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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유배를 가다.5장

by 까망잉크 2023. 3. 6.

유배를 가다.5장

홍의 아내 이씨

y두류산Dec 10. 2022

이경동은 목소리를 가다 

임사홍이 지은 시를 읽었다.

“지위가 임금을 가까이 모시니

임금의 은혜는 바닷물처럼 깊었네.

마침내 터럭만큼의 보답도 못하고

부질없이 임금의 마음을 저버렸네.

아들의 죄로 아비가 욕을 당하니

흰머리에 서리가 침노하네.

잠자코 생각하고 때로 허물을 자책하니

유림(儒林)을 더럽힌 것이 깊이 부끄럽네.

얕은 지식은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헤아리고

둔한 재주는 절름발이가 수레바퀴를 끄는 듯하네.

깊은 물에 다다라 오직 두려워할 뿐

몸을 어루만지며 쓰라림만 더하네.

성주(聖主)의 도량은 천지같이 크고

어지신 은혜는 비와 이슬처럼 고르도다.

마음을 새롭게 할 길 있거든

나를 위해 궁전에 아뢰어 주게.”

이경동이 읽기를 마치고 말했다.

“이 시의 뜻은 전하에게 용서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잘못했다는 것을 제가 아는구나.”

성종은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김언신은 임사홍에 이어 유자광까지 자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하였다. 김언신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의금부 당상의 세찬 추국에 어쩔 수 없이 임사홍이 충동질한 것을 알지 못한 채 말려들었다고 진술했다. 김언신은 죄를 인정하며 자복한 것을 곧바로 후회했다. 알지 못한 채 말려들었다고 했는데, 공소장은 임사홍과 공모한 것을 진술한 것으로 되어버렸다.

‘내가 어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목숨을 건 상소를 올렸겠는가? 자복함으로써 임금의 용서를 구하는 게 낫다는 추국관의 말에 경솔하게 넘어가다니...... 이것으로 나는 끝난 것인가?’ 

김언신은 이번 진술로 붕당의 죄를 쓰고 참형이나 유배형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가슴이 저렸다. 

임사홍의 아내 이씨는 조카에 대한 분노를 누를 수가 없었다. 이심원의 얼굴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속에서 불이 일어나 오빠에게라도 화풀이를 하기 위해 평성도정의 집을 찾았다. 병이 들어 몸이 불편한 평성도정은 아들의 일로 마음이 상해 드러누워 있었다. 여동생이 찾아오니,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 맞았다. 이씨는 울면서 이심원을 원망하였다.

“제가 심원이 어릴 때부터 얼마나 귀여워하고 자랑스러워했는데, 저의 집안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평성도정은 얼굴이 붉어지며 변명하였다.

“심원이 무뢰한 유생들과 어울려 다니며, 축수재를 그치게 하였으므로 내가 꾸짖었는데, 이번에 채수 등과 통하여 너의 남편 일을 아뢰게 되었다. 내가 듣고서 만류하려고 했더니, 벌써 입궐한 다음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화가 미칠까 걱정이 되어 나도 병이 깊어졌다.” 

오빠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지만 오빠의 모습에 심원이 보였다. 이씨는 밥을 먹고 가라는 것을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한바탕 오빠에게 하소연을 한 후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 광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님이 옥중에서 쓴 글을 가지고 주상을 알현하려고 했으나 아예 만나주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씨는 임금이 공주의 남편인 아들도 만나주지 않고 물리쳤다는 말에 낙망하였다. 이씨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버지를 구하는 상소를 네가 직접 올려라.”

이씨는 아들에게 남편이 임금에게 올리려 했던 상소를 받았다. 밤새 상소를 읽으며 남편을 옥에 갇히게 만든 이심원과 양관의 관원들에 이를 갈았다.

임광재는 아버지의 용서를 비는 글을 임금에게 올렸다.

"신의 아비가 죄를 지어 옥에 갇혀서 마음속에 답답하고 괴로움을 품고 있으나 아뢸 길이 없습니다. 신이 외람되게 임금의 친족이 되었고 신의 아비는 10년이나 오래 시종 하였으니, 진실로 주상의 자비를 바랍니다. 신의 아비가 비록 형벌을 받을지라도 한스런 바는 없으나, 엎드려 전하의 은혜를 얻고자 합니다.”

