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83〉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3-01-28 03:00업데이트 2023-01-28 08:07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이상국(1946∼ )
설 명절이 지났으니 이제는 새해의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어떤 이는 다이어트를, 다른 이는 금연을, 또 다른 이는 취업이나 승진을 계획하리라. 매년 거창한 새해 계획을 세워보았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첫날의 다짐이 성공보다는 실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더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찌 보면 새해 다짐이란 성공보다는 시도 그 자체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뜨끈해질 신년 계획은 없을까. 시도가 곧 행복인 새해의 목표는 없을까. 새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올해의 계획을 고민하는 이들이 계실까 봐 오늘의 시를 준비했다. 적어놓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계획. 이렇게 살아야 사는 거지 싶어 오래 기억하고 싶은 목표. 우리 마음속 위시리스트가 바로 이 시에 들어 있다.
집에 일찍 가서 밥 지어지는 냄새를 맡는다. 토끼 같은 아이들과 뒹굴면서 논다. 집에서 입는 옷은 허름해도 세상 편하다. 타인, 욕망, 상처에 끌려다니지 않고 그저 내가 나인 듯 존재하는 시간을 즐긴다. 이 얼마나 천국 같은 장면인지 모른다. 동시에 이 얼마나 맞이하기 어려운 시간인지 모른다. 여기에 거창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신년 계획이 있다. 그러니까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나민애 문학평론가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이상국(1946∼ )
설 명절이 지났으니 이제는 새해의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어떤 이는 다이어트를, 다른 이는 금연을, 또 다른 이는 취업이나 승진을 계획하리라. 매년 거창한 새해 계획을 세워보았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첫날의 다짐이 성공보다는 실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더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찌 보면 새해 다짐이란 성공보다는 시도 그 자체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뜨끈해질 신년 계획은 없을까. 시도가 곧 행복인 새해의 목표는 없을까. 새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올해의 계획을 고민하는 이들이 계실까 봐 오늘의 시를 준비했다. 적어놓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계획. 이렇게 살아야 사는 거지 싶어 오래 기억하고 싶은 목표. 우리 마음속 위시리스트가 바로 이 시에 들어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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