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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가수 이승철 “탈북청년들과 독도공연, 8년째 일본 못 가지만 꽉 막힌 한일 관계 풀 마중물 되고 싶다”

by 까망잉크 2022. 11. 20.

가수 이승철 “탈북청년들과 독도공연, 8년째 일본 못 가지만 꽉 막힌 한일 관계 풀 마중물 되고 싶다”

[최인준 기자의 줌인]
韓日 갈등 풀 민간 가교로 나선
데뷔 37년차 ‘라이브 황제’ 이승철

입력 2022.11.19 03:00
 
 

가수 이승철(56)의 마이크는 꽤 오랫동안 꺼져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든 공연장 문이 굳게 닫히면서 코로나가 터진 첫 두 해 동안은 콘서트 무대에 거의 서지 못했다. 1986년 데뷔 이래 처음 겪는 사태. 올 들어 간신히 재개한 투어 일정도 방역 지침 탓에 공연 직전 취소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모든 예술인들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올해로 데뷔 37년 차, 본인 이름을 내건 단독 콘서트만 통산 3000회 넘게 연 ‘라이브의 황제’에게는 더욱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긴 공백에 지친 팬들은 그의 히트곡 제목들을 넣은 시(詩)까지 지으며 이승철의 라이브 공연을 고대하고 있다.

나의 ‘희야’, ‘오늘도 난’ 기다립니다. 오랜 ‘인연’이었던 우리가 다시 만나기를. 코로나 전 그 공연이 ‘마지막 콘서트’는 아니겠죠? 제발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언제까지나 마이크를 꺼둘 수는 없었다. 이승철은 공허한 팬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과감한 음악적 모험에 나선다. 서른 살 차이 나는 까마득한 후배 가수 ‘악동뮤지션’ 이찬혁(26)의 프로듀싱을 받아 신곡(‘우린’)을 녹음한 것이 대표적. 이승철은 신인 가수처럼 녹음실에 다소곳이 선 채 이찬혁이 내리는 지시에 따라 같은 곡을 수백 번 불러야 하는 ‘굴욕’을 겪었다.

음악 실험뿐 아니다. 아프리카 문맹 퇴치를 위한 학교 설립 등 데뷔 초부터 이어온 기부 활동을 크게 늘려가고 있다. 천재 보컬, 독설가로만 그를 알았던 사람들에겐 신선한 모습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컬래버(협업)와 각종 자선 활동을 펼치며 제2의 음악 인생을 열고 있는 이승철을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만났다. 이승철은 “4년 전 성대 수술로 목소리가 안 나와 은퇴까지 생각했지만 지금 난 어느 때보다 가수로서 컨디션이 최고”라며 “미국의 프랭크 시나트라 형님처럼 팔십 다 돼서도 젊은 후배 가수들과 듀엣 앨범을 내는 가수를 꿈꾼다”고 말했다.

슈퍼스타K 심사위원 때처럼 선글라스를 쓴 채 웃고 있는 가수 이승철.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만난 이승철은 평소 아끼는 구두를 신고 나왔다. 그는 "딱히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은 안하는데 요즘 팬클럽 회장을 만날 때 같이 돋보기를 끼고 스마트폰 보는 모습을 보면 가수 생활을 오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이승철은 "대중이 나이 든 가수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나이 든 가수들이 대중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승철의 인터뷰 'B컷'을 보고 싶으시다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어보세요! 이승철의 예술 취향을 드러내주는 집안 풍경과 반려견 '태극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독설 에너지 가득했던 과거 슈퍼스타K 심사위원의 모습을 오랜만에 연출해보기도 했습니다.

◇30살 어린 후배에게 지적받은 ‘보컬의 신’

-굳이 어린 후배들과 협업하는 이유가 있나.

“후배 가수들에게서 내가 하지 못했던 음악을 배운다. (이)찬혁이가 만든 발라드 곡 ‘우린’을 처음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사에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는데 담담한 멜로디가 내 마음을 크게 흔들더라. 이전 내 히트곡들처럼 음역대가 크거나 까다로운 테크닉을 요구하지 않지만 감정을 누르고 담백하게 불러야 해서 어려웠다. 그래도 이런 도전이 나에겐 큰 음악적 자극이 된다. 데뷔 35주년 기념 앨범에서 소녀시대 태연과 듀엣으로 녹음한 ‘My love(마이 러브)’는 내가 부른 원곡보다 팬들의 반응이 좋았다.”

-녹음하면서 이찬혁에게 자주 지적을 받았다던데.

