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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外 시간여행·문학 기행기

경찰 간부가 署에서 굿판 벌였던 시절…

by 까망잉크 2019. 1. 24.

[김명환의 시간여행]  경찰 간부가 署에서 굿판 벌였던 시절… 영화 남녀 주인공 뽑을 땐 '궁합' 봤다

조선일보
 

입력 2017.11.29 03:11

1966년 2월 17일 밤 서울 서대문경찰서 구내에 난데없는 꽹과리 장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매캐한 향냄새도 진동했다. 수사계 취조실 안에서 굿판이 벌어진 것이다. 무당 셋을 불러 굿을 벌인 제주(祭主)는 이 경찰서 수사계장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조사받던 피의자가 투신 자살하는 등 취조 과정의 인명 사고가 잇따르자 '액땜'한다고 굿판을 벌였다. '인공위성이 달나라 가는 시대에… 자다가도 폭소가 터지게 만들 난센스'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해당 경찰서장은 "굿을 하는 부하들 심정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조선일보 1966년 2월 18일 자). 그 시절 한국인의 삶 속에 무속이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었다.

“거칠고 불안한 세상에 미신이라는 요물(妖物)이 판친다”며 1960년대의 무속·점술 유행을 비판적으로 진단한 신문 기사.
“거칠고 불안한 세상에 미신이라는 요물(妖物)이 판친다”며 1960년대의 무속·점술 유행을 비판적으로 진단한 신문 기사. 기사 속 사진은 서울 도심 거리에서 돗자리 펴고 사주나 관상을 보는 노인 역술가들(조선일보 1963년 9월 3일 자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후 산업화 시대까지, 근대적 생활을 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무속·역술 등은 '미신 타파'라는 구호 아래 사회적으로 난타당했지만 그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무당이 굿판을 벌이면 경찰이 잡아 가뒀던 1950년대에도 전국의 이른바 '미신 행위 업자'는 8000명이 넘었다. 당시 공권력과 관청은 무속 근절을 외치면서도 자기들 스스로는 가끔 무속에 의지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서울 어느 동사무소는 동민들로부터 제사비를 거둬 돼지머리 놓고 제사를 지냈다. 1958년 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지방 경찰서가 역술인 170여 명을 포섭해 야당의 출마 예정자들에게 '당신은 점괘가 나빠 안 된다'며 포기를 종용하도록 했다"고 야당이 폭로하는 일도 있었다. 1968년 4월 12일엔 맹목적 무속 신앙이 참사를 빚었다. 속리산에서 1년간 천신(天神)께 기도한 끝에 신통력을 얻었다고 믿은 젊은 남녀 4명이 '축지(縮地)의 비력(秘力)을 얻었다'며 30m 높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모두 사망했다.

1975년 한 신문에는 "영화계에도 40년 미신을 타파하려는 바람이 불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과거엔 부부 역을 맡을 남녀 배우를 뽑을 때 제작자가 두 배우의 궁합을 봐서, 맞지 않으면 캐스팅을 꺼렸던 일이 많았으나, 최근엔 네임 밸류와 연기력 위주로 선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경향신문 1975년 7월 19일 자). '배우 선정 때 궁합을 안 보기로 했다'는 대목보다는 1970년대까지 배우끼리 궁합을 봤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놀라게 한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대에 각 지방 도백은 '서낭당 부순 숫자'와 '무당집에서 뜯어낸 깃발 수'를 전과(戰果)처럼 상부에 정기적으로 보고했다. 그렇게 난폭하게 미신 타파 전쟁을 했어도 오늘날 무속인·점술가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며칠 전 보도에 따르면 전국의 무속인·점술가 등은 지난 10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해 약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분야의 수요도 만만찮지만 "학위 등 진입 장벽이 거의 없고 직업으로서도 괜찮다"며 뛰어드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선 오히려 옛 시절보다 역술이나 무속에 관대한 듯하다. 이 분야를 믿는 이들도 이젠 '관청의 굿판' 같은 무리수는 두지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뿌리 깊은 무속·점술·기복신앙과 문명의 절묘한 공존처럼 보인다. 다만 옛 신문 기사의 한 구절처럼 '거칠고 불안한 세상살이 속에서 불안과 초조를 막아 보려고' 점술 등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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