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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죽겠습니까?

by 까망잉크 2023. 6. 17.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죽겠습니까?

[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노인이 사라진 사회, 천국인가 지옥인가

김동식 소설가
입력 2023.06.17. 03:00
 
일러스트=한상엽

천국에서 내려온 그의 목소리를 전 국민이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천국의 국토부 장관이라 소개한 그는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번에 저희 천국에서 신도시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천국에서도 1등급으로 훌륭한 영혼들만 갈 수 있는 지역이라 자부하는데, 지금 너무 텅 비어서 보기 휑한 게 문제입니다. 책임자인 제 면이 서려면 좋은 그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제안인데, 앞으로 한 달 안에 노환으로 사망할 운명인 노인분들을 모두 즉시 사망토록 하고 싶습니다. 대신에 그분들은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무조건 천국행을 보장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요소에서 충격을 받았다.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 천국에도 신도시 같은 게 있다는 것, 사람의 수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 등. “내일 투표를 한 후 시행하겠습니다.” 그가 떠난 뒤, 사람들은 다급해졌다. 노환으로 한 달 안에 죽을 예정인데, 내일 죽는 것에 동의하면 천국을 보장해 준다? 말도 안 되는 제안 같았지만, 의외로 긍정적인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천국이 존재한다는 말은 반대로 지옥도 존재한다는 말 아냐? 살면서 죄 하나 안 지은 사람이 없을 텐데, 확실히 지옥 안 가려면 무조건 찬성해야지.” “심지어 1등급 영혼만 갈 수 있는 곳이라며?”

이런 의견은 사실 누군가의 죽음에 동의하는 것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가 ‘내가 노인이면 무조건 한다’며 말을 보탰다. 이윽고 다음 날, 그가 다시 찾아왔다. “어제 드린 제안을 생각해보셨겠지요? 1시간 동안 표를 던져주시죠.” 투표 방식은 독특했다. 눈을 감기만 하면 머릿속 검은 공간에 투표함과 투표용지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좋은 기회니까 찬성에 한 표를 던지자는 쪽, 아무리 그래도 죽여선 안 된다는 쪽, 수상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쪽. 결과는.

“찬성이 더 많군요! 지금 즉시 그분들을 천국으로 모시겠습니다.” 곧장 전국이 뒤집어졌다. 수천 명의 노인이 일시에 숨을 거둔 것이다. “어떤 미친놈들이 찬성표를 던진 거냐고!”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졌는데, 전부가 분노의 울음은 아니었다. 사망한 노인들은 평안한 자세로 누워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았고, 피부의 검버섯이나 지병의 흔적이 모두 완치돼 깔끔한 상태였다. 은은한 광채가 흐르는 듯도 했는데, 이건 정말 천국에 올라갔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형태의 죽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유족의 반응도 보편적인 노인 사망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천국 가셨어. 우리 할머니는 천국 가셨어.” 그 말은 정말 커다란 위로가 돼주었다. 천국에서 잘 지낼 거란 사실보다 더한 호상(好喪)이 있겠는가? 주변에서는 그 호상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중에 우리 부모님은 좋은 곳에 갈 수 있을까? 더 나중에, 나는? 이 ‘노인 동시 사망 사건’의 후폭풍은 생각보다 격렬하지 않았다. 반대표를 던진 사람 중에 분노해야 할 명분이 있는 경우는 두 부류였다. 이미 죽은 당사자와 그 유족들. 당사자야 이미 죽었으니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유족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호상을 받아들였다. 대충 무난하게 지나가는 듯했는데, 며칠 뒤 그가 다시 나타났다.

 

“신도시의 규모가 크다 보니 티가 안 나는군요.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1년 안에 노환으로 사망할 예정인 노인분들의 즉시 사망에 동의하십니까?” 그는 내일 또 투표해보겠다며 사라졌고, 전국은 난리가 났다. “1년? 1년은 너무 길지 않나?” “아니 근데, 저번에 못 가서 아쉬워한 노인분들이 많긴 하던데?” 내일 투표함에 표를 던져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격렬히 토론을 시작했다. 반대의 논리는 생명 윤리 문제로 당연하고 단순했지만, 찬성의 논리는 복잡하게 다양했다.

“나라면 무조건 찬성합니다. 어차피 1년 안에 병으로 눈감을 운명이라면, 천국 보장받고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낫죠.” “냉정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같은 초고령 국가가 또 없습니다. 이 기회가 국가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 이 말이죠. 일거양득으로, 천국도 가시고 애국도 하시고.” “보아하니 천국도 일종의 사회 같은데, 신도시에 한국인이 단체로 먼저 자리 잡는다면 이득 아니겠습니까?” “이걸 국가적으로 잘만 기획하면 우리나라는 천국이 가장 사랑한 국가가 되는 겁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으로 성지순례를 올 거란 말입니다.”

다음 날 투표 결과는. “찬성표가 더 많군요. 지금 즉시 천국으로 모시겠습니다.” 두 번째라 그런지 미리 평온한 죽음을 대비한 경우가 많았는데, 준비만 해놓고 죽지 못한 노인은 아쉬워하며 울기까지 했다. 천국이 보장된 호상을 바라는 노인은 생각보다 많았다. 당사자만이 아니라, 사회도 그러했다. 마치 무슨 모양새를 만들어가듯 ‘평온’ ‘안식’ 등의 단어를 각종 매체와 정부 공식 채널은 적극 사용했다. 끝이 아님을 예상한 것일까? 예상은 적중했다.

“1년만 더 추가하죠. 앞으로 2년 안에 노환으로 사망할 예정인 노인분들을 즉시 천국으로 모셔가겠습니다.” 누군가는 이 ‘노인 학살’ 행위에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여전히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스피커들은 다양하게 떠들었다. 나도 가고 싶다, 저번에 할머니가 못 가서 울었다, 초고령사회 문제의 해법이다, 심지어 부동산 가격 하락을 이유로 찬성해야 한다는 말까지.

다음 날 투표가 끝났을 때, 또 전국적으로 많은 노인이 사망했다. 한데 천국의 신도심은 넓어도 너무 넓은 듯했다. 며칠 뒤 또 투표가 시작됐다. 얼마 뒤 다시, 다시, 다시…. “10년! 10년 안에 노환으로 사망할 예정인 노인분들을 즉시 천국으로 모셔가겠습니다!”

얼마 뒤 이런 제목의 기사가 뉴욕타임스 지면을 장식했다. 노인이 행복한 나라, 노환 사망률 0% 복지 국가 대한민국.

※이 글은 픽션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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