“찬혁이 부모님이 나랑 동갑이니 아들뻘인 녀석한테 잔소리를 엄청 들은 셈이다, 하하! 첫 소절부터 ‘선배님, 느끼한 거 싹 빼고 동공이 풀린 느낌으로 불러주세요’라고 하길래 반사적으로 ‘내가 그렇게 느끼한가?’ 하는 반발심이 들긴 했다. 평소 녹음할 때 딱 두세 번만 부르는데 찬혁이가 들들 볶아서 이 노래는 200번 이상 불러 오케이를 받았다. 그래도 이런 작업이 너무 재밌다. 찬혁이는 나를 순수하게 음악으로 혼내는 거니깐 전혀 거북하지 않다. 음악은 나이 많다고 잘하는 게 아니더라. 이런 매력 때문에 이전부터 기성 작곡가보다 신인 작곡가와 더 자주 작업해왔다.”

이승철은 발라드 곡 '우린'을 녹음하면서 곡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싱을 맡은 이찬혁(왼쪽)으로부터 '느끼하니까 담백하게 불러주세요'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승철은 "찬혁이가 순수하게 음악으로 나를 야단 친거라 불쾌하기는커녕 유쾌했다"고 했다. /KBS

-이승철 같은 대스타에겐 모험 아닌가.

“의외로 유명 작곡가보다 박광현(‘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윤일상(‘오늘도 난’) 등 처음 작업했던 작곡가와 만든 곡들이 더 대박이 났다. 가수는 늘 하던 음악만 하면 도태된다. 가수의 목소리는 지문(指紋)과 같아서 변하지 않지만 옷을 갈아입듯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40년 가수 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대중이 나이 든 가수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나이 든 가수들이 대중을 외면하는 거다.”

-배우 박보검의 피아노 반주로 만든 무대도 화제였다.

“2020년 발표한 곡(‘내가 많이 사랑해요’)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인연으로 내가 먼저 무대를 제안했다. (박)보검이가 녹화 당일 내 밴드와 처음 합을 맞추고 바로 무대에 올랐는데 훌륭하게 연주하더라. 그런데 TV에 그랜드 피아노 너머로 보검이가 연주하는 장면이 너무 멋있게 나와서 보검이만 화제가 됐다, 하하!”

-작년 울랄라세션과 함께한 무대도 큰 감동을 줬다.

“임윤택이라는 걸출한 뮤지션이 있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려는 의도로 마련한 추모 공연이었다. 당시 내 노래(‘서쪽하늘’)를 불렀지만 울랄라세션 멤버들이 무대 앞쪽에 서고, 난 이들을 받쳐주는 코러스 역할에 가까웠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이고, 의미가 있는 참신한 기획이라면 나는 주인공이 아니어도 무대에 서고 싶다. 그런데 후배들은 내가 무서워서 그런지 먼저 협업 제안은 잘 안 하더라(웃음).”

◇‘8년째 日 입국 거부’ 부른 독도 공연

이승철의 여러 협업 무대 중 대중에게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장면은 2014년 8월 14일 독도 공연일 것이다. 당시 이승철은 탈북 단체 대학생 4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 ‘위드유’와 3시간 배를 타고 독도로 가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3분55초 길이 노래 ‘그날에’를 불렀다. 그런데 이 공연 직후 이승철의 일본 입국이 무기한 막혔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공식적인 입국 거부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는데 연예계 안팎에선 이승철이 독도 방문으로 일본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8년 전 일본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독도 공연이 있고 3개월 뒤인 2014년 11월에 아내와 함께 일본 지인을 만나기 위해 도쿄 하네다공항에 도착했는데 입국 심사 직원이 한글로 ‘입국 거부’라고 써있는 문서를 보여줬다. 사유는 말해주지 않고 ‘최근 언론에 난 것 때문’이라고만 해서 직감적으로 ‘이건 독도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공항에 4시간 억류돼 있다가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김포로 돌아왔다.”

-왜 독도 공연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내 입국 거부를 두고 당시 한국 언론이 거세게 비판하자 일본 내각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이승철 입국 거부는 독도 때문은 아니다’고 발표했지만 너무 자명했다. 나를 비롯해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한 유명인들 대부분이 독도와 관련돼 있다.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정광태 형님이나 방송 촬영차 독도를 간 개그맨 이수근, 독도 주변 바다에서 헤엄친 배우 송일국, 3·1절에 독도에서 공연한 가수 김장훈, 독도 문제로 일본과 싸우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등이 일본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걸로 알고 있다.”

-독도에 가기 전 이런 사태를 예상 못했나.

“정광태 형 사례가 있어서 어느 정도 파장은 예상했다. 처음엔 탈북 대학생들에게 노래만 가르치는 걸로 끝내려 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고, 학생들이 제대로 공연을 할까 걱정도 됐다. ‘그날에’를 학생들과 공동 작곡한 사람으로서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함께 가서 공연하는 것은 당연했다.”

