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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 42 박일산(朴壹珊)

by 까망잉크 2018. 7. 2.

<조선왕조 뒷 이야기> 42 박일산(朴壹珊)

(주)하동신문 

박일산은 사육신 가운데 한 인물이던 박팽년(朴彭年)의 손자다. 그의 첫 이름은 박비(朴婢)였으니, 일러 박가 성을 지닌 노비라는 뜻이었다.
단종 복위 실패로 인해 멸족 당한 사육신들 가운데 유일하게 박팽년은, 무던한 몸종의 눈물겨운 정성으로 후손을 두게 되었었다.
본관은 순천, 세종때 문과에 오르고 뒤에 중시(重試)에 뽑혀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박팽년은, 수양대군이 억지로 등극 할때 형조참판(법무차관)에 오르고, 형조판서였던 아버지 박중림(朴仲林)은 흔들리는 세상이 싫어 벼슬을 내 놓고 말았다. 
앞서 수양대군이 김종서(金宗瑞) 등 단종을 보살피던 중신들을 제거하고 영의정이 되어 부중(府中)에서 축하연을 베풀었다. 
이날 박팽년은 이런 시를 지어, 수양이 어린 조카 단종을 진심으로 보필하기를 바랐다. 원문을 풀이하면 대개 이랬다.
묘당(廟堂) 깊은 곳에 풍악소리 구슬프니
오늘 하루 만사(萬事)를 잊었노라
버들은 푸르고 동풍은 부드러우니
꽃피는 봄날은 길고 기네
선왕(先王)이 이룬 대업 금궤(金櫃)에서 뽑고
성주(聖主)의 큰 은혜 옥잔에 넘치니
오래 즐기지 아니하고 어이하랴!
취하고 배부르니 태평성대로다.
영의정 수양은 찬탄하여 그 시를 부중에 판각해 걸도록했다. 
그러나 수양이 딴 마음을 먹고 왕위를 차지하니, 박팽년은 돌아서서 사육신 무리에 들고 말았다. 그들이 옥에 갖혔을때 수양은 배신자였던 김질을 시켜, 그들에게 술을 권하며 마음을 돌려 보라했다. 
김질은 옛날 태종 이방원(李芳遠)이 포은 정몽주(鄭夢周)를 달래 보려했던,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하며 하여가(何如歌)를 읊어, 그들의 속내를 떠 보니, 마음이 상해 얼굴이 일그러진 성삼문(成三問)은 서슴치 않고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하며, 포은의 단심가(丹心歌)로 응수했다. 
김질의 수작을 지켜 보던 박팽년은 이렇게 읊어 그의 굳은 절개를 들어내 보였다.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나랴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랴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아무나 따를소냐.
박팽년이 죽을 때 함께 죽은 그의 한 아들 박순(朴珣)의 처가 임신 중이었다. 
박순의 처는 천신만고 끝에 대구에 귀양사는 친정 아버지 옆에 사는데, 조정에서 “만약 아들을 낳거든 즉시 죽여라”고 명했다. 
그때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임신 중이던 여종이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주인이 딸을 낳으면 다행이나, 만약 둘이 같이 아들을 낳으면 내 아이와 바꿔, 내 아들을 대신 죽게하리라”
두 여인이 해산을 했는데, 주인은 아들을, 종은 딸을 낳았다. 이에 서로 바꿔 자식으로 삼으니, 박팽년의 손자는 『박비』라는 이름의 종 신세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훗날 성종때 박순의 동서 이극균(李克均)이 경상도관찰사로 내려와 동서의 아들 박비를 불렀다. 초라하기 그지 없는 이질(姨姪) 조카를 본 순간 눈물이 솟구친 이극균은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네가 이미 장성하였는데 왜 자수하질 않고 조정을 속이느냐?”
이극균이 임금에게 고하니, 성종은 할아버지 세조와 관련한 일이었으나 너그럽게 용서하고, 이름을 『박일산(朴壹珊)』으로 지어 내려 신분을 풀었다. 박씨가문의 산호처럼 귀한 한점 보배라는 뜻이었다.
박일산의 손자 박계창(朴繼昌)이 선조 임금 때 소격서(昭格署) 참봉이 되었다. 
선조가 일찍이 박팽년의 명성을 들어 후손을 챙겨 벼슬을 내린 것이다. 
박팽년의 현손이 되는 박계창이 고조부 기제사(忌祭祀)날 저녁, 제향 시간을 기다리다가 깜박 졸음에 빠졌는데, 꿈에 여섯 사람이 사당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것이었다. 
박계창은 짚히는 데가있어 곧 서둘러 제사상에 여섯분 몫의 밥과 제수를 차리게하여 눈물을 글썽이며 정성껏 제향을 받들었다. 함께 저승 문턱을 넘은 여섯 신하들 가운데 박팽년 말고는 아무도 기제를 챙기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 불쌍한 혼령들을 박팽년의 후손이 거둔 셈이 되었다.   
                             
정연가(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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