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0)이삼만과 독사
입력 2020. 09. 17 17: 30
“그러니까 태조 이성계가 고려왕실을 멸망시키고 그 소경점쟁이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크게 후사(厚謝)를 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불러와서 점사(占辭)를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는구만요.”
![](https://blog.kakaocdn.net/dn/DU1bP/btr681jVkQD/RsUafTpUC9Ka45smMrD8q1/img.jpg)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검은 수염 덥수룩한 중년의 사내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 봉사여도 그 점쟁이 성한 사람보다도 더 뛰어나네. 왕 될 사람도 알아보고 그랴!”
늙은 사람 하나가 혀를 내두르며 말한다.
“어흠! 본래 그것이 세상이치라네! 도둑이야기에 왕 이야기를 들었으니 좋다! 나는 선비 학자 글씨로 이름 날린 명필 이삼만 선생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
유선각 가운데 앉아 산수화에 뉘 시구가 한자로 써진 커다란 합죽선을 살랑거리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책깨나 읽어 문자속량깨나 머릿속에 들었을 그 마을의 양반네 같은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떡하니 나선다. 이쯤 되면 이야기는 너나 할 것 없이 자동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 명필 이삼만 이야기라! 그가 누굴까? 어디 한번 들어보자.
“으음!......... 명필로 이름을 떨친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은 조선 순조 때 전라북도 정읍현 동면 부무곡에 살았던 사람인데......”
이름자의 삼만은 세 가지가 늦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집이 가난하여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는 뜻이고, 그리하여 세상에 나가는 것이 늦었다는 것을 말함이고, 또 장가를 늦게 들어 자손을 보는 것이 늦었음을 말함이다.
가진 것 없는데다가 그를 끌어줄 사람 하나 없었으니 이삼만의 인생도 제 아비처럼 비루하게 흙이나 뒤집어 먹으면서 살아야할 운명이었다. 근근이 농사일을 해서 목숨 줄이나 겨우 이어가는 처지였으니 이삼만의 아버지 이지철은 가끔 산에 올라 약초를 캐 말려 팔기도 했다. 인생살이란 게 아무 일없이 그냥 그렇게 먹고 마시고 즐기다 운명대로 살다 가버리면 그대로 말일이었지만 이삼만이 사는 정읍 땅 부무곡에는 유독 독사가 득실대는 곳이었다. 이삼만이 19세 되던 해 초가을 아버지 이지철은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다가 불행히도 독사에 물리고 말았다. 한약방에 가서 독사의 독을 처방할 약을 지어와 달여 먹는데도 효험이 없었고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 그것도 독사에 물려 죽은 아버지, 이 일은 온통 이삼만의 가슴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효성이 지극했던 이삼만은 독사를 원수로 생각했고 그 후로 독사만 보면 닥치는 대로 잡아서 껍질을 홀랑 벗겨 그 자리에서 통째로 질겅질겅 씹어 먹어버렸다. 이삼만이 독사만 보면 뭐에 홀린 듯 모조리 잡아 먹어버리자 독사들은 이삼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 지역에서는 정월 첫 뱀날 새벽에 쑥불 피워놓고 사(巳)자 써서 집 기둥에 거꾸로 붙이는 뱀뱅이 옆에 이삼만이란 이름을 함께 써 붙여 집안에 들어오는 뱀을 예방하려고 했다하니 이삼만의 독사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독사에게 물려죽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독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은 이삼만은 그것이 아버지의 원수 갚음의 행위였을 뿐인데 그로 인한 결과는 참으로 예상 밖이었다. 이삼만이 늦도록 정력이 좋았고 또 그가 서예가로서 이름을 세상에 떨쳤던 그의 초서(草書)필체인 류수체(流水體-창암체라고도 함)가 누가보아도 마치 뱀이 꿈틀거리는 형상 같았던 것이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1)개천의 용
![](https://blog.kakaocdn.net/dn/pPLmc/btr670k7Ye2/m3rDmo2ehD4F7NP6ryOWk0/img.jpg)