-독도에 간 걸 후회하나.

“후회하지 않는다. 떳떳하니까. 정치적 목적으로 간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평화적인 목적에서 이뤄진 행사였다. 탈북 학생들을 이끄는 리더이자 가수로서 끝까지 그 무대를 책임지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독도 공연 이후 뉴욕의 유엔 본부와 하버드대에도 학생들을 데리고 가 ‘그날에’를 함께 불렀다. 결국 일을 크게 벌이고 보는 내 성격이 문제였겠지, 하하!”

-왜 하필 독도였나.

“탈북 학생들 말로는 북한이 국제 무대에서 남한과 연대할 수 있는 게 딱 두 가지라고 하더라. 독도와 위안부 문제. ‘DMZ(비무장지대)나 휴전선 부근에서 공연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자칫 북한을 자극할 수 있었고, 학생들이 강하게 원해서 독도를 무대로 정했다.”

-일본에도 이승철 팬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드라마 ‘불새’의 주제곡 ’인연’과 배우 최지우가 출연한 한일 합작 드라마 ‘윤무곡-론도’의 주제곡 ‘사요나라’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때 일본에 내 팬클럽이 생겼다. 최근까지도 현지 기획사와 팬들이 ‘언제 콘서트를 다시 열 계획이냐’는 문의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입국 문제 해결이 잘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이명박 정부때 독도를 두고 한일 관계가 악화된 이후 2019년 일본 수출 규제까지 터지면서 양국 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치 교류도 실종됐다. 2000년대 초반까진 한일 의원연맹을 통한 물밑 교류로 갈등이 해소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요즘엔 그런 외교 채널이 다소 약화된 것 같다. 다행히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성사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관계 개선에 큰 의지를 보인 만큼 좋은 분위기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일 관계가 쉽게 회복이 될까?

“지금까지처럼 양국이 감정을 앞세워 ‘강대강’으로 대치하는 식으로는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우리 정부도 정치적 이유 때문에 일본인의 입국을 막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나는 황당한 일을 겪었지만 그렇다고 일본만 잘못했다고 따지기도 어렵다. 우선 양국의 입국 장벽 문제를 서로 양보하는 식으로 민간 차원의 교류 확대부터 다시 늘려간다면 다른 현안에서도 조금씩 진전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민간 교류의 물꼬를 터서 한일 화해의 마중물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독설가? 알고 보니 ‘키다리 아저씨’

이승철은 “개인적으로는 아프리카에 가는 문제가 더 급하다”고 했다. 2011년부터 10년 넘게 아프리카 차드에 현지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코로나, 현지 내전이 겹치면서 사업 진행이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는 매년 공연 수익금 일부를 아프리카 내 학교 건립에 쓰고 있다.

-아프리카 학교 건립은 어떻게 시작했나.

“2010년 친한 동생이었던 배우 박용하가 세상을 뜬 이후 SBS에서 연락이 왔다. 용하가 SBS, 굿네이버스와 함께 해오던 아프리카 학교 건립 사업을 이어서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묻더라. 당시 소년범들을 대상으로 합창단을 운영하는 재능 기부를 하면서 한창 자선 활동에 눈을 뜨던 때라 덜컥 맡았다.”

아프리카 차드 어린이와 인사하는 이승철. /SBS

-잘되고 있나.

“지금은 코로나로 사업이 지지부진하지만 그동안 현지에 30억원 넘게 기부하면서 학교 7개를 지었다. 특히 차드에 첫 학교를 세운 도고레 마을에서 만난 8살 여자 아이 카디자는 잊을 수 없는 인연이다. 카디자는 3살 때 눈 주위에 생긴 티눈을 제거하지 못해 큰 종양으로 번졌다. 이 종양을 뜯어먹으려 날파리가 들끓었지만 부모는 돈도 없고 무지해서 그걸 그대로 뒀다. 내가 이 아이를 한국에 데려와 오른쪽 눈을 적출하고 의안을 삽입하는 수술을 시켜줬다. 그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당장 연명할 빵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걸 깨달았다.”

-데뷔 초부터 기부 활동을 했는데.

“데뷔 초 불미스러운 사건(대마초)이 있어서 속죄하는 차원에서 백혈병,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는 기부 활동을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잘돼야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기부, 자선은 단순히 나를 멋있게 포장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채찍질이자 삶의 큰 부분이 됐다.”

