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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조선왕조를 통틀어서 가장 무능한 왕으로 후세에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씨역사에서 왕의 직계가 아닌 왕실의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한 최초의 왕이었기에 평생을 주눅이 들고, 사림과의 신경전과 잘해내야한다는 압박감에 예민한 신경을 세우고 살아야했습니다.
선조시대에 들어서면서 조정에는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물러났던 신진사류 사림파(士林派)들이 정계에 복직하며 정치적 파란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동인서인으로 갈라지며 본격적인 당쟁이 시작되고, 정여립반역사건으로 ‘기축옥사(己丑獄事)’가 일어나 불안의 정세였습니다.
조선이 건국된지 200년인 되는 1592년에 동서붕당(東西朋黨)으로 정권싸움을 하고, 임진왜란까지 발생되며 국방체계까지 무너져서 선조는 신하들의 많은 비판을 받게 됩니다.
광해군에게 나라를 맡기고 서울도성을 떠나 의주로 몽진가는 길에서 선조는 요동으로 망명할 생각까지 하지만. 성난 민심은 경복궁과 창경궁 들 궁궐을 방화하고 노비문서를 소각하는 등 안팎으로 국가위기상황에 놓일수 밖엔 없었습니다.
임진왜란승리 이후,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추락되고 불안한 자존감에 아들 광해군과 왕좌양위문제로 지속적인 소동까지 벌이기도 합니다.
선조는 스트레스와 이명(耳鳴)을 심하게 고생하여 침을 즐겨 찾았는데, 선조 29년<실록>에는 명의 허임에게 침을 맞아 회복된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왼쪽 귀가 심하게 울리고 들리지도 않으므로 침을 맞지 않으면 낫지않을 듯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다.”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또한, 일생을 기(氣)에 억눌려 눈치로 살아왔기에 스트레스성 소화불량과 식체(食滯)에 편두탕 등을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실록>에 의하면, 선조 28년 “선조가 고질병인 두통이 요즘 덜하나 침이 없으면 지탱하기 힘들 듯하다고하자 재상 류성룡은 사(瀉)만 있고 보(補)하는 것은 없으니 여러 번 맞지 않아야 한다고 말렸다.”고 합니다.
선조 29년에는 “병의 고통으로 잠시도 견딜 수가 없어 하루를 넘기기가 마치 높은 산을 넘어가는 것 같으며 두통을 앓지 않는 때가 없다.”는 장면도 나옵니다.
또한, “두 팔은 삼대처럼 뻣뻣하고 두 다리는 잘 펴지지 않아 사지(四肢)와 백해(百骸)가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며 전란으로 온 몸이 피폐해짐을 토로하기도 하였는데요. 선조 31년에는 다리를 쓸 수 없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허리통증은 조금 나아졌으나, 근골이 몹시 무거운 듯하고 다리 힘이 약해져 똑바로 설 수가 없다.”
이 때에 ‘모과’를 죽처럼 으깨어 종아리에 붙여서 쥐나는 증상을 완화시켜 회복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과’는 신맛의 사과산 등의 유기산성분으로 입맛을 돌게하며 소화효소를 분비해주고, 가래를 삭히며 기침을 진정시켜주기도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따라서, 백사 이항복선생의 ‘삼령백출산’처방은 선조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면역기능까지 무너뜨리다보니, 전쟁 후에는 기침감기가 끊이지 않았고, 후유증인 후비루(後鼻漏)까지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실록>에는 선조 32년에 백사 이항복이 뽕나무 껍질을 꿀에 발라 구운 후 매화차와 같이 먹게해 일시적으로 호전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기침과 가래가 반복되어 선조 34년에는 약방에서 ‘청금강화탕’을 처방했다고 전하지만, 차도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허준이 살구씨와 뽕나무껍질이 들어간 ‘이진탕’과 반하와 과루인으로 이뤄진 ‘반과환’으로 코에서 넘어온 목의 가래와 기침을 고치면서, 선조는 “동서고금의 의서에 통달하고 치료하는 것이 노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후에는 시각상실에 우측 편마비까지 진행되어 장애의 삶을 사셨다는 기록도 있는데요,
결국 이씨왕조 가족력인 풍질(風疾)이 깊어져 중풍으로 57세에 승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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