그림 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독사에 물려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갚기 위해 독사를 잡아먹은 그 내력과 강한 정력, 그리고 늙도록 필력이 좋아 꿈틀거리는 뱀과 같은 생동하는 필을 휘갈겨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우연한 죽음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뭇 사람들의 추측을 유발하게 하였고, 그 추측이 참으로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기에 인생살이의 행불행(幸不幸)에서 오는 오묘한 이치를 어리석은 속인은 도무지 무슨 수로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예측불허의 인생사, 희비애환(喜悲哀歡)의 깊은 질곡에 그저 닫힌 입이 떡 벌어질 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삼만이 서예가로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일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는 것일 게다. 당시야 사서삼경을 읽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의당 글씨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꿈틀거리는 독사를 손에 쥐어 보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되다보니 그 생동하는 동작이 몸에 익었을 게고 은연 중 휘갈겨 쓰는 필치에 그 역동하는 힘이 배어나왔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독사는 정력제라는 속설이 있듯이 독사를 생식으로 복용한 이삼만은 팔목의 기력이 넘쳐나 필치에 힘이 더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이삼만도 과거에 등과하는 방법 외에는 출세할 별다른 묘책이 없었다. 그 정도 공부야 양반 자제들에게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을 것이다. 학문에 달통했다는 이름난 스승 찾아가 배우며 논어 맹자 중용 대학하는 경전을 밥만 먹으면 붙들어 안고 암송하고 베껴 써야하는 그들에게 이삼만의 학문이 어찌 감히 능가할 수 있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재력과 권력을 모조리 쥐고 있는 그들이 우선인 세상 아닌가! 당시 그들 양반 자제들을 공부시켜 권력과 재력을 세습시키려 학문을 연마하게 하는데 혈안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뒷받침이 좋은 뛰어난 그들을 이겨낸다는 것은 그중 특이한 몇몇에 불과했을 것이고 또 대부분은 그들 권력 가진 양반들의 차지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이삼만 같은 경우야 학문을 연마한다고 한들 그저 한 마을에서 겨우 문자속량이나 배워 깨친 이름자 정도나 쓸 줄 아는 부류의 식자층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런 이삼만 같은 부류를 운 좋게도 용케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무언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여 그 특별한 것을 알아보는 눈을 만나면 특별한 사람으로 대접 받을 수도 있었다. 이른바 특별한 사건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었을 때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다.
앉아 밥 먹으며 글을 읽고 또 꿈속에서 글을 읽고 쓰는 권력층인 양반자제들이야 항상 용이 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다반사로 용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알아주는 용들이 아니다. 그들 출신이 용이었기에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이삼만은 ‘개천의 용’이 되었는가? 그야말로 시골에서 농사일이나 하며 근근이 글자를 익혀온 이삼만이 어떻게 하여 한 지역, 한 시대의 명필로 대접받게 되었는가? 그것은 특별한 혜안을 가진 뛰어나고 사려 깊은 위대한 위인으로부터 가능하다.
여기 옥구슬이 서 말이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옥구슬인줄 몰라본다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옥구슬일 뿐이다. 돈이 되는 일, 권력이 되는 일, 이익이 되는 일에만 눈이 팔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도무지 그 이상의 것은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세상이 한심하고 쓸쓸하고 죽은 것 같은 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말함이다.
