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 안 주점
남대문 안 어느 탁주 장수가 개점(開店)한 첫날 해장국을 끓여서 파루(罷漏) 즉시 가게 문을 열고 등불을 걸었다.
한 상주(喪主)가 혼자 들어오더니, "해장국에 술 한 잔 주오." 했다. 곧 내가니 또르르 마시고는,"여기 국하고 술 한 잔 더 따르오." 또 얼른 내가니 쭉 들이켜고는, "내 돈이 없소. 이담에 갚으리다."
탁주 장수는, "아무렴 어떻겠수."
그 상주가 나간 후에 술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진종일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술을 팔았다.
이튿날도 새벽에 가게 문을 열고 등불을 내걸자, 그 상주가 또 들어와서 어제와 똑같이 행동했으나 탁주 장수는, "아무렴 어떻겠수."하였다.
상주가 나간 후로 술꾼이 역시 어제처럼 밀렸다. 탁주 장수는 그가 도깨비거니 생각하고 그 이후부터 더욱 각별히 대접했다.
그 상주가 어느 날 밤 돈 200냥을 들고 와 주면서, "이게 외상 술값이오."했다. 종종 이렇게 했고, 술도 한결같이 잘 팔려서 1년 미만에 돈은 여러 만금이 벌리었다. 술장수가 상주에게 묻기를 "내 술장사는 치우고 달리 계획을 세워보는 게 어떨까요?" "좋지."
가게를 내놓으니, 어느 선혜청(宣惠廳) 사령(使令) 한 놈이 집 판다는 말을 듣고 그 술집이 술이 잘 팔리는데 잔뜩 눈독을 올렸다. 사령이 집값을 두둑히 지불하고 기명 부정(器皿釜鼎) 등속도 후한 값으로 사간 것이다.
사령 놈도 술을 수십 항아리 빚은 연후에 해장국을 끓이고 파루 즉시 가게를 열고 등불을 달았다.
한 상주가 혼자 들어오더니, "해장국에 술 한 잔 주오," 곧 내가니 또르르 마시고는, "여기 국하고 술 한 잔 더 따르오." 또 얼른 내가니 쭉 들이켜고는, "내 돈이 없어 내일 갚으리다." 술장수는 잔뜩 골이 나서, "남의 새로 낸 가게에 외상술이 어디 있어. 빨리 돈을 내시오." 상주는 "돈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돈이 없거든 상복이라도 잡히고 가시오." 상주는 욕을 퍼부었다. "상복을 너 푼 술값에 잡는단 말이냐?"
술장수가 욕설에 바짝 약이 올라 맨발로 뛰어 내려 와서 상주의 볼 따귀를 갈겨주려 했더니 상주는 욕을 연발하며 달아났다. 술장수는 붙잡아서 때려주려고 뒤쫓았으나 잡히진 않고 오히려 점점 멀어졌다.
한 모퉁이를 들어섰을 때 웬 상주가 붙들리었다. 다짜고짜로 방립(方笠)을 벗기고 왼손 오른손 번갈아 볼 따귀를 갈기며 욕지거리를 해 붙였다.
"남의 마수에 와서 돈도 안 내고 술을 마시고는 게다가 욕까지 하니 무슨 버릇이야, 이런 자는 심상하게 다뤄선 안 되지." 하고는 상복을 벗겨가지고 방립과 함께 옆에 끼고 갔다.
이 상주는 다름아닌 벼슬아치 양반이었다. 큰집 기제(忌祭)에 참례하고 파제(罷祭) 후에 단신으로 귀가하다가 뜻밖에 망칙한 변을 당한 것이다. 빰이 얼얼할 뿐 아니라 분기(憤氣)가 탱천(撑天)하여 다시 큰집으로 들어갔다. 온 집안이 대경(大驚)하여 어찌된 영문인가를 물었다.
"엉겁결에 어떤 놈이 돌출하여 약차약차 합디다."
모두들, "술장수 놈 소행이 틀림없다." 하고 하인을 다수 발동하여 방립과 상복을 찾고 술장수를 잡아왔다.
우선 단단히 분풀이를 하고 날이 밝자 형조(形曹)로 이송했다. 형조에서 법에 의거해 귀양을 보내니, 저간에 난 비용이 불소하고, 술 역시 한 잔 마시는 이 없어 이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한 것이다.
<'성수패설(醒睡稗說)'에서, 이우성·임형택 역>
파루 : 오경 삼점에 쇠북을 33번 치던 일. 서울에서 인정(人定 : 밤에 통금을 금하기 위해 매일 밤 10 시에 종을 28번 쳤음) 이후 야간 통행을 금하였다가 파루를 치면 해제되었음 출처: http://www.seelotus.com/ [출처] 마음이 너그러우면(每事從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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