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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입이 내리 째진 짐승은 첨 보는데

by 까망잉크 2011. 3. 9.

                                 이거, 입이 내리 째진 짐승은 첨 보는데    

 

                                         항구무가(항문이) 찔레가주고 탁!

 

 

옛날에 참 어떤 새댁이 시어른한테 어렵게 말미를 좀 얻어가주고 모처럼 친정을 가는 길이래. 옛날에는 가까우나 머나 걸어 댕기는(다니는) 파(판)이라.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잖으면 날이 저무잔(저물기) 전에 친정까지 갈 수가 없어. 그래가주고 날이 새잔(새기) 전에 아주 첫새벽에 길을 떠났어. 길이 멀잖아도 친정 가고 접은(싶은) 마음에 잠은 제대로 오나, 어디. 그래가주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첫새벽에 길을 나섰단 말이래.

 

 

옛날에 산골짝에 살다보이, 참 고개를 몇 고개 넘어야 되그덩. 날은 안주(아직) 어둑어둑한데 어느 큰 고개를 넘어가주고 고개 대백에(꼭대기에) 올라서이 여산대호(如山大虎)가 떡- 나타나가주고 앞을 탁! 가로막는기라. 꼽다시 죽게 생겼그덩. 친정 어무이 얼굴도 못보고 범한테 잡아믹힐라 카이 너무 억울하지만, 그것보다 당장 잡아믹힐 생각을 하이 도저히 무섭어서(무서워서) 참을 수가 없어. 겁이 나가주고 고마 치매를 뒤집어 머리를 덮어 썼어.

 

 

눈 뜨고는 차마 범한테 잡아믹헬 수가 없어. 아무래도 안 보만 낫지 싶어가주고 치매를 둘러 썼지. 머리부터 잡아먹으만 더 무서울 것 긑에가주고(같아서) 치매로 얼굴을 뒤집어 쓰고 뒤로 딱 돌아섰네. 돌아서가줄라 궁둥이를 치켜든 채 자꾸 궁둥이를 내밀었네. 잡아먹을라만 빨리 잡아먹으라고 말이지. 치마를 둘러쓰골라 궁둥이를 들이미이(들여미니) 꼬장주(고쟁이)가 다 드러날게 아인가배. 그리이 옛날 꼬장주는 가랭이가 타져가주고 저절로 벌어지도록 돼 있는데, 고만 그 꼬장주 사타구니가 열리가주고 허연 궁둥이가 다 드러나 보이네. 범이 가마-(가만) 보이 이상크던.

‘내가 이래 뵈도 오대산, 지리산, 태백산 말이야 안 가본 데가 없는데 말이지. 이런 짐승은 생전 처음 보겠는데’

 

 

범이 새벽에 배가 실쭈그리해가주고(실쭉해서) 뭐 먹을 게나 없는가 싶어 나왔다가, 골짜기 밑에서 사람이 올라오그덩. ‘아침 거리가 제 발로 굴러 들온다’ 싶어 고개 목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 올라와가주고 하는 짓거리를 보이 이상하단 말이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람 같잖그덩. 우선 두 발로 걸어오다가 휫닥 하디마는 둔갑을 했는지 네 발로 걸어오는 게라.

 

 

‘야! 이건 예사 짐승이 아니네. 내 앞에서 둔갑을 다 하다니! 내가 네 발로 서 있으니 지도(자기도) 어느 새 네 발로 걸어오네. 그리고 저 입 좀 보게나. 아래 위로 길게 째졌네. 입이 가로 째진 짐승은 여럿 봤지만 입이 내리닫이로 째진 짐승은 처음 보는데. 게다가 수염이 시커멓게 매란없이 났는게 아무래도 수상쩍어. 눈을 보이 눈이 또 외눈박인데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외눈박이 짐승이란 전에 본 적이 없단 말이야. 그리고 저 볼테기(뺨) 좀 봐 글쎄. 짐승을 얼마나 잡아먹어놨으면 저렇게 양쪽 볼테기가 퉁퉁 부은 것 매로(모양으로) 살이 쪘을까’

 

 

범이 그라고 있으이, 새댁이 말이래 겁이 나가주고 더 못 참겠그덩. 그래 빨리 잡아먹으라고 궁둥이를 내밀고 뒤로 주춤 주춤 자꾸 물러섰네. 범이 가만 보이 크일났그덩.

‘모든 짐승들이 나를 보고 도망질을 가는데, 이눔의 짐승은 도래(도리여) 나를 잡아먹을라꼬 대드는 걸 보이, 보통내기가 아닌데’

 

 

범이 겁이 나가주고 고만 당황했는기라. 범이 정신을 차리고 가까이서 보이, 그넘 입이 험하게 생겼그덩. 먼 데서 볼 때는 수염만 험상궂게 났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 들이미는 걸 보이, 입 가에 피탈이라. 어디서 짐승을 여럿 잡아먹었는지 입가에 피가 다 묻었단 말이지. 범이 가만 생각크이(생각하니) 도저히 안되겠어. 잘못하다간 큰 코 다치게 생겼단 말이지.

