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서울의 열 가지 풍경
입력2022.07.21. 오전 3:04
지난달 국립한국문학관이 공개한 <한도십영(漢都十詠)>은 1479년 금속활자 초주갑인자로 인쇄한 보물급 문화재다. 조선 초기 서울의 열 가지 풍경을 노래한 시 90편을 엮은 책이다. <동문선> 책임 편집자로 20년간 문단 권력을 장악한 서거정을 비롯해 강희맹, 이승소, 성현, 월산대군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이들이 지은 시는 여러 문헌에 흩어져 전하고 있는데, 한데 묶은 단행본의 발견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에 실린 서울의 열 가지 풍경을 소개한다.
첫째 장의심승(藏義尋僧)장의사에서 승려 만나기다. 장의사는 북한산 남쪽, 현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사찰이다. 당시는 공무원 연수원 겸 휴양소였다. 그 앞을 흐르는 홍제천은 도성 밖 최고의 유원지로 손꼽혔다.
절 아래 맑은 샘이 백옥마냥 흐르고,
절 안의 중들이 천, 백.
이따금 종소리가 우레처럼 울리면,
위태로운 봉우리가 거꾸러지고 푸른 비렁이 찢어지려 하네.
한가한 틈 타 성문을 나 중을 찾아가서,
전삼, 후삼의 말 뜻을 물어보네.
洞門이 깊이 잠기고 煙霞가 자욱하니,
망연히 못 깨닫겠네 내 몸 어디 있는지.
둘째제천완월(濟川翫月) 제천정에서 달 구경하기다. 제천정은 한남역 서쪽에 있던 정자로 한강 최고의 조망을 자랑했다.
추강에 달이 들어 강물이 고요한데,
백 자 탑 그림자가 차가움에 누웠구나.
달을 대해 모름지기 십천 두주를 기울일지니,
월단9차를 둥글게 뭉쳐 만든 것) 三百餠을 무엇에 쓰리.
맑은 빛, 싸늘한 기운이 위아래에 사무쳐,
내 두 귀밑머리가 뻣뻣이 곤두서는구나.
장상 술잔을 비쳐주기 바라거니,
거울마냥 둥글거나 갈구리마냥 굽거나 내 몰라라.
셋째반송송객(盤松送客) 반송정에서 나그네 송별하기다. 반송정은 서대문구 천연동에 있던 정자다. 한양에서 가장 큰 연못 옆에 거대한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었다. 한양에서 중국으로 이어지는 의주대로의 출발점이므로 오가는 나그네가 끊이지 않았다.
만리 밖으로 떠나는 객을 郵亭에서 송별하며,
술잔을 나눈 뒤 긴 노래로 옥병을 치네.
인생 한 세상은 이리 저리 떠도는 신세.
백년이 골몰하여 쉴 새가 없구나.
吳姬가 비파를 타 애닯은 곡조를 아뢰니,
좌중의 마음 상하여 수심에 애를 끊네.
이별하긴 쉬워도 만나기는 어렵거니,
낼 아침 서로 생각하면 길이 아득하오리.
넷째양화답설(楊花踏雪) 양화나루에서 눈길 걷기다. 양화나루는 잠두봉을 등지고 한강을 마주한 곳이다. 한적한 어촌이지만 눈 내린 겨울 풍경이 유난히 유명했다.
적설이 새하얗고 북풍이 휘몰아치니,
漢宮의 선인장이 얼어 꺾어질 듯,
나귀 타고 강변에서 취해 시를 읊노라니,
가슴속의 호기가 무지개 천 길일세.
우스워라, 遠安은 白屋에 누워있고,
우스워라, 姬滿은 황죽을 노래했네.
공바로 詩律로 엄한 추위와 싸운,
雪堂의 고풍을 우러러 탄식하네.
다섯째목멱상화(木覓賞花) 남산의 꽃구경이다. 남산은 한양 전역을 조망 가능한 곳이다.
남산에 앉아 높은 성을 바라보니,
어구(御溝)의 버들가지 홍교를 스치는데,
상원(上苑)에 핀 꽃은 붉은 노을이 엉킨 듯,
大液의 따스한 물은 포두주가 넘치누나.
구름에 連한 甲第, 봄의 동산에 한창인데,
동풍이 젖 같은 비를 불어 보내누나.
천홍만자가 모두 아리따운 자태 머금었으니
어서 돌아 피라고 재촉하여 난간에 다다라 북(갈고)을 치지 마소.
여섯째전교심방(箭郊尋芳) 살곶이 봄놀이다. 살곶이는 성수동과 화양동 일대의 한강변이다. 지금은 도심이지만 당시는 교외의 널찍한 봄나들이 명소였다.
방초가 비단 자리보다 훨씬 나으이,
분홍, 해록(駭綠)이 사람의 시름을 자아내네.
士女가 어울려서 光陰을 다투면서,
羅緯. 繡幕이 청춘에 비치누나.
