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일곱 쌍둥이를 낳았던 여성은 19년 후 어떻게 됐을까?
21. 미인대회 승리
뇌성마비가 그녀의 인생을 차지하도록 놔두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알렉시스 매커위는 그녀의 인생에 주어진 모든 것을 기뻐했다. 그녀는 심지어 장애아동들 만을 위한 미인선발대회에도 참가했다. 물론 용감하게 무대에 선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대가족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2013년 알렉시스는 아이오와 주 캐롤에서 열린 ‘틴 미스 드림 메이드 트루 (꿈을 현실로 만든 10대 소녀)’에서 우승했다. 그녀는 반에서 상위 15%로 졸업했다. 알렉시스는 성큼 성큼 발전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리더의 역할을 하면서 다른 형제자매들과도 함께 계속 세계 최초의 생존 일곱 쌍둥이로서 역사를 만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22. 개별적으로 성장
맥커위 가족은 킨더가든 과정을 홈스쿨로 교육했다. 바비는 학교 교실에 반은 차지하는 그녀의 어린 아이들의 초기 교육을 위해서 부엌으로 데려갔다. 일곱 아이들이 초등학교로 진학했을 때 그들은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어떤 것을 단행했다. 바로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킨더가든 이후에 일곱 쌍둥이는 학교에 진학했고 서로 다른 반으로 배정되어 각자의 친구도 사귀면서 개별적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항상 일곱 쌍둥이로 규정되기는 했어도 그들은 각자의 성격과 관심사를 키워갔다. 그렇지만 그들이 알기도 전에 그들은 모두 또 다른 인생의 큰 사건을 함께 당면하게 된다.
23. 고등학교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10대가 된 일곱 쌍둥이도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2012년, 그들은 아이오와 주 칼리슬의 칼리슬 고등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일곱 개의 도시락과 백팩을 모두 챙기고 이들은 그들의 10대 시절을 함께 할 스쿨버스에 올랐다.
고등학교에서 방향을 찾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다행히 맥커위 가족에게는 서로가 있었다. 교사와 학급 인구들 입장에서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어렵기는 했어도, 상상해보라 그들의 부모가 사춘기 청소년 일곱 명을 상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 일곱 쌍둥이에 대한 어떤 것이 보다 분명해졌다.
24. 독립의 염원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각각의 독특한 성향과 특성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맥커위 일곱 쌍둥이가 함께 모이는 것이 낯설지는 않지만 같이 태어난 일곱 명의 형제 자매는 항상 그들의 개성을 존중해왔다.
알렉시스는 학구파로 알려졌으며 케니 주니어는 반에서 재미있는 아이로 대개 인식됐다. 한편 켈시와 브랜든도 가족을 웃게 만들며 운동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곱 쌍둥이는 각자의 취미생활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그들이 모두 사랑스럽게 함께 하는 것이 하나 있다.
25. 자궁 멤버에서 밴드 멤버로
맥커위 일곱 쌍둥이가 자신들끼리 음악 밴드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크로스 컨트리, 합창, 레슬링, 축구 또는 웅변 대회나 뭐가 됐든 각자의 관심사가 있었지만 항상 함께 모이는 곳이 있다. 바로 학교 밴드이다.
학교 스포츠 경기 하프타임 행사에는 일곱 쌍둥이 모두가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청소년기 대부분이 그와 같은 매일의 행사로 채워졌지만 미디어에서 참을 수 없는 특정한 주요 시점이 항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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