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제3회)친정어머니
입력 2020. 10. 26 18: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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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때는 바야흐로 봄, 멀리 남쪽에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죽은 듯 겨울 눈발 속에 묻혀있던 푸른 새순들이 발동(發動)을 하는 때라 그런지 젊은 여인인 신씨 부인의 가슴에도 살랑살랑 봄바람이 이는 것이었다. 모든 생명 되살아나는 이 싱그러운 봄에 자신은 죽어가는 병든 남편 옆에서 죽음을 생각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당장 이 지겨운 곳을 떠나버리고도 싶었지만 시집가서 그 집 귀신이 되어 지켜야할 아녀자의 법도가 엄연하기에 신씨 부인은 밖으로 궂은 마음 한조각 내지 못하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오후나절, 그런 신씨 부인 집에 이웃 마을에 사는 늙은 친정어머니가 왔다.
마른 명태처럼 파리하게 말라 비틀어져가는 핏기 없는 얼굴로 눈망울을 굴리며 숨만 겨우 쉬고 누워있는 사위를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애간장을 태우며 딸을 보고 말했다.
“애야! 앞산 너머 점을 아주 잘 치는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데 너의 남편이 살아나겠는가 아주 죽을 운명인가 점이라도 한번 쳐보아라!”
“점을 쳐봐요”
신씨 부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늙은 어머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이것아! 이렇게 넋 놓고 한숨만 쉬고 있느니 혹시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살 사람인지 죽을 사람인지라도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늙은 어머니가 골 깊은 이마의 주름살을 찡그리며 속이 팔팔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백약을 써도 효과가 없으니 용한 점쟁이가 있다면 조마조마하며 사는 것보다야 어찌되건 앞일이라도 시원하게 알고 싶은 신씨 부인이었다. 남편이 단명할 운을 타고났거나 남편이 죽어 나갈 상부할 팔자라면 그것도 운명이니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고, 또 사내들의 손길에 길들여지며 기생으로 살아갈 팔자라면 또 그것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누구나 이 한세상 바르고 정직하게 고대광실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부부간에 잘살고 싶겠으나 세상일이란 맘과 같이 풀리지 않으니 닥치는 대로 순간순간 스스로를 위안하며 자신이 가진 지혜대로 살아갈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어쩌면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는 기다란 길이 강물처럼 아스라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점쟁이가 그렇게 용해요?”
신씨 부인이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늙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 그런다고 온 고을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 점쟁이 정씨 영감이 귀신같은 신통력이 있어서 도둑놈이 도둑질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늙은 어머니는 그 정씨 영감이라는 점쟁이가 점을 쳐서 소도둑을 잡은 이야기를 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제4회)소도둑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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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이웃마을 덕만이라는 중년의 농부가 봄날 소 쟁기질을 논에서 하고 논둑에 소를 매어 두었다. 힘들게 일한 소에게 논둑에 무성한 풀을 뜯어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덕만은 논에서 삽으로 논둑을 고치고 흙을 고르는 일을 했다.
한참 일을 하고 있으니 건너 논에서 일하는 늙은 농부가 집에서 새참을 내왔는지 막걸리를 한잔 하라고 오라고 손짓하며 소리쳤다. 덕만은 흙 묻은 손을 논물에 씻고 개울을 건너가 늙은 농부와 두어 잔 막걸리를 마시고 돌아왔다.
덕만이 다시 일을 하려고 삽을 손에 들며 얼핏 소 매어둔 자리를 보니 소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쇠말뚝을 실하게 박아 소고삐를 매어 두었는데 소가 보이지 않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덕만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아 한달음에 논둑으로 뛰어가서 소 매어둔 자리를 확인해 보았다. 쇠말뚝이 뽑혀져 버린 것이 풀을 뜯어먹다가 어디로 가버린 것 같았다. 멀리 주위를 휘둘러보는데도 소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오메! 이거 환장허겄네! 소가 어디로 갔지! 대낮에 눈앞에서 소를 잃어 버렸단 말인가!’ 농촌에서 소는 귀한 살림밑천이었다. 논밭 쟁기질 부려먹고 수레 달아 무거운 짐 나르고 집안에 혼례 등 대사 치를 때 팔아서 요긴하게 돈을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소를 잃어 버렸다니!
덕만은 절망으로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생각해보니 쇠말뚝이 소가 풀을 뜯어 먹으려고 힘을 쓰는 바람에 빠져 나가버렸다면 풀을 뜯어먹으면서 그 자리를 맴돌 것이었는데 누군가 소도둑놈이 일부러 사람 눈 잃어버린 틈을 타서 훔쳐가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덕만은 소 잃어버린 낙망한 가슴으로 이리저리 미친 듯이 들을 뛰어 달리며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소는 그림자도 없었다. 필시 소도둑놈이 소를 훔쳐 이 좁은 산골짜기를 빠져 나가버린 게 분명했다.
덕만은 손에 흙도 씻지 못하고 그 길로 용하다는 이웃마을 점쟁이 정씨 영감을 찾아 갔다. 점쟁이 정씨는 인근에서 몰려온 사람들에게 점을 쳐주고 있었다. 자기 차례가 오자 덕만은 부리나케 정씨 영감 방으로 들어갔다.
“영감님! 논에서 쟁기질 한 소를 논둑에 매어 두었는데 없어져 버렸소. 소도둑놈을 좀 잡아 주어야겠소.”
덕만이 다급하게 말했다.
“가만! 가만! 임자가 논에서 놓아버린 소를 날더러 찾아 달라니! 그 참!”
수염이 허연 점쟁이 정씨 영감이 덕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감님! 애간장이 펄펄 타서 못견디겠구만요. 소만 찾아주면 복채는 두둑이 드릴 테니 어서 빨리 좀 점을 쳐주시오.”
덕만이 우는 소리로 애걸하며 말했다. <계속>
남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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