봄날 매화에 여름날 장미, 가을날 단풍에 겨울날 백설은 모든 눈이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모든 눈들에게 보이는 것들은 그저 그럴 뿐이었다. 세속의 온갖 이해타산(利害打算)에만 젖어 살아가는 속인들의 타성(惰性)에 젖은 눈에는 일상 속에 묻혀있는 특별한 것이 절대로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2)중국인 방문객
![](https://blog.kakaocdn.net/dn/TG533/btr682pCa03/59BXSQMIXZLKXXAx4sKND1/img.jpg)
그림 정경도(한국화가)
그런 눈으로 이삼만을 보면 그저 하잘것없는 가난한 농사꾼일 뿐이었다. 매화 같은 선비의 기품도 없었고, 장미 같은 화려한 재력도 없었고, 단풍 같은 배경도 없었으며, 백설 같은 권력도 없었다. 세상에 찌들어 살아가거나 취해 살아가는 모든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일 리가 없었다. 도무지 알아보는 이가 없으니 그저 진흙 속 옥구슬처럼 개흙 속 깊이 쳐 박혀 초라히 세월 속으로 초연히 사라져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기이하게도 그런 이삼만의 숨은 재주를 알아보는 특별한 눈이 있었으니 천재일우(千載一遇)가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인재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하루에 일천자를 쓰고, 벼루 열 개를 먹을 갈아 맞구멍 내고, 붓 천 자루가 뭉개졌다는 이삼만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삼만이 낮에는 논밭 일에 나무를 해다 나르고 밤에는 글씨를 쓰면서 학문에 열중하던 어느 날이었다. 정읍에 사는 머리가 허연 나이든 사람 하나가 술 한 병을 들고 이삼만을 찾아왔다.
“삼만이 집에 있는가?”
이삼만이 보아하니 전에 아버지가 약초를 캐와 말려 팔던 약초 상인이었다.
“예! 어르신,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이삼만이 공손이 인사를 하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 자네에게 부탁이 있어 왔네.”
이삼만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약초 상인이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내가 글씨를 모르는 까막눈이 아닌가! 그래서 말일세....... 당재(唐材)를 구할 물목기(物目記)를 좀 써주시게나.”
드넓은 중국 땅 온갖 약재가 많아 그곳에서 들여오는 당재(唐材)는 아주 귀하게 여겼다. 대구 약령시에서 중국산 약재 무역을 하는 한자를 모르는 그 약초 상인은 중국인 약초 상인에게 보일 약초를 구입할 물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삼만은 먹을 갈아 종이에 별 생각 없이 약초 상인이 부르는 대로 물목기를 써주었다.
그리고 몇 달 뒤였다. 정읍고을에 평소 볼 수 없었던 중국인들이 나타났다. 그 중국인들은 뜻밖에도 이삼만을 찾아왔다며 이삼만의 집을 묻는 것이었다.
도대체 중국인들이 무슨 연유로 논밭이나 일궈먹는 평범한 시골 사람에 불과한 이삼만을 찾아왔단 말인가?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이삼만은 중국인들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동네사람들에게 듣고는 마지못해 몸단장을 하고 중국인들의 처소로 향해 갔다.
‘중국인들과는 일면식도 없는데다가 찾아올 아무런 까닭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중국인들이 자신을 찾아올 까닭이 없었던 이삼만은 참 이상도 하다고 생각하며 허탕 칠 마음으로 가볍게 발길을 옮겼다. 한참 후 중국인들이 묵고 있는 정읍의 어느 주막집에 당도하니 낯선 중국인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함께 온 세 명의 중국인들은 사나흘이나 그 주막집에 머물면서 이삼만을 수소문해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 새하얀 머리칼의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이삼만에게 말했다.
“이삼만 선생, 내 당신의 글씨를 받으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글씨를 받으러 중국인이 이곳까지 왔다니? 순간 이삼만은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더구나 이순이 넘은 듯 보이는 중국인이 나이어린 이삼만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존경하는 웃어른을 대하듯 공손했다. 전라도 깊은 산골에 묻혀 사는 이름 없는 하찮은 무명 필객인 자신의 글씨를 어떻게 알아보고 글씨를 받으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이러 저런 아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토 다큐] 태양의 후보생 (0) | 2023.04.04 |
---|---|
[포토 다큐] ‘태후’ 총격신처럼 쏴! 쌓인 스트레스가 싹! (0) | 2023.04.03 |
“5일장 가도 점심 못 먹지···버스 놓칠까봐” (0) | 2023.03.31 |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7~9) (0) | 2023.03.31 |
명필 이삼만 (5)제 5회 만천과해(瞞天過海) (0) | 2023.03.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