길고 긴 날 黃鷄詞 영롱한 곡조,
가는 해가 바로 숨 한 번 쉴 동안,
어서 좋은 술 가져와라. 좋은 철 놀이 하자.
말을 거꾸로 타고 돌아오니 사모가 떨어지네.
일곱째마포범주(麻浦泛舟) 마포나루 뱃놀이다. 중국 항주 서호의 경치를 연상시킨다는 이곳에서 소동파를 흉내낸 뱃놀이가 유행했다.
惠施처럼 하필 濠粱에 놀리.
박달나무 베어 하필 하수 가에 두리.
서호에 가서 술 싣고 놀며,
취하여 和靖의 매화를 꺾자.
청산이 수없이 강변에 오고,
나무들이 杜若洲에 멀리 이었네.
生歌가 안 끝나서 날이 저무니,
돌아올 때 한가롭게 조는 갈매기가 부럽구나.
여덟째흥덕상련(興德賞蓮) 흥덕사 연꽃 구경이다. 흥덕사는 혜화동 서울과학고 앞에 있던 사찰이다. 여름이면 연꽃이 만개하여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다락 밑에 연꽃이 무수히 피었으니,
연 줄기를 고운 사람 씻지를마소.
미풍에 풍겨오는 이었다 끊겼다 하는 향내,
가을이 서늘해서 모시 적삼춥구나.
취중에 술숫대(籌) 어찌 다 세려,
팔 걷고 글 논하기 휘주(揮麈)도 필요 없어,
홍의;연꽃잎)가 지기 전에 참 볼만하이,
낼 아침엔 풍우를 못 견딜 것을.
아홉째종가관등(鍾街觀燈) 종로 연등놀이다. 조선시대 연등놀이는 지금처럼 조계종이 기획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축제다. 초파일 밤이면 한양 백성들이 손수 만든 다채로운 연등이 하늘을 수놓았다.
끝없는 인가에 켠 끝없는 등불,
붉은 빛이 서로 쏘아 흐르는 노을 같네.
옥승(玉繩) 끝에 나직이 드리운 明月珠.
경지(瓊枝)에 幻術로 핀 듯한 영롱한 꽃들.
아두운 거리를 환히 비쳐 대낮을 만드니,
구경꾼들 좋아라고 원숭이처럼 뛰노네.
九街의 歌吹가 태평곡을 부르니,
오경을 알리는 새벽 종 소리도 깨닫지 못하네.
열째입석조어(立石釣魚) 입석포에서 낚시하기다. 입석포는 지금의 응봉산 아래에 있던 나루다. 우뚝 선 바위가 있었기에 ‘입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이 맑아 헤엄치는 고기가 보였다고 한다.
큰 돌이 우뚝 물을 굽어 서 있는데,
맑은 연못 百頃이 유리처럼 푸르구나.
한가히 낚싯대 잡고 이끼 낀 돌더미 위에 앉았노라니.
고기들이 미끼를 희롱하며 잠기락 뛰락.
금제회(金虀膾) 맛이 옥삼(玉糝)국보다 나으니,
좋은 술 철철 은병에서 쏟아지네.
잔뜩 취해 강가에서 밝은 달에 누웠으니,
술로써 이름 짓던 유령(劉伶)에게 견주리라.
[添] 이승소의 漢都十詠|작성자 심경 시와 명칭을 작가의 허락없이 첨가하였음
<한도십영>이 소개한 열 가지 풍경에 건축물은 없다. 사찰이 두 곳 포함되기는 하지만 크고 화려한 곳은 아니다. 그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워 뽑은 것이다. 개국 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는 새로운 수도의 위용을 과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도전이 <신도팔경>에서 뽑은 서울의 여덟 가지 풍경은 전부 화려한 볼거리였다. 거대한 대궐과 그 앞에 늘어선 관청들, 한강에 줄지어 정박한 조운선, 교외의 드넓은 훈련장과 목장 따위다. 하지만 건국 후 80년이 지나 서울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일어난다. <한도십영>이 소개한 서울은 자연의 풍경과 인간의 행위가 어우러져 있다. 거대한 건축물보다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서울의 진짜 풍경이라는 것이다.
<한도십영>에 등장하는 장소는 대부분 옛모습을 잃었다. 한때 사찰과 정자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서울의 산과 강은 그대로다. 고궁 관람과 시장 구경이 고작이었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서울의 진면목에 점차 눈을 뜨고 있다. 북한산은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국립공원이며, 한강은 세계 어느 도시를 관통하는 하천보다 거대하다. 이처럼 이채로운 풍경이야말로 다른 도시가 넘볼 수 없는 서울의 매력이다. <한도십영>은 증언한다. 500년 전 서울의 생생한 풍경을, 개발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초대형 랜드마크 아니라도 서울은 천혜의 자연만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라는 사실을.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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