 

 

새댁은 빨리 자아먹으라꼬 뒤로 자꾸 물러서이, ‘저 넘이 날로 인제 자아먹을라 카는구나!’ 싶어가주고 범도 지척지척 뒤로 물러선단 말이야. 자꾸 물러서다 보이, 고마! 낭떠러지에 말이야 탁! 떨어졌부렀는게라, 범이. 뒤를 안 보고 뒷걸음질치다가 열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에 고마 미끄레져가주 떨어졌부렀어. 청석 밑에 그냥 떨어져도 죽을 판인데, 마침 나뭇군이 나무를 한다고 낫으로 노가지(노간주) 나무를 엇비슥하게 쳐가주고 끝이 삣쭉삣쭉하게 치솟아 있는데, 범이 하필 거 가서 딜이(들입다) 떨어졌부렀네. 그르이 노가지 나무 끌떼기에 고마 항구무가(항문이) 찔레가주고 탁! 죽었단 말이지. 나무 끌떼기에 똥구무가 찔레놨으이 얼매나 아플로! 그래 가주고 입을 딱 벌리고 직사를 했는게라.

 

 

그 사이 새댁은 고마 기절을 했부렀네. 범이 낭떠러지에 나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인제는 자아먹히는갑다 싶어가주고 혼절을 해가주고 거기 쓰러졌부렀어. 그래가주 한참 지내이, 날이 차츰 밝아지고 나뭇군들이 일찍 나무하러 산에 올 꺼 아인가배. 나뭇군들이 지게를 지고 그 고갯길로 올라오다가 보이 웬 새댁이 넘어져 있는데, 치매를 뒤집어쓰고는 허연 궁둥이를 다 내놓고 쓰러져 있단 말이지. 벨 일이다 싶어서, 안 보는 척하고는 시시마끔(제각기) 볼 만춤(만큼) 다 흘끔흘끔 보고는 새댁을 흔들어 깨웠지.

 

새댁이 깨나서 무안에 그랠까봐 치마를 내라가주 궁둥이를 가리고는 다독거려가주고 부인을 깨웠단 말이지.

“도대체 무슨 일로 신부녀가 이 고개까지 와서 혼절했노?”

“사실 여차저차 해서 친정을 갈라꼬 일찍 길을 나섰다가 범을 만내서 이래 됐다고.”

“그라만(그러면) 인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해가 하마 중천에 떴으이 걱정 말고 얼른 가든 길을 가라고.”

그래그던. 그래나 마나, 인제 친정이고 마고 고마 덧정이 없어, 다부(도로) 시집으로 돌아갔지.

 

나뭇군들이 새댁을 보내놓고 그 아래 베랑 밑을 내리다 보이, 웬 범이 황소만한 게 입을 딱 벌리고 앉아 있는게라.

 

‘필경 저넘이 새댁을 잡아먹을라 카든 범이구나!’ 싶어가주고 돌맹이질을 해봐도 꿈쩍도 않고 그냥 있그덩. 그적새는(그제서야) 우- 내려가 보이, 범이 노가지 나무 끌떼기에 찔레가주고 입을 딱 벌리고 죽어 있그덩. 그래 나무고 뭐고 다 치웠부고, 그넘 범을 지게에 지고 내려와가주고 호피를 팔아 동네 잔치를 잘 했대. 그 범을 만난게 남자 긑으만 꼽다시 당했을 텐데 여자래 놓이 살았지. 그래(그러게), 여자들 아랫입이 무섭다 안 카다(그러든가).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 세 가지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 저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크게 다음 세 가지 사실이 이야기로서 재미를 크게 두드러지게 한 특징으로 꼽아볼 수 있다.

 

 

첫째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의 시점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새벽에 친정길을 나서는 새댁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계속되다가, 다음에는 궁둥이를 쳐들고 접근해오는 새댁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범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쓰러져 있는 새댁과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은 범을 발견한 나뭇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무리는 이야기꾼의 시점에서 일종의 논평이 이루어진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에 따라 진술의 시점이 새댁에서 범, 나뭇군, 이야기꾼 등으로 분명하게 바뀐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지닐 뿐 아니라, 이야기의 흥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구실을 한다.

 

 

둘째는 이야기를 얽어짜는 독창적 상상력의 그럴듯함이다.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처럼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깜빡 속아넘어가도록 아주 그럴듯하게 지어낸 것이다. 그러한 상상력의 그럴듯함이 가장 잘 발휘되고 있는 대목은 특히 범이 새댁의 고쟁이 사이로 드러난 속살의 모습을 보고 낯설어 하는 가운데 자기가 처음 보는 수상쩍은 동물의 모습이라 생각하며 점점 공포감에 빠져드는 부분이다. 그리고 죽음을 서둘러 받아들임으로써 도리여 죽음의 위기를 넘기는 것은 물론 오히려 죽음의 위협이었던 범을 퇴치하게 된 뜻밖의 사태 곧 반전의 묘미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데 한몫을 차지한다. 이러한 상상력이나 반전의 묘미는 한결같이 시점의 변화를 통해서 한층 더 그럴듯한 형상성을 획득하고 있다.

 

 

셋째는 이 이야기의 묘미가 인간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성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호기심은 가려져 있는 성적 베일을 벗기면서, 또는 은폐된 공간 속에 노출되어 있는 성을 몰래 엿보는 일 곧 훔쳐보기를 통해서 충족되기 일쑤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성 훔쳐보기를 범의 눈과 범의 인식 능력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범에게 잡아먹힐 처지에 있는 새댁이 위기를 수용하는 기발한 착상이 결국은 범을 잡는 결과를 빚어냈다는 사건 전개의 반전이 이야기의 재미를 확보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범의 눈으로 새댁의 숨겨진 성을 마음껏 훔쳐보는 재미가 더 파격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점의 변화가 뚜렷해야 한다. 확실히 범의 처지에서 대상을 들여다 볼 때 그러한 성적 호기심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http://limjh.an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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