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를 가다
김맹성과 표연말이 주계에게 말하여 과인이 알았으니, 이는 잘못된 일이다
1부 유배를 가다
1장
재상들은 임원준과 이심원, 그리고 보성군까지 대질 심문을 마쳤지만,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어려웠다. 훈구대신들은 그동안 이심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터라 진술의 진정성을 낮추어 보았음에도, 임원준의 말이 허위와 변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임원준이 거짓말한다고 단정할 증거도 없었다. 정승들은 서로 의논하여 결론을 내리고, 임금에게 대질심문 결과를 아뢰었다.
"임원준과 이심원은 양쪽 모두 증인이 없으니, 그 말을 듣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성종이 입시한 조정의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임원준과 이심원의 일은 모두 기각한다. 대신, 상소를 올린 홍문관과 예문관의 관원들은 임원준과 임사홍의 소인됨과 간사한 형상에 대해 말해보라.”
홍문관 부제학 유진(兪鎭)이 양관을 대표하여 말했다.
"임사홍은 평상시에 행동이 거만하여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나, 뚜렷이 드러난 허물이 없었기 때문에 즉시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임원준은 평상시에 그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였고, 또 세종 때 과거시험장에서 대신 글을 지어 주었고, 뒤에 의술을 공부할 때에는 이용(李瑢)의 집에서 약을 훔쳐 도망하였으니, 이 때문에 간사하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이용은 세조의 동생인 안평대군을 말하는데, 계유정난 때 대군 칭호를 박탈당했다.
홍문관 부교리 김흔이 나서서 유진의 말을 거들었다.
“임원준은 황수신에게 뇌물을 주고 벼슬을 얻었다가 일이 발각되어 벼슬을 빼앗겼습니다. 의금부 당상이 되어 김정광의 옥사(獄事)를 국문할 때 뇌물을 받고 그 죄를 가볍게 논하였습니다. 또 민발(閔發)과 더불어 이덕량의 집에서 내기 바둑을 두다가 서로 크게 싸웠습니다. 본래 가난한 집안이었는데 임사홍 부자 대에 이르러 큰 부를 이루었으니, 학식 있는 선비들이 임원준 부자를 대임(大任)과 소임(小任)이라고 일컫습니다. 이 때문에 간사하고 탐오하다고 지목하는 것입니다.”
황수신은 황희 정승의 아들로, 세종 때 그가 도승지로 있을 때 임원준을 의서(醫書) 찬집관(撰集官)으로 부정 발탁한 것이 적발되면서 두 사람 모두 파직을 당하였다.
홍문관 직제학 유순(柳洵)도 나서서 임사홍에 대하여 말했다.
"임사홍은 거동과 언어가 음험하고 바르지 못하여 뜻있는 사람들은 이 사람이 권세를 잡으면 반드시 나라를 그르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홍문관과 예문관의 관원들은 차례로 나서서 임원준 부자의 간사한 형상에 대해 성토하였다. 성종은 홍문관 관원들의 진술을 듣고 말없이 천장을 응시하다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과인이 임사홍을 직접 국문하겠다.”
다음날 홍문관 근처 서빈청(西賓廳)에서 임금은 임사홍을 국문하였다. 성종은 임사홍에게 물었다.
“네가 박효원을 가만히 부추겨서 현석규 공격을 꾀하였던 일을 상세히 말하라!”
임사홍은 임금이 싸늘한 목소리로 묻자 풀이 죽었다. 임금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자신에게 실망한 기색을 느꼈다. 임사홍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전에 승지가 되었을 때 도승지 현석규가 홍귀달을 욕한 일을 대사간 손비장의 집에 가서 말하였더니, 손비장이 듣고서 놀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그 뒤에 사간원에서 상소를 올리던 날 김맹성을 불러서 질문할 때 현석규의 행동을 보고 박효원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또 박효원이 신의 집에 와서 말했는데, 오래되어 지금은 잊었습니다. 청컨대 박효원에게 물으소서.”
대사헌 유지가 열에서 나와, 당시 현석규를 탄핵한 김언신과 유자광의 혐의를 드러내었다.
"임사홍이 박효원을 몰래 시켜서 현석규를 공격할 때 김언신이 사헌부 지평이 되어 현석규를 노기와 왕안석에 비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김언신이 임사홍과 가까운 이웃으로 조석으로 상종하였으니, 이는 반드시 임사홍이 시킨 일입니다. 또 그때 유자광의 상소가 김언신의 아뢴 바와 뜻이 같고 김언신과 유자광이 친하였으니, 결탁하여 탄핵한 것으로 의심됩니다. 함께 국문함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때의 대간으로 임사홍의 술책에 빠져서 남의 과실을 탄핵한 자는 임사홍과 다름이 없으니, 손비장과 김언신을 아울러 국문하라.”
임금이 유자광을 빼고 말하니, 사헌부의 대간이 거듭 유자광을 탄핵했다.
"지난해 김언신과 유자광이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극언하였는데, 두 사람의 말이 일치하였습니다. 이들의 교분이 두터워서 반드시 서로 약속하고 한 것입니다. 유자광을 아울러 추국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유자광은 대간이 아니어 말할 책임이 없는데도 감히 말하였으니, 이것이 또한 의심스럽습니다."
성종은 비로소 사헌부의 청을 허락했다.
임금은 여러 신하들을 둘러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을 알기가 참으로 어렵다. 과인이 홍문관과 예문관이 올린 상소를 보니, 임사홍을 소인이라고 한 말이 있어 친히 물으니, 양관(兩館) 사람이 대답하기를, 언어와 거동이 모두 소인이고, 또 요즘 말한 바가 바로 소인의 일이라고 할 뿐, 아무 일과 아무 일이 소인의 일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였다. 과인의 생각으로도 임사홍이 요즘 말한 바는 과연 잘못이라고 여겼지만, 어찌 이것이 소인이라고 칭하기에 이르겠는가? 그러므로 지나치게 말하였다고 하여, 양관의 관원들을 아울러 파면하였다. 하지만......”
임금은 잠시 말을 멈추고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주계의 말을 듣고 관련된 사람들에게 물으니, 임사홍의 한 바는 참으로 소인이다. 임사홍이 이미 반을 자백하였으므로 그 소인의 형상을 끝내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양관(兩館) 사람은 모두 예전부터 임사홍이 소인임을 알았다고 말하였다. 임사홍이 승지와 예조 참의와 이조 참의, 그리고 도승지로 임명하였어도 소인이라고 말하지 아니하다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말하니 이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양관 사람들의 말이 무고가 아님이 드러났으니, 내가 그들을 복직시키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명회가 임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서서 아뢰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양관 이십여 명의 관원이 모두 뛰어난 선비들입니다. 반드시 소견을 가지고 말하였을 것인데, 어찌 무고이겠습니까?”
좌우의 신하들이 나서서 임금을 높였다.
"간사함과 바른 것은 마땅히 구별해야 할 것인데, 만약 전하의 밝으심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구별해서 알아내었겠습니까?”
성종은 승지에게 명했다.
“양관 사람들의 벼슬을 회복시켜라. 하지만 김맹성과 표연말이 과인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주계에게 말하였으니, 이는 매우 옳지 못한 일이다. 김맹성과 표연말도 아울러 국문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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