-해외 6·25 참전 용사와 인연도 화제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 참전용사 레몽 조셉 베나르 옹을 2010년 한 해외 참전용사 행사에서 알게 됐다. 이분은 한국을 무척 그리워하셨는데 전쟁 중 숨진 용사만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치될 수 있다는 국내 법 규정 때문에 무척 아쉬워하셨다. 그래서 유족과 함께 유엔기념공원 측에 꾸준히 민원을 제기해 나중에 그런 제한을 없앴다. 2015년 작고 이후 부산 유엔 묘지에 안장되셨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여러 선행을 이어오고 있지만 많은 사람은 이승철을 ‘까칠한 독설가’로 기억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슈스케)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낀 채 참가자들에게 지독한 팩폭(팩트 폭격)을 날렸던 모습 때문이다.

-왜 그토록 무섭게 독설을 날렸나.

“제작진의 설정은 아니었다. 일부 참가자 중 무대에서 노래하는 걸 우습게 아는 친구들이 있어서 강하게 말하다 보니 그렇게 내 이미지가 굳어졌다. 선글라스는 냉정한 심사평을 할 때 눈빛이 흔들리는 걸 감춰준다. 사실 난 전형적인 ‘소심 A형’이다, 하하!”

-슈스케에서 스타 가수가 많이 배출됐다.

“슈스케에서 내 지도를 받은 후배 가수들을 생각하면 대견함도 있지만 아쉬움도 있다. 명문 대학 합격했다고 인생 성공한 게 아닌 것처럼 오디션에서 우승했다고, 본선 톱10에 올랐다고 성공적인 가수 생활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 오디션 이후에는 나를 비롯한 선배 가수들과 진검 승부를 펼쳐야 한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친구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노래는 기술적으로 잘하는데 솔(soul·영혼)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딸과 함께 부른 캐럴송

이승철은 최근 한 종편 예능 프로그램에 중학생 딸 이원(14)양과 출연하면서 공부와 운동에 뛰어난 딸 자랑에 정신없는 ‘딸바보’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딸과 함께 스키를 타고, 바다에 놀러가 해변에 직접 텐트를 친다. 과거 요리책을 냈던 고수답게 딸의 식사는 이승철이 도맡아 차린다.

-사춘기 딸과 사이가 좋은 비결이 있나.

“2018년 성대 결절 수술을 받고 1년 동안 집에 있으면서 딸과 부쩍 가까워졌다. 별미를 자주 요리해주는데 딸이 군소리 없이 잘 먹으면서도 음식 점수는 박하게 주더라. 슈스케 참가자들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고 있다. 더 잘해줄 걸, 하하!”

-함께 공연도 했다.

“수학올림픽아드에 나갈 정도로 공부 잘하는 거 빼면 나를 쏙 빼닮았다. 노래 잘하고 운동 신경 좋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작년 12월 서울 공연에서 원이랑 단둘이 캐럴을 불렀다. 누군가 내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 한 다스를 꼽으라면 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노래 부르던 그때 장면을 주저 없이 넣을 거다. 딸인 내털리 콜과 공연했던 팝가수 냇 킹 콜이 부럽지 않더라.”

딸 이원 양과 캐럴을 부르는 이승철. /이승철 제공

-딸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어서 와, ○○는 처음이지?’라는 내 유행어 덕분에 10대들도 나를 잘 안다. 슈스케 촬영 당시 참가자들을 내 녹음실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거만한 표정으로 ‘어서 와, 녹음실은 처음이지?’라고 말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고 수많은 패러디물이 나왔다. 알고 보면 이승철은 유행어가 있는 유일한 대한민국 가수다. 박명수가 내 성대모사를 하는 것도 그렇고 내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유쾌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노래를 자주 해주나.

“옛날 얘기를 잠시 하자면 80년대에 가수 데뷔할 당시 집에선 크게 반대했다. 외할아버지가 내가 다닌 대신고의 설립자였고, 아버지는 대신고 학생주임이라 집안이 매우 엄격했다. 음악을 한다고 나서니 집에선 ‘자식 하나 버린 셈 치자’ 했다. ‘부활’에서 활동할 때는 가족 모임에도 참석 못 했다. 물론 이후 솔로로 성공하면서 인정받았다. 지금은 딸에게 노래 불러주고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가수라서 행복 그 ‘잡채(자체)’다.”

이승철은 요즘 내년 상반기에 있을 국내, 미국 투어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아직 반년 넘게 남은 상황. 그의 라이브 육성을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12월 30~31일 깜짝 공연을 펼치기로 했다. 무대는 서울 성북동의 한 라이브 재즈 카페. 의외의 장소다.

“가게에 삼사십 명 들어가려나. 내 생애 가장 작은 초(超)미니 콘서트가 될 거다. 너무 팬들과 못 만났으니까 올림픽 주경기장 공연 때보다 더 기대가 된다. 이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우리 ‘새침떼기’(이승철 팬클럽)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거다. ‘어서 와, 이런 공연은 처음이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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