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명환 外 시간여행·문학 기행기

[김명환의 시간여행] [10] "즐거움 주는 거리 약장수를 許하라" 노인들 집단 항의에 경찰 단속 중단

by 까망잉크 2022. 10. 18.

[김명환의 시간여행] [10] "즐거움 주는 거리 약장수를 許하라" 노인들 집단 항의에 경찰 단속 중단

김명환 사료연구실장
입력 2016.03.16 03:00
 

"이보시오! 노인들 대접을 그렇게 하는 게 아냐!"

1960년 7월 대전시의 할아버지·할머니 30여 명이 경찰서장에게 몰려가 집단 항의를 했다. 공터에 자리 잡은 약장수를 경찰이 쫓아내자 '우리 구경거리를 없애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진 것이다. 결국 경찰이 굴복해 약장수가 다시 북을 울렸다. 3개월 뒤인 10월 18일엔 대구에서 똑같은 소동이 벌어졌다. 노인 50여 명은 약장수를 단속하지 말라며 대구시청과 경북경찰국에 몰려갔다(조선일보 1960년 10월 20일자). 4·19 직후 '데모 만능 시대'의 단면이기는 하지만, 길거리 약장수가 '무허가 장사꾼'이자 '엔터테이너'라는 두 얼굴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동네 공터를 찾아와 북 치고 노래하며 주민들을 모으고 있는 옛 약장수. 1960년대의 풍경으로 추정된다.

'만병통치약' '회충약'을 파는 약장수는 1960년대 초부터 신문에 등장한다. 행인들 발걸음을 붙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북 치고 유행가 부르는 정도는 기본이고, 마술·재담도 끼워넣었다. 제법 규모가 되는 패거리는 춘향전, 심청전 등 단막극도 했다. 도시에선 최단 시간 내에 구경꾼을 모으려고 충격적 '차력술(借力術)'을 동원했다. 배 위에 올려놓은 돌을 쇠망치로 깨는 식의 묘기다. 1977년 1월 3일 마산의 어느 약장수는 좀 더 많은 인파를 모으려고 했는지, "나는 뱀에 입을 맞춰도 물리지 않는다"며 독사와 키스하려다 혀를 물려 숨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도 일어났다(조선일보 1977년 1월 7일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으면 약장수는 '여기서 잠시, 전해 드릴 말씀이 있다'며 '본론'을 꺼냈다. 이때 구경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고 약장수들은 비장의 카드를 썼다. "이 상품 소개가 끝난 뒤엔, 자동차가 제 배 위로 지나가는 묘기를 보여 드리겠다"는 식의 예고로 궁금증을 자극하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요즘 케이블TV 예능프로그램이 "과연 그 결과는…?"하며 채널을 고정시켜 놓고는 "60초 뒤에 계속됩니다"라며 중간광고를 하는 수법의 원조는 약장수인 셈이다. 차력사가 정말로 자동차 밑에 깔리는지 기다리는 순진한 사람도 있었지만, 약을 다 팔고 난 약장수들은 바로 좌판을 걷고 철수하기 일쑤였다. 약을 팔 때도 눈속임을 서슴지 않았다. 1976년엔 소의 기생충을 손에 숨긴 뒤 자신들이 파는 약을 먹은 사람의 몸에서 회충이 바로 나오는 것처럼 속인 약장수들이 무더기로 경찰에게 붙잡혀 쇠고랑을 찼다.

하지만 약장수의 삼류쇼 공연은 이렇다 할 오락 거리가 없던 서민들, 특히 노년층에게 일정 몫의 위안을 줬던 것도 사실이었다. 도시락까지 싸들고 매일 출근하는 노인도 있었다. 요즘도 매스컴에 가끔 등장하는 '떴다방(건강식품 홍보관)'역시 옛 약장수처럼 양면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노인들에게 건강식품류를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아 지탄을 받지만, 어떤 어르신은 허풍떨고 속이는 줄 알고도 떴다방을 찾는다. 작년 개봉된 영화 '약장수'가 묘사했듯, 멀기만 한 아들·딸보다 눈 앞에서 재롱떠는 떴다방 장사꾼에게서 더 위안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생일 앞둔 주말엔 자녀들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지만 정작 생일 당일엔 혼자 식사하는 노인들에게 극 중 장사꾼들은 미역국을 끓여 드리며 마음을 얻는다. 약장수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약장수가 건드린 노인 여가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현재진행형이다.

 

조선일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