한다. 예전엔 주차 위반으로 번호판을 뜯겨도 감수했는데, 오늘날 어떤 체납자는 번호판을 뜯기자 공무원을 망치로 때렸다가 이달 초 법의 심판을 받았다. 공권력을 대하는 태도가 40여 년간 그렇게 달라졌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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