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역사) 이야기

유배를 가다 (2)

by 까망잉크 2023. 2. 23.

 

 

유배를 가다 (2)

만약 심원이 아니었으면 임사홍 부자의 실상을 어찌 알았겠는가

by두류산Dec 07. 2022

 2장

 임금이 내린 명으로 양관의 관원은 모두 복직이 되었음에도, 김맹성과 표연말은 의금부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심원은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어 몸을 떨었다. 자신의 내부고발이 임사홍 부자의 처단에 그치지 않고 그가 따르고 좋아하던 김맹성과 표연말에게도 큰 화(禍)가 닥치게 되었다. 이심원은 가슴이 먹먹하였다.

 ‘항상 나를 챙기던 고모와는 원수가 되었고, 부친과 조부도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게다가 존경하는 형들도 위험에 빠졌다. 나라와 사직만을 생각하고 말한 대가가 너무나 아프다.’

 

 성종은 길게 한 숨을 쉬고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임금 노릇 하기가 어렵지 아니한가? 내가 대간을 이목(耳目)으로 삼았는데 대간들이 군주의 눈과 귀를 왜곡하니 정치하기가 참으로 어렵도다.”

 임금은 이심원에게 눈길을 돌려 치하했다.  

 “만약 주계가 아니었으면 그들의 실상을 어찌 알았겠는가? 과인이 매우 기뻐한다.”

 이심원은 임금의 칭찬에 고개를 숙여 답했으나,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가슴을 후볐다.

 

 임금이 말을 이었다.

 “임원준이 성녕대군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일에 효령대군은 노쇠하여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매우 야박하다. 그러나 말의 증거가 없으니 국문하기는 어렵다. 비록 죄를 줄 수는 없을지라도 의정부에 둘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대사헌 유지는 나서서, 임원준을 파직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아뢰었다.

 "홍문관과 예문관 관원의 진술을 보건대, 임원준의 더러운 행적은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는데, 그 죄가 어찌 벼슬을 파면하는 데 그칠 뿐이겠습니까? 또 박효원은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나, 벼슬길에 오르기 전부터 임원준의 집에 붙어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어 가신(家臣)과 같았으니, 임사홍의 지시를 받은 것이 명백합니다.”

 "어찌 양관(兩館)의 진술을 그대로 다 믿고 대신에게 죄를 물을 수가 있겠는가?”

 

 성종이 임원준을 감싸며 굳이 죄를 물으려 하지 않은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임원준이 성종의 친부(親父)인 덕종(德宗, 의경세자)이 세자가 되었을 때 세자시강원에서 세자를 가르친 아버지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평소 예로서 대했다. 또한 임원준은 의술로서 연로한 대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대비들에게도 존중을 받고 있었다. 더구나 임원준은 종친의 최고 어른인 효령대군과는 사돈이고, 현숙 공주의 시할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임원준은 이심원에 대한 원망으로 이를 갈았다. 아들은 옥에 갇히고, 대간들도 양관의 관원에게 동조하여 자신에게도 죄를 물어야 한다고 하였다. 잘 나가던 집안이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쌓아 올린 것인가. 돌탑을 쌓듯 하나하나 올렸는데 한꺼번에 무너지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임원준은 한편으로 믿는 바가 있었다.

 ‘그래도 광재와 공주가 있지 않은가.’

 

 임원준은 마음이 다소 진정되자 붓을 들어 임금에게 신임을 묻는 상소를 작성했다.

 "남을 헐뜯는 데에는 그 실상보다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사홍의 나이 겨우 서른 살이 넘었는데 특별히 발탁되어 승정원의 장(長)이 되었고, 광재가 또 공주에게 장가 들어서 특별한 은혜로 은총이 지나치고 복이 넘치니, 하늘도 가득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하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양관(兩館)에서 크게 성내어 배척하고자 함이 마땅합니다. 다만 아들에게 성낸 것을 아비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신이 진실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특별히 가엾게 여기시어 신의 벼슬을 파면시켜서 허물을 반성하며 여생을 보전하게 하소서.”

 

 임금은 승지가 올린 임원준의 상소를 받아 들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 양관의 관원들이 시기와 질투로만 성을 내었겠는가. 더구나 이미 벼슬을 파면시켰는데 스스로 청하다니.....’

 임금은 상소의 말미에 간단히 답했다.

 “알겠노라.”

 성종은 임원준이 청한 대로 그의 벼슬을 해임하였다. 임원준 대신에 곧바로 허종을 의정부 좌참찬으로 임명했다.

 

 임원준은 눈앞이 캄캄했다.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자마자, 임금이 즉시 자신을 해임하고 후임자를 곧바로 임명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조여 왔다.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리라.'

 

 임원준은 귀한 약재를 싸들고 한명회의 집을 찾았다.

 “요즘 젊은 선비들은 예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고려 때부터 내려온 조정에서 선배를 존중하는 풍습은 오백 년 나라를 유지하게 한 기틀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런 풍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한명회가 임원준의 말을 막고 싸늘하게 말했다.

 “공의 아들이 일찍 출세하여 세상을 너무 쉽게 보고 거만하게 사람들을 대한 것이 화근이었소.”

 

 한명회는 수년 전 대간 시절 자신을 매섭게 탄핵한 임사홍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한명회가 임사홍에 대해 차갑게 이야기하자, 임원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홍의 나이 겨우 서른네 살에 도승지가 되고, 또 그 아들이 공주에게 장가 들어서 은총이 지나치고 복이 넘치니 날로 거만해졌습니다.”

 

 임원준이 바짝 엎드리자, 한명회는 기분이 다소 누그러졌다.  

 “주상이 이미 파직의 명을 내렸으니 공이 벼슬에 연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아요. 다만 양관이 지적한 일은 사실이 아님을 아뢰어야 하오.”

 임원준은 한명회에게 매달렸다.

 “젊은 사람들이 군주를 움직이려고 지나친 말로 사람을 탄핵하여 기어이 죄를 씌우려고 하고 있어요. 억울한 저를 상당군이 아니면 누가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한명회가 임원준이 가져온 약재 보퉁이를 보며 말했다

 “이용에게 약재를 훔쳤다는 이야기는 분명 억울한 일이오. 그 문제에 관해서는 나도 들은 이야기가 있소.”

 임원준이 손으로 가슴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아들을 탄핵하면서 아비에게 미치는 것은 진실로 전에 듣지 못한 일이니,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임원준은 한명회의 집을 나오면서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한명회는 임원준이 문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임원준의 일을 변명해주다가, 이번 일에 유자광을 엮어야 하리라.’

 한명회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유자광, 이 자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잡을 것이다!’

 

(그림 출처)

https://kr.freepik.com

 

두류산출간작가

감성에세이와 역사에세이, 역사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최고 연예인 '만담왕' 신불출 스토리를 발굴하였고, 조선시대 선비들의 이야기인 '선비의 나라' 시리즈를 집필중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