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7회)문중유구(門中有口)
입력 2020. 09. 14 1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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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허허! 저 비렁뱅이 거지가 자신의 운명의 길흉을 점치려 하는 것인가?’
이성계는 호기 어린 눈빛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맹인 도사님, 이놈 팔자가 어떻겠는가? 운명을 좀 봐주시오”
비렁뱅이가 말했다.
“아! 좋지요.”
그 말을 들은 소경점쟁이가 손님이 와서 앞에 앉은 것을 알고는 반질반질 기름때 묻고 닳아빠진 나무판에 여러 한자가 검은 글씨로 조각되어진 것을 비렁뱅이 앞으로 쓱 내밀었다.
“자! 여기 판에 새겨진 글자 중 맘에 드는 글자를 하나 골라보시오?”
소경점쟁이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암! 좋지요. 맹인 도사님, 잘 맞추면 복채를 많이 주고, 틀리면 콧물도 없소!”
비렁뱅이가 글자를 고르려다 말고 속으로 감춘 무슨 수작이라도 있는 듯 슬그머니 말을 비틀었다.
“점을 보지도 않고 무슨 엄포가 먼저요. 세상사 점괘는 나오는 대로 말하는 법, 맞고 틀림은 하늘이 정하는 법, 보기 싫으면 가시오.”
소경점쟁이가 점잖게 말했다.
“에 에흠! 좋소이다!”
구멍 숭숭 뚫리고 덕지덕지 기운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비렁뱅이가 아마도 복채가 없어서 시비를 걸고 점도 보지 않고 그냥 일어서서 가려나 했더니 글자를 고를 양으로 글자판을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글자를 고를 것인가? 이성계가 보아하니 어림잡아 백여 개의 한자들이 콩알처럼 오밀조밀 새겨진 나무판이었다.
“자! 맹인 도사님, 내 이 글자를 고르겠소!”
그 말을 들은 이성계는 비렁뱅이가 손가락을 짚어 고른 글자로 재빨리 눈을 돌렸다. 비렁뱅이가 고른 글자는 물을 문(問)자였다. 소경점쟁이가 비렁뱅이가 고른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어 어루만져보고는 대뜸 입을 열었다.
“으음!......... 문중유구(門中有口) 하니 분명 걸인지상(乞人之相)이라! 배고픈 객은 해 떨어지기 전에 어서 갈길 가시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새 옷에 고깃국 먹을 돈냥이라도 얻을 것이야!”
그 뜻인 즉 남의 집 문 앞에 와서 입을 벌리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니 분명 비렁뱅이 거지상이라는 것이었다. 말을 마친 소경점쟁이는 그 자가 거지임을 알아보고 도무지 복채를 받을 수 없을 것을 알았던지 어서 가라며 고개를 가로로 휘저으며 외로 틀어 버렸다.
“에구! 재수 없어! 하나도 안 맞네! 하나도 안 맞어! 에이! 퉤!”
그 말을 들은 비렁뱅이는 복채를 줄 수 없는 제 처지를 변명하듯 상을 온통 찌푸리며 한마디 하고는 벌떡 일어나 침을 뱉고는 생쥐 쥐구멍 찾아 도망가듯 슬그머니 줄행랑을 놓는 것이었다. 앞을 못 보는 소경점쟁이가 복채를 안준다고 비렁뱅이를 쫓아가 잡을 수는 없었겠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도 있고 양심에 찔려 비렁뱅이는 황급히 그곳을 뜨는 것이었다.
‘으음! 저 소경점쟁이의 글 풀이가 제법 용하구나!’
그 것을 유심히 지켜본 이성계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는 도망가는 비렁뱅이 뒤를 슬그머니 쫓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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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명필 이삼만 (8)누더기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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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남문 앞을 가로질러 저자거리를 향해가는 비렁뱅이를 뒤따라 쫓아 잡은 이성계는 걸음을 늦추었다. 비렁뱅이가 기와집이 많은 인적이 드문 개경의 으슥한 골목길로 접어들어 돌아가는 곳까지 이른 이성계는 비렁뱅이 앞을 잽싸게 가로 막아섰다.
“네 이놈! 너는 어찌하여 눈먼 소경을 우롱한단 말이냐!”
“아이고! 나리 죽을죄를 졌습니다. 밥 빌어먹는 형편이라 복채를 줄 능력이 없었습니다요. 한번만 봐주십시오.”
이성계의 호령에 비렁뱅이는 길바닥에 납작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빌어대는 것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내 딱한 처지를 봐서 너를 용서해 주겠다.”
“아이고! 나리! 감사합니다.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비렁뱅이가 고개를 들고 이성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다! 그런데 너에게 부탁이 있다.”
“아이고! 나리, 무슨 부탁입깝쇼?”
비렁뱅이가 이성계의 의외의 말에 놀라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너의 그 누더기 옷을 좀 빌리자구나! 내 너에게 엽전 열 냥을 주겠으니 그 누더기 옷을 내게 주고 너는 새 옷을 사 입고 따끈한 국밥이라도 사 먹거라!”
이성계가 비렁뱅이를 내려다보며 엽전 열 냥을 땅 바닥에 던지면서 말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나리! 당장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렁뱅이가 벌떡 일어나 누더기 옷을 그 자리에서 벗어 이성계에게 주고는 가운데 중요 부위만 가린 헝겊 한 조각 걸친 맨몸뚱이로 바닥을 기면서 엽전을 얼른 손으로 쓸어 담았다.