성종이 임광재의 글을 읽어본 후 답을 내려주었다.

"경의 아비가 과인을 저버린 것이지, 과인이 경의 아비를 저버린 것이 아니다.”

이씨는 남편 임사홍의 글도, 부마인 아들의 글도 소용이 없자, 가슴이 조여왔다. 남편이 효령대군의 손녀사위이고 공주의 시아버지일지라도, 이 일이 쉽게 마무리되지 않고, 심한 벌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더구나, 추국관이 붕당의 죄를 빨리 자복하는 것이 성상의 심기를 더 이상 거스르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꾀어, 임사홍이 결국 허물을 인정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가혹한 처벌만 남은 것이다!’

이씨는 임금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이씨는 아들에게 말했다.

“벼루에 먹을 갈아라.”

이씨는 아들이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가는 것을 보면서, 남편을 몰아내려고 임금에게 아뢴 자들에게 향한 분노가 눈물이 되어 솟구쳤다. 이씨는 눈물을 닦고, 붓을 들어 묵즙을 적셨다.

"요즈음 홍문관과 예문관에서 신녀(臣女, 여자가 임금에게 자기를 이르는 말)의 남편을 죄에 빠뜨리고자 하여, 잘못을 얽어 짜서 글을 올려 죄주기를 청하였습니다. 또 신녀의 조카 주계부정 심원이 그 외삼촌 채수와 이창신, 표연말 등의 음흉한 사주를 듣고 이르기를, 신의 남편이 지난해에 박효원과 사사로이 통하여 현석규를 탄핵하도록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씨는 남편을 탄핵한 무리들이 앞에라도 있는 듯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신녀의 남편이 나이는 젊은데 벼슬이 높아서 사람들의 꺼리는 바가 되어 오늘의 일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죄를 받는 것이 이치에 당연하고 스스로 변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양관 관원 가운데 이창신은 바로 신녀의 남편과 동갑인 친척으로서 본래 친히 사귀었고, 신녀의 남편이 승지로 있을 때에 이창신은 승정원 주서가 되어 승정원에서 같이 있었으며, 퇴청하면 이창신은 신녀의 집에 와서 밤이 되도록 이야기하며 항상 친하고 서로 믿었습니다.”

붓끝에서 나오는 가는 글자들은 저마다 절규하며 쏟아져 하얀 종이에 옮겨졌다. 

“홍문관 관원 가운데 안침과 권경우는 신의 남편과 함께 사간원에 임명되어 어떤 일로 인해 서로 꾸짖다가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니, 저들이 반드시 원망을 품었을 것입니다. 이창신과 안침, 권경우 외 홍문관 관원들은 모두 은원이 없고, 또한 서로 사귀지도 않았는데, 신의 남편 마음이 간사하고 바른 것을 저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는 한 사람이 먼저 주창하자 여러 사람이 이에 따라 휩쓸려서 공론이라고 말하며 전하를 속인 것입니다.”

이씨는 숨을 크게 몰아쉬고, 붓을 들어 상소를 마무리했다.

“신의 남편이 승지로 있을 때 현석규와 더불어 뜻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항상 현석규에게 미움을 받았는데, 신의 남편뿐만이 아니라 다른 승지들도 업신여김을 받았습니다. 사간원에서 현석규를 탄핵할 때 신의 남편은 단지 박효원에게 현석규의 예의 없는 행실에 대한 일을 편지로 통하였을 뿐인데, 유자광과 김언신에게도 음흉한 사주를 행하였다고 하여 국문하게 하였습니다. 그때 추국하던 승지가 신의 남편에게 이르기를, ‘공은 오랫동안 근신(近臣)으로 모셨으니, 빨리 자복하는 것이 성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하고 재삼 긴밀히 말하기 때문에, 신의 남편도 감히 어기지 못해서 허물을 인정하고야 말은 것입니다. 실정과 죄가 다르니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유배,임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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