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e 17.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13
복상사한 마마보이, 명종(제 13대왕 1534~1567)
12세에 왕좌에 오른 어린 명종은 타이거맘이자 헬리콥터 맘인 문정왕후의 20년 섭정그늘에 가린 마마보이에 불과하였습니다.
명종은 성정이 순하고 착하여, 사사건건 명성왕후의 간섭과 압박, 집착에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사관논평>에는 회초리로 종아리로 종아리를 맞은 일이 있었고, 명종의 뺨을 때리거나 궁녀로 하여금 감시를 붙여 자신의 맘에 안들면 곧바로 불러 혼을 냈다고도 나와있습니다.
심지어 <실록>에는 문정왕후가 틈만나면 스스로 왕정을 세운 공이 있다하여 명종에게
“너는 내가 아니면 어떻게 이 자리를 소유할 수 있었으랴 하고 조금만 여의치 않으면 곧 꾸짖고 호통을 쳐서 마치 민가의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대하듯 함이 있었다. 상의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김없이 받들었으나 때로 후원의 외진 곳에서 눈물을 흘리었고 더욱더 목놓아 울기까지 하였으니, 상이 심열증(心熱症)을 얻은 것이 또한 이 때문이다.”고 전합니다.
당시에는 어머니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소윤)이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대윤)과의 반목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키면서 외척들의 권세가 강해졌습니다.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심해서 임꺽정같은 영웅까지 나타나고, 일본왜군들이 전라도지방을 유린하는 을묘왜변(乙卯倭變)까지 발생하는 등 사회는 불안하셨습니다. 연산군 폭정과 중종의 실정으로 재정난도 심하여 더 이상은 공신들에게 줄 토지가 없어 ‘직전법(職田法)’을 폐지하기도 합니다. 문종왕후가 죽자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고 바른 정치를 펼치려 나름 노력한 역사들이 있습니다.
명종은 어려서부터 허약체질인데다가, 어머니와의 관계가 편안치못해 줄곧 소화기계 비위(脾胃)가 불편하고 어지럼증과 불면증으로 고생하였습니다.
특히, 여름만되면 어지럼증을 호소했다고 하는데요. 왕에 오른지 16년차에는 경연을 중단하기까지 했다고 <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약질인데다 감기에 잘 걸리고 간간이 설사까지 해 항상 기운이 나른하다. 간혹 열이 치받치면 현기증이 일어난다. 학문이 중하기는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으니 어떻게 경연을 할 수 있겠는가.”
명종 18년에도 “오늘 낮 늦게부터 온 몸이 한기로 떨리고 수족이 차다가 덥다가 하여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니 무슨 약으로 다스려야 하는가.”하고 어지럼증을 호소했다고 남아있습니다.
명종에게는 어머니와 1563년 아들 순회세자의 죽음이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으로 고통스럽다하여서 성격도 변했다고 합니다.
<실록>에는 “명종이 조울증과 홧병을 앓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분에 따라 담당 내시들도 자꾸 바뀌었는데, 내시들이 “신하들에게는 성군이면서 우리들에게는 걸주나 다름없다.”는 토로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는 어질었던 인순왕후와 6명의 후궁들을 보았지만, 자식은 14세에 일찍 병으로 죽은 순회세자뿐이었으니, 상실감의 슬픔은 깊었을 것입니다.
스트레스로 평소에도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 후사를 위한 책임감에 무수리 장씨와 지나친 방사(?)를 갖다가 졸지에 34세 복상하였다고 전합니다.
심열증(心熱症)이라는 홧병으로 명종은 어머니 극성에 기에 한번 제대로 못펴가 마음의 병이 깊어 후사를 만들지도 못했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른 비통한 가족사입니다.
'옛(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Trace 18.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14 (3) | 2022.11.29 |
---|---|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16/2“싸울 때마다 먼저 돌진” (2) | 2022.11.27 |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16.한산대첩의 참모장, 화살 한발로 적장 고꾸라뜨리다 (0) | 2022.11.15 |
# Trace 16.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12 (0) | 2022.11.14 |
박영규의 조선 궁궐 사람들 - (13) ‘문관 선호도 1위 직장’ 홍문관 (0) | 2022.11.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