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1] 60년대 거리의 무법자 '스냅사진사'… 커플들 멋대로 찍곤 "사진 사시오"
연말연시 분위기 즐기며 도심 거리를 걷는 커플을 향해 정체불명 사내가 다짜고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다면? "당신이 뭔데 나를 찍느냐"며 심각한 초상권 시비가 붙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시곗바늘을 반세기 전으로 돌려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돌발 촬영에도 놀라기는커녕 손사래나 치며 서둘러 지나가는 게 그 시절 서울 시민의 상식이었다. 불특정 다수의 행인에게 파파라치처럼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른바 '스냅사진사'들이 1950년대 후반부터 20여 년간 도심 곳곳에서 숱한 일화를 빚었다. 일반적 사진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단 펑 찍어 놓고는 "그림 좋은데요! 멋있게 뽑아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소 좀…"이라며 다가왔다. 사진 강매(强賣)를 일삼은 거리의 무법자들인 셈이었다. 오늘날이라면 상상조차 힘든 프라이버시 침해가 한 시절 서울 한복판에서 다반사로 벌어졌다. 한 여학생은 1971년 연말 서울역 지하도에서 스냅사진을 찍혔다. "여보세요! 누가 사진 찍어 달랬어요?"라고 쏘아붙이긴 했지만 불쾌함보다 큰 건 두려움이었다."싫으면 그만두쇼"라는 사진사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마치 '네 얼굴 사진이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쥐어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라'는 협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조선일보 1971년 12월 8일자).
1975년 서울의 스냅사진사는 남산에만 100명쯤 됐다. 지하도와 명동 등 번화가, 변두리 유원지까지 수백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1967년 신문은 스냅사진사의 수입이 가장 짭짤한 곳으로 명동 지하도를 꼽았다. 이곳에선 하루 평균 1000원(오늘의 약 7만원) 안팎을 벌었다. 대목은 연말연시, 명절 등 사람들이 '들뜬' 날이다. 여자와 취객이 주요 타깃이었다. 항의할 가능성이 많은 멀쩡한 사내들은 피했다(매일경제 1967년 5월 29일자). 플래시에 놀란 어떤 시민은 사진사와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촬영 후 선금까지 받고도 사진을 보내주지 않는 '사진 사기(詐欺)'도 문제였다. 한 신문은 스냅사진사들에게 '이상(異狀)기업'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이런 사진사가 필요하기도 했다. 24시간 폰카를 몸에 지니는 오늘과 달리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거리의 스냅사진은 귀한 추억이 될 수 있었다. 그 틈새 수요를 파고들어 변태적 영업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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