“아이고! 용하구나! 그 맹인 도사! 오늘 새 옷 입고 고깃국 먹는 특별한 날이라더니! 아이구! 나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비렁뱅이는 이성계를 향해 넙죽 절을 하고는 신이 나서 저자거리를 향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이성계는 자신이 입은 옷을 벗어 버리고는 누가 볼세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그 비렁뱅이가 벗어 준 누더기 옷을 재빨리 걸쳐 입었다.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이성계는 이제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거지 비렁뱅이 꼴이었다.
거지 비렁뱅이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이성계는 발길을 돌려 남문으로 향했다. 아직 소경점쟁이는 남문 앞에 그대로 앉아서 점을 치고 있을 것이었다. 과연 자신의 점괘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성계는 들뜬 마음이 되어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자신을 혹여 누가 알아볼세라 고개를 깊숙이 수그리고 재게 발을 놓았다.
남문 앞에 당도한 이성계가 그곳을 보니 소경점쟁이는 그대로 있었다. 이성계는 비렁뱅이 걸인 흉내를 내면서 그 소경점쟁이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병자에 바보나 되는 양 가느다랗게 하고 말했다.
“맹인 도사님이 앞날을 잘 맞춘다고 소문이 자자해 제 운명을 점치러 왔습니다.”
소경점쟁이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요리조리 흔들면서 앞에 앉아있는 이성계를 보려는 듯 자꾸 눈알을 굴리면서 말했다.
“그러시다면 여기 나무판에 새겨진 글자를 하나 골라보시오.”
이성계는 그 나무판을 보고는 비렁뱅이가 전에 골랐던 그 물을 문(問)자를 서슴없이 짚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9)군왕지상(君王之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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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왜 이성계는 비렁뱅이 거지 옷을 부러 걸쳐 입고 가서 하필 그 비렁뱅이 거지가 골라 짚은 물을 문(問)자를 고른 것일까? 그것에는 이성계 나름의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일까?
이성계가 손가락으로 짚어 고른 물을 문자를 자신의 손가락으로 매만져 보던 소경점쟁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누더기 옷을 걸쳐 입고 앉은 이성계를 향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좌군우군(佐君右君)하니 분명 군왕지상(君王之相)이라!”
그 뜻인 즉 물을 문(問)자를 뜯어보니 왼쪽을 보아도 군왕의 형상이요, 오른쪽을 보아도 군왕의 형상이니 당신은 분명 군왕이라는 것이었다.
“에이! 이 양반아! 오늘 낼 하는 비렁뱅이 거지더러 군왕이라니! 크악 퉤!.......”
이성계는 깜짝 놀라 병자인척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면서 비렁뱅이 거지와 똑같이 침을 뱉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좌우의 구경꾼들을 살피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약 그 자리에 혹여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있어 고려 왕실에 이 사실을 발고라도 하는 날에는 역적의 죄를 뒤집어쓰고 잡혀가 정말로 큰일을 치를 것이었다.
“허허! 내 오늘 두 번 공탕을 치겠다했더니 여지없네 그려!”
복채도 주지 않고 피해 달아나는 이성계의 귓전에 소경점쟁이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흐흠! 과연 저 소경점쟁이가 신인의 경지에 이른 천하의 실력을 갖추었단 말인가!’
이성계는 속으로 그 소경점쟁이의 신통함을 경탄해 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성계는 당시 고려왕조를 들어 엎어버릴 엄청난 계획을 가슴에 품고 있던 터라 ‘그 일이 실패할 것인가? 성공할 것인가?’를 노심초사 걱정하며 거사를 단행할 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소경점쟁이가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자신의 점괘를 보고 ‘군왕지상’이라니 이는 곧 성공을 예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과연 소경점쟁이는 무슨 연유로 비렁뱅이 누더기 옷을 걸쳐 입고 온 거지와 이성계가 물을 문(問)자를 똑같이 골랐는데도 그 점괘를 정반대로 다르게 판단하여 풀이했단 말인가? 바로 그 소경점쟁이는 겉모습과 실상의 다름을 깊이 깨달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소경점쟁이는 눈이 멀어 사물의 외관(外觀)은 절대로 볼 수 없었는데,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일반 사람들은 사람들의 돈과 권력과 지위와 미추(美醜)와 먹을거리의 외관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 내면의 깊은 실상은 절대로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 소경점쟁이는 같은 글자를 고른 자라도 그 내밀한 실상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각기 정반대로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것은 돈과 지위와 권력을 가진 겉모습만 기름지고 화려한 그 누구라도 그 내밀한 실상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말함이다. 연줄이나 아부아첨, 거짓에 갖은 뇌물로 얻은 자리에 버젓이 올라앉아 터무니없이 많은 대가를 챙겨가면서 그것도 부족해 뇌물이다 뭐다 하여 눈치껏 백성의 고혈(膏血)이나 맛나게 빨아먹으며 나 잘났다고 우쭐거리면서 온갖 협잡과 악행 그리고 남모르는 부정부패에 절어 치부나 하는 자라고 한다면 그가 곧 칼 안든 강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한 외관과 실상의 다름의 경지를 소경점쟁이는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계는 어떠한가? 이성계 또한 그 소경점쟁이 못지않다. 무장(武將) 이성계는 조선의 기틀을 세운 문인(文人) 혁명가 삼봉 정도전을 알아본 혜안을 가진 자가 아닌가! 그것은 마치 문왕이 강태공을, 유방이 장량을, 유비가 제갈량을, 조조가 순욱을, 이세민이 위징을, 칭기즈칸이 야율초재를, 주원장이 유기를 알아본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세상의 빛나는 온갖 허울을 뒤집어쓰고 허명에나 잔뜩 도취해 살아가는 자들로서는 어찌 가당키나 하랴! <계속>
출처 : 남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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