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38)거꾸로 신은 나막신
류 진사댁 머슴 덕배, 느닷없는 징발령 탓에
애인 삼월이와 반년간 떨어져 지내게 되는데…
류 진사는 신언서판(身言書判) 어느 하나 나무랄 것 없는 데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논밭에서 천석이나 거두는 부자다. 인품 또한 훌륭해 뭇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다. 집안의 여러 하인과 하녀들에게도 류 진사는 너그럽다. 종들이 잘못해도 크게 야단치는 법이 없다. 그러나 안방마님은 달랐다. 툭하면 쇳소리를 내며 종들을 다그쳤다.
스물다섯 노총각 덕배는 7년째 류 진사댁에서 머슴을 살고 있는데, 부엌데기 삼월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다. 스물세살 삼월이도 혼기를 놓쳤지만 자색이 곱다. 부엌에서 일하느라 단장을 못해서 그렇지, 이목구비가 또렷하다.
삼월이는 침모와 함께 안채의 곁방에서 자지만 툭하면 행랑채로 가 덕배와 뒹군다. 안방마님의 매타작이 있고 나면 눈물을 짜면서 덕배 방으로 가 멍이 든 볼기짝과 종아리를 솥뚜껑 같은 덕배의 손에 맡겼다가 이내 엉겨 붙는다.
안방마님의 매타작이 심한 날은 정해져 있다. 류 진사가 삼월이를 불러 안마를 시키는 밤 다음날이면 밥이 질다는 둥 무슨 트집이라도 잡아서 부지깽이로 삼월이를 작살내고 만다. 삼월이의 멍든 매 자국을 보는 덕배의 가슴은 찢어지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덕배가 삼월이를 품고 누워 멍든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삼월아.” “왜, 오빠?” “올 추수가 끝나면 내가 7년 새경을 받잖아. 그럼 이 집을 나가자고. 산비탈 밭뙈기 사서 농사지으면 번듯하게 살 수 있어.” “나는 오빠가 가는 곳이면 지옥이라도 따라갈 거야.” 삼월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덕배 품으로 파고들었다.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대던 어느 날, 류 진사가 덕배를 불렀다. “덕배야, 이것 좀 봐라. 왜놈들이 시시때때로 쳐들어와 분탕질하는 탓에 여기저기 성을 쌓아야 한다며 한 집에 한사람씩 징발령이 내려졌구나.” 덕배는 꿇어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길어야 한달일 거야.” 류 진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날 밤, 삼월이는 덕배 품에 안겨 울며불며하다가 세번이나 까무러쳤다.
덕배는 백리나 떨어진 주흘산 자락으로 끌려가 여섯달 동안 성 쌓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반쪽이 돼 류 진사 댁으로 돌아왔다. 덕배가 큰절을 하자 류 진사가 등을 두드리며 엽전 꾸러미를 내밀었다. “고생했다. 이걸로 몸보신하게.” 덕배는 삼월이를 찾았다. 안방마님이 묘한 웃음을 띠며 하는 말. “그년은 잊어버리게. 나막신을 거꾸로 신었으니!” 덕배는 저잣거리로 달려갔다.
조그만 방물가게 주인이 된 삼월이는 박가분 냄새를 솔솔 풍기며 오빠라 부르던 덕배에게 싸늘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덕배씨, 이제 나를 잊어주세요.”
덕배는 밤마다 류 진사가 가게 뒤에 딸린 방에서 삼월이를 껴안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류 진사가? 그 점잖은 류 진사가!’ 덕배는 말 없이 돌아서서 주막집으로 가 술을 퍼마시고 떡이 됐다.
덕배가 보름여일 만에 류 진사댁에 돌아왔다. 자기와 가시버시가 됐다며 한 여인을 데려왔다. 나이는 좀 들었지만 인물이 되는 여인네로 수월댁이라 했다.
동짓달 어느 날, 안방마님이 앞서고 덕배가 지게를 지고 뒤따라 장에 갔다. 그 틈에 류 진사가 두둑한 돈주머니를 건네고 수월댁 치마를 벗겼다. 남의 여자를 도둑질해 먹는 게 가장 맛있다는 류 진사에게 나이가 좀 많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며칠 후 덕배는 7년 치 새경을 받아서 어디론가 떠났다. 류 진사에게 낮거리 대가로 돈을 받고 치마를 벗던 수월댁도 사라졌다.
한달쯤 지난 어느 날, 류 진사가 의원을 찾았다. 매독이었다. 문둥병·폐병과 함께 고칠 수 없는 악성 고질병, 매독!
이웃 고을 나루터 주막 둘레에서 몸을 팔다가 매독에 걸려 매춘도 못하고 쪽방에 처박혀 있던 들병이에게 덕배가 수월댁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시버시 연극’을 한 것이다. 한 방에서 함께 자도 덕배는 매독에 걸린 수월댁과 합환을 할 턱이 없었다.
매독은 류 진사에게만 달라붙은 게 아니었다. 삼월이에게도, 그리고 안방마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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