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전나무 Abies holophylla
나무의 철학 - 조병화(1921~2003)
살아가노라면
가슴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깊은 곳에 뿌리를 감추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사는 나무처럼
그걸 사는 거다
봄, 여름, 가을, 긴 겨울을
높은 곳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쉼없이
한결같이
사노라면
가슴 상하는 일 한두 가지겠는가
살아 있는 동안 아프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겠느냐만, 나무는 모든 아픔을 이겨냈다. 부러지고 찢긴 가지 적잖아도 나무는 상승의 본능으로 지상의 조건을 초월했다. 하늘 끝에 가지를 걸어 올린 지리산 금대암의 전나무다. 600년 동안 나무는 오로지 태양이 낸 빛의 길을 따랐다. 가을에도 푸른 잎 떨구지 않는 그의 자태는 견고하다. 그러나 그 역시 작은 바람에도 어쩔 수 없이 흔들려야 하는 지상의 생명이다. 사람처럼 그가 겪은 가슴 아픈 일, 마음 상하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뿐이었겠는가. 끝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40m 높이에서 피어낸 전나무 가지 끝에 걸린 바람의 향기, 생명의 정체가 궁금하다. 비상의 본능이 솟구치는 이유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시와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에 대하여 (0) | 2011.11.27 |
---|---|
은행나무 아래서 (0) | 2011.11.21 |
바람끝에 서성이는 가을 (0) | 2011.11.04 |
소리없는 그대와의 사랑...。 (0) | 2011.11.03 |
첫사랑 (0) | 2011.11.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