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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노처녀 酒母

by 까망잉크 2018. 9. 18.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노처녀 酒母

 최가는 저잣거리의 알아주는 악질 왈패였다. 건장한 허우대에 개망나니 같은 졸개들을 데리고 장터 가게를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상납금을 받아 챙겼다.

돈을 안 주는 쌀가게엔 맷방석 위의 쌀에 모래 한삽을 퍼붓고, 포목점에 들어가서는 먹물을 뿌렸다. 산더미 같은 외상을 갚을 생각도 않고 주막에 들어가 졸개들과 마당에 퍼질러 앉아 하루 종일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 들어오던 손님들이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긁어모은 돈의 반은 고을 이방에게 바쳤고, 이방은 받은 돈의 반을 사또에게 바쳤다. 백성들이 아무리 관가에 탄원을 해도 유야무야 흐지부지해져 버리고 고자질한 사람은 혹독한 보복만 당했다.

 재물만 뺏는 것이 아니라 부녀자를 겁탈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주막집 노처녀 주모는 아버지 병이 깊어지며 가세가 기울어져 비록 주막을 차렸지만, 양반집 조신한 규수로 언행에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노처녀 주모는 인물이 빼어나 주막집을 드나드는 뭇 남정네들이 눈독을 들였지만 그녀는 손님 술잔에 술 한잔 따르는 법이 없었다. 최가는 수없이 주모를 겁탈하려 했지만, 그녀는 혀를 깨물겠다며 버티고 은장도를 자신의 목에 대어 위기를 모면해 왔다.

 어느 날 늦은 밤, 술이 얼근히 취한 최가가 졸개들을 데리고 왔다. 장사를 파하고 대문을 잠근 주막에 졸개 하나가 월담을 해서 대문을 열자, 최가는 유유히 경첩을 따고 안방으로 들이닥쳤다. 졸개들이 노처녀 주모의 사지를 잡았다. 혀를 깨물까봐 입에 수건을 매려는데 노처녀 주모가 부드럽게 한마디했다.

 “졸개들을 물러나게 하십시오.”

 노처녀 주모가 옷매무새를 고쳤다.

 “서방님으로 모실 테니 약식이나마 예를 갖춰 주십시오.”

 최가의 눈이 둥그레졌다. 소반에 냉수를 떠 놓고 최가와 처녀 주모는 맞절을 했다. 부엌에서 간단한 술상을 차려 오고 다락에서 호리병을 꺼내 와 두사람은 합환주를 마셨다. 최가는 술에 독이라도 탔을까봐 주모가 먼저 마시는 걸 보고 자신도 술잔을 비웠다.

 술은 입에 달라붙었다. 합환주를 석잔씩 마신 후 최가는 호롱불을 끄고 주모를 눕혔다. 옷고름을 풀고 치마끈을 풀었다. 봉창으로 밀려든 달빛에 백옥 같은 주모의 나신이 드러나자 최가의 숨소리는 벌써 가빠졌다. 최가의 입김이 주모의 입술에서 목덜미를 거쳐 젖꼭지에 닿자 죽은 듯이 반듯하게 누워 있던 주모의 숨소리도 가빠졌다. 돌덩이 같은 최가의 양물이 너무나 미끄럽게 처녀 주모의 옥문으로 들어가자 불같이 뜨거워진 노처녀도 신음과 함께 최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동창이 밝아올 때까지 최가와 노처녀는 온몸을 불태웠다. 아침상까지 받아 먹고 최가는 의기양양하게 주막 대문을 나섰다.

 “서방님, 죄송합니다.”

 알 듯 모를 듯 주모가 중얼거렸다. 그로부터 사흘 후, 최가는 드러누웠다. 온몸에 열이 나 펄펄 끓더니 이레 만에 열은 내렸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다락에서 꺼낸 호리병에는 눈을 멀게 하는 약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주막 문은 닫히고 노처녀 주모도 최가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장님이 되었다. 저잣거리 장사꾼 계에서 잔치를 열었다. 지긋지긋하던 최가의 행패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장사꾼 계에서 모은 돈으로 시세의 곱절을 주고 주막을 샀다. 장님이 된 주모는 두둑한 전대를 차고 어디론가 떠나고, 왈패 최가는 지팡이를 두드리며 천덕꾸러기가 되어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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