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전기
1900년 4월 종로 불밝힌 3개의 가로등
120여년 전인 1887년 봄,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린 경복궁 내 건청궁. 작은 불빛 하나가 깜빡깜빡하는가 싶더니 눈부신 조명이 갑자기 주위를 밝혔다.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의 입에선 '와~'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명한 지 7년5개월 만에, 우리나라에서도 최초로 전등이 점화된 것이다.<사진> 자가발전기를 이용했다고 한다.우리나라 전기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당시 고종황제 내외의 침실과 마루에 각각 한 개의 백열등을 달고 건청궁 뜰에는 한 개의 아크등을 가설해 점등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종황제는 1897년 12월 31일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인 한성전기회사에 전기·전등·전차 설치 허가를 내주었다. 한성부윤을 지낸 이채연이 대표였고 미국인 콜브란 등이 중역으로 등재된 이 회사의 첫 사업은 전차였다. 전차사업을 먼저 시작한 이유는 전등보다 대중교통수단의 채산성이 더 높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또 고종이 자주 들르는 홍릉(명성황후의 능)에도 빨리 갈 수 있고 행차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콜브란의 권유가 한몫했다. 1899년 5월 4일, 전차가 처음으로 동대문과 흥화문 구간을 시험 운행했다. 양반과 서민이 함께 이용했던 이 전차는 1년 후엔 밤 10시까지 운행을 연장했다. 밤에 정거장과 매표소를 밝혀 줄 불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1900년 4월 10일 종로에 3개의 가로등을 설치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민간에 켜진 최초의 전깃불로서, 1966년에 이날을 '전기의 날'로 제정했다.
한성전기회사는 전차사업에 이어 전등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898년 현재의 동대문시장 자리에 75㎾ 용량의 동대문발전소를 건설한 데 이어, 1901년 6월 17일 경운궁(현 덕수궁)에 영업용 전등을 최초로 설치했다. 6월 말에는 지금의 충무로인 진고개에 위치한 일본인 상가에 600여개의 전등을 추가로 달았다. 대부분 10촉광짜리로 한 달 전기요금이 1원60전이었다. 이는 거의 쌀 세 말과 맞먹는 값으로, 당시 전등 설치는 관공서나 은행, 회사 상점 또는 상류가정 등으로 제한될 만큼 사치품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였던 한성전기회사는 무리한 사업확장과 열강의 이권침탈 속에서 시련을 겪다가 미국인과 합작회사인 한미전기회사로 바뀌었다. 그 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전력사업의 이권을 넘기게 됨으로써 일한와사주식회사(日韓瓦斯株式會社)로 넘어가는 비운을 맛보게 된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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