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
누에는 뽕잎을 먹고
연인들은 사랑을 나눈다
뽕나무과(―科 Moraceae)에 속하는 낙엽 활엽교목.
키는 10m에 이른다. 잎은 난형 또는 넓은 난형으로 다소 두껍고 광택이 있으며, 잎 아래쪽은 3~5갈래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잎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잎자루는 길이가 2~3㎝ 정도이다. 6월에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 따로따로 피거나 다른 그루에 핀다.
수꽃은 긴 수상(穗狀)꽃차례로 모여 피고 4개의 수술과 4장의 꽃덮이조각[花被片]으로 되어 있으며, 암꽃은 암술머리가 2개로 나누어진 암술로 되어 있으나 암술대는 거의 없다. 열매는 6월에 흑자색으로 익는다.
뽕나무잎은 잠엽(蠶葉)이라 하여 누에를 기르는 데 쓴다.
우리의 기록에 고구려 동명왕 때, 백제 온조왕 때 농상을 권장 하였고 ,신라 박혁거세 17년(기원 전 40)에는 임금이 마을을 돌며 뽕나무 심기를 권장 하였으며 고려때도 태조, 현종,명종,등이 누에치기를 권장한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에 들어서는 양잠으로 비단옷감 짜는것을 장려 하고 잠실(蠶室)이라 하여 누에를 키우고 종자를 나누어 주던 곳도 있을 만큼
양잠은 귀중한 산업 이었다.
세종5년(1423)잠실 담당 관리가 경복궁에 3,590주,창덕궁에 1천여 주 밤섬에 8,280주로 누에종자 2근10량을 먹일수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궁궐안이 온통 뽕나무밭 이라 짐작 되어진다.잎은 누에 밥으로 열매인 오디는 날것으로 먹거나 술을 담가 먹는다.
뽕나무를 한자로는 상(桑)이라고 하며 어린가지를 상지(桑枝), 잎을 상엽(桑葉), 열매를 상감자(桑堪子), 뿌리껍질을 상백피(桑白皮)라 하여 모두 약재로 쓰고 있다. 한방에서 상지는 신경통 치료에, 상엽은 해열제로, 상감자는 강장제·발모촉진제 및 빈혈 예방에 사용하고, 상백피는 이뇨제와 고혈압 치료제로 쓴다.
<세종실록> 오례(五禮)의 기록에는 뽕나무나 밤나무를 위패를 만드는데,활을 만드는데도 빠질수 없어 군수물자의 역할도 했다.
오래된 뽕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자란 상황버섯이 항암 효과가 있어 각광을 받고 있다.
뽕나무는 원래 키가 큰 교목이지만 재배하는 나무는 자주 잘라주기 때문에 관목처럼 자란다.
뽕나무는 공해에 강하고 어떤 흙에서나 잘 자라며 옮겨심기가 쉬우나, 가지가 잘 꺾어지고 너무 길게 자라는 단점이 있어 정원이나 공원에는 적당치 않다.
꽃은 봄에 피며 딸기 처럼 쌩긴 열매는 크기가 새끼 손가락 마디만 하다.
마음에 흡족해 어쩔 줄 모른다는 뜻으로 "뽕내 맡은 누에 같다"라든가, 2가지 일을 동시에 이룸을 뜻하는 "뽕도 따고 임도 보고"라는 속담이 있으며 시대의 변천이 심한 것을 일컬어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하기도 한다.
잠실의 유래....
명칭에서 부터 누에 蠶(잠), 집 室(실)이라고 하잖아요...기록에 의하면 잠실에서 누에를 쳤다는 기록은 없지만요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나무가 많아 이름이 잠실이라고 된거래요
태조 이성계가 도성을 한양으로 옮기고 난 후에 어떤 한 신하가
"남산의 생김새가 누에 같아 잠두봉이라고 부릅니다. 잠두봉은 풍수지리상 잘 길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라에 불행이 없고 번창할 수 있습니다"이랬대요...-_-ㅋ
그 신하는 그 비법으로 남산주의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렇게 해서 동서남북 사방에 뽕나무 밭인 잠실이 생기게 된거래요
지금이야 잠실이 송파구 내에 동 이름일 뿐이지만요
옛날의 잠실은... 동 잠실은 아차산 아래 한강변 일대, 서 잠실은 서대문 밖 연희동 일대, 남 잠실은 여의도 위쪽에 있는 밤섬이었대요,
그리고 북 잠실은 지금의 성북동 일대이구요.. 이밖에도 지금의 잠실동, 잠원동 일대가 신 잠실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수백년 묵은 뽕나무가 남아있구요, 한남대교 지나 반포쪽으로 가다가 보면
길 오른편에 검게 그을린 고목 한 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는 성종 때 일군 잠실 뽕나무로 500년이 훨씬 넘은 것이라고 하네요..
옛날부터 아이를 못 낳는 여자는
뽕나무 아래에서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하는데
(뽕나무가 해를 상징하고, 해는 남자를 뜻하니까요
그 아래에서 기도를 드리면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했던 거죠)
잠원동의 이 뽕나무도, 옛날 아이를 달라고 빌던 여자가
켜 놓은 촛불이 나무에 옮겨 붙어 검게 그을린 것이라고 그런데요........
명칭에서 부터 누에 蠶(잠), 집 室(실)이라고 하잖아요...기록에 의하면 잠실에서 누에를 쳤다는 기록은 없지만요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나무가 많아 이름이 잠실이라고 된거래요
태조 이성계가 도성을 한양으로 옮기고 난 후에 어떤 한 신하가
"남산의 생김새가 누에 같아 잠두봉이라고 부릅니다. 잠두봉은 풍수지리상 잘 길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라에 불행이 없고 번창할 수 있습니다"이랬대요...-_-ㅋ
그 신하는 그 비법으로 남산주의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렇게 해서 동서남북 사방에 뽕나무 밭인 잠실이 생기게 된거래요
지금이야 잠실이 송파구 내에 동 이름일 뿐이지만요
옛날의 잠실은... 동 잠실은 아차산 아래 한강변 일대, 서 잠실은 서대문 밖 연희동 일대, 남 잠실은 여의도 위쪽에 있는 밤섬이었대요,
그리고 북 잠실은 지금의 성북동 일대이구요.. 이밖에도 지금의 잠실동, 잠원동 일대가 신 잠실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수백년 묵은 뽕나무가 남아있구요, 한남대교 지나 반포쪽으로 가다가 보면
길 오른편에 검게 그을린 고목 한 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는 성종 때 일군 잠실 뽕나무로 500년이 훨씬 넘은 것이라고 하네요..
옛날부터 아이를 못 낳는 여자는
뽕나무 아래에서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하는데
(뽕나무가 해를 상징하고, 해는 남자를 뜻하니까요
그 아래에서 기도를 드리면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했던 거죠)
잠원동의 이 뽕나무도, 옛날 아이를 달라고 빌던 여자가
켜 놓은 촛불이 나무에 옮겨 붙어 검게 그을린 것이라고 그런데요........
참고: 申鉉哲 ,궁궐의 우리나무(박상진 著)
브리태니카,위키,다움신지식시울시 전설,
백과외
'식물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채나무 (0) | 2008.07.23 |
---|---|
관능의창 입술 앵두 (0) | 2008.07.21 |
천안 삼거리 흐~응/ 능수버들 (0) | 2008.07.16 |
손톱에 물...봉선화 (0) | 2008.07.15 |
널리 쓰여지는 버드나무 (0) | 2008.07.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