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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外 시간여행·문학 기행기

[김명환의 시간여행] [21] 허기와 싸웠던 초창기 국군 용사들… 영양실조 병사 위한 '保育隊'도 창설

by 까망잉크 2022. 12. 9.

[김명환의 시간여행] [21] 허기와 싸웠던 초창기 국군 용사들… 영양실조 병사 위한 '保育隊'도 창설

김명환 사료연구실장
입력 2016.06.01 03:00
 
휴전 직후인 1953년 9월, 단풍으로 물든 강원도 화천저수지 옆에 특별한 부대가 창설됐다. 육군 모 사단 '보육대(保育隊)'였다.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빠진 병사들이 먹고 쉬면서 몸을 회복하는 부대다. 1955년까지 여러 사단에서 만든 보육대에서 휴양한 사병은 5만 명이 넘었다. 이곳을 거친 병사들은 체중이 평균 3~4㎏씩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보육대엔 바둑, 장기 등 놀거리는 다양하게 갖췄지만, 정작 영양 보충할 음식이 풍족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맹호부대 보육대가 병사들 영양 보충용으로 마련했다고 발표한 건 젖소 3마리였다. 우유를 짜서 사병들이 마시게 한다는 것이다(조선일보 1953년 10월 7일자).
1967년 9월 6일 고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논산 육군훈련소를 찾아 훈련병들과 식사하고 있다. 군 급식의 ‘1식 3찬’ 시대 이전이어서 식판의 반찬 칸이 2칸뿐이다.

초창기 국군이 풀어야 했던 큰 숙제는 병사들의 영양실조 문제였다. 6·25 때부터 국군은 배가 고팠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2월엔 미국의 뉴욕타임스지까지 "한국군의 영양 부족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썼다. NYT는 "동맹국 군대의 고통을 그냥 방관할 수 없다"면서 "군사적인 면에서도 굶주린 병사는 훌륭한 병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1956년 6월에는 한국군의 영양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미 국무성이 파견한 영양학 박사가 방한해 일선 부대 사병 500명을 검진하기도 했다. 1954년부터 군인의 하루 열량 섭취 목표를 3800㎉로 정하면서 국군의 급식이 시작됐지만, 병사들이 실제로 섭취한 열량은 목표에 상당히 못 미쳤다. 예산도 빠듯했는데, 가뜩이나 넉넉지 못한 장병 먹거리를 일부 군 간부가 빼돌리는 비리가 1950년대에 꼬리를 물었다. 4·19 직후의 조사에 따르면 군인들의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은 기준치의 절반밖에 안 됐고, 지방질, 칼슘, 비타민 등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그 결과인지 1960년 사병들의 체중은 전년도보다 평균 0.3㎏이나 떨어졌다. 1957년 전방부대의 훈련 모습을 현장 중계한 신문 기사 속엔 "급식 메뉴로 살찐 장병들은 훈련에 쉴 겨를이 없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군인들이 살찌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렇게 썼을지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1960년대 후반에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968년 전방의 어느 사단에서는 1주일에 한 개씩 주던 간식용 빵을 매일 한 개씩 지급하자 병사들이 "한결 허기가 가시는 것 같다"고 좋아했다. 당시 사병 한 사람에게 지급되던 하루 6홉(약 1L)의 주식(主食)은 북한군의 하루 급식량(7홉)보다 적었다. 전방부대 일부 병사는 밥을 조금이라도 더 타기 위해 밥그릇 밑바닥을 두드려 불룩하게 돌출시켜 놓는 바람에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 그릇이 빙그르르 굴렀다(동아일보 1968년 7월 11일자). 국군 용사들이 1964년부터 베트남에 파병돼 고깃덩이 들어간 미군 C레이션을 먹으면서 가장 먼저 시작된 변화는 체중의 증가였다. 파월 장병들은 베트남 참전 5개월 만에 평균 2~3.5㎏씩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옛 국군은 허기져서 고생했는데 오늘날엔 군인들이 너무 살이 쪄 고민이다. 지난 5월 30일 보도된 육군 간부 1026명의 검진 결과를 보면 34.9%가 비만, 25.9%가 과체중이었다. 정상 체중인 육군 간부는 39.2%에 불과했다. 고칼로리 식사와 음주,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굶주린 군인' 못잖게 '살찐 군인' 역시 훌륭한 군인은 아니니,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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