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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풍류객 심용(沈鏞)

by 까망잉크 2008. 8. 5.

 

풍류객 심용(沈鏞)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조 후기(영. 정조 때)에 합천(陜川)군수를 지낸 심용(沈鏞)의 집안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명문가였지만, 그는 관직에 미련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풍류남아(風流男兒)’로 유명한데, 그 일화 중 하나를 보겠다.

 

심용(沈鏞)은 풍류남아(風流男兒)답게 기생집에 자주 출입했다.

 

하루는 기생과 자고 있는데, 액정서 별감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놈, 네놈이 뉘기에 감히 내 계집을 끼고 자느냐?”

별감이 기녀와 심용이 발가벗고 자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달려들었다. 다급해진 김용은 화로를 들어 그의 머리를 내려치고는 그 길로 기녀를 데리고 달아나버렸다.

“별감이 너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기왕 이리 되었으니 네가 너를 거두겠다.”

부호인 심용은 그녀를 첩으로 삼아 데리고 살았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서 심용이 산으로 천렵을 가는데 한 걸인이 앞을 가로막고 구걸을 했다. 그런데 누더기 옷을 입은 걸인의 얼굴은 화상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심용이 측은하여 걸인에게 물었다.

“얼굴이 어쩌다 그리되었는가?”

“젊었을 때 한 기생과 정분이 나서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그 기생이 다른 사내와 자고 있었습니다. 그 사내를 패주려고 하는데 그 사내가 갑자기 화로를 뒤집어씌워 얼굴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걸인의 말에 깜짝 놀란 김용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겠느냐고 묻자 걸인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심용은 걸인에게 술과 음식을 후하게 대접한 뒤에 첩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첩이 걸인을 왜 집까지 데리고 왔느냐고 물었다.

“이 자는 옛날에 너와 정분이 났던 별감이다. 내가 그에게 화로를 뒤집어씌워 이렇게 되었으니 보상하지 않을 수 없구나. 너는 나에게 와서 아들딸 낳고 부유하게 살았다. 이 집과 재산을 줄테니 이 자를 모시고 살아라.”

심용의 말에 첩은 날벼락을 맞은 듯이 깜짝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다.

“울지 마라. 평생 먹고살 만한 재산과 집을 준다고 하지 않느냐.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간다. 그러나 어미의 정을 끊으라고 하지는 않겠으니 언제든지 아이들을 만나러 와도 좋다.”

 

심용은 첩의 애원어린 손길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떠났다.

 

걸인 된 별감과 기녀의 이야기는 조선 후기 문인인 심노숭(沈盧崇)의 ‘자저실기(自著實記)’에 실려있다.

 

이수광의 잡인열전에서

 

***합천(陜川)심용(沈鏞)은 재물은 소홀히 여기고 의리를 좋아하였으며 풍류(風流)를 스스로 즐겼다. 한 때의 가희(歌姬), 금객(琴客), 주도(酒徒), 사붕(詞朋)들이 그 집에 폭주하여 이르는 것이 마치 저자에 사람 모이듯 하였다. 사람들이 날마다 집안에 가득하였고, 장안의 모든 잔치와 놀이는 공에게 청하지 않으면 준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沈<지명>陜川<인명>鏞 踈財好義 風流自娛 一時之歌姬琴客酒徒詞朋 輻輳幷臻 歸之如市 日〃滿堂 凡長安宴遊 非請於公 則莫可辦也

 

***액정서[掖庭署] :조선시대 내시부에 부설되어 왕명 전달, 궁궐 열쇠 보관, 대궐 정원 관리, 임금이 쓰는 붓 ·벼루 ·먹 등의 조달을 맡은 관청.

***별감[別監]:조선 시대에, 장원서나 액정서에 속하여 궁중의 각종 행사 및 차비(差備)에 참여하고 임금이나 세자가 행차할 때 호위하는 일을 맡아보던 하인.**기녀의 기둥서방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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