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07] 이단(李端)과의 이별
입력 2023.02.13 00:50
이단(李端)과의 이별
고향 땅 여기저기
시든 풀잎이 뒤덮을 때
친구와의 헤어짐은 더없이 쓸쓸하였네
떠나는 길은
차가운 구름 너머로 이어지고
돌아올 땐 하필 저녁 눈이 흩날렸었지
어려서 부모 잃고 타향을 떠도는 신세
난리 통 겪는 중
우리 알게 됨이 너무 늦었네.
돌아보니 친구는 없고
애써 눈물을 감추니
이 풍진 세상 다시 만날 날은 언제일까
-노윤(盧綸·739~799년)
※류인 옮김, 원시 번역시와 다르게 행을 배치함.
난리 통에 알게 된 친구는 얼마나 애틋할까. 이단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노윤의 시에 등장하는 난리는 중국 당나라를 뒤흔든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의 반란(755~763년)을 뜻한다. 당대의 시인 두보(杜甫)나 노윤의 시를 보면 약 9년 동안 지속된 전란의 흔적이 여실히 나타나있다.
태평성대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전쟁의 혼란 속에 알게 된 친구와의 우정은 더 특별했을 것이다. 어려울 때 친구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전쟁은 고향이 다른 두 사람을 어느 날 한곳에서 마주치게 해 둘도 없는 친구로 만들어준다. 안사의 난을 당해 유랑 생활을 하다 친분을 맺게 된 노윤과 이단은 짧고 불꽃 같은 우정을 나누다 헤어졌지만, 두 젊은이의 눈물어린 작별은 한 편의 시로 다시 태어났다.
친구와 헤어지는 날에 “하필 저녁 눈이” 흩날렸으니 몸과 마음이 얼마나 추웠으련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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