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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유배를 가다 (7)

by 까망잉크 2023. 3. 9.

유배를 가다 (7)

  

임사홍과 유자광은 죄악이 깊고 중한데, 사형을 감하심은 옳지 못합니다

by두류산Dec 12. 2022

 7장

 성종이 세분 대비에게 아침 문안을 올리니 대비들은 이구동성으로 임사홍의 구제를 당부하였다.

 “임사홍은 현숙 공주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잊지 마시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처리하셔야 합니다.”

 대비들은 현숙 공주가 다섯 살 때 아버지 예종이 승하하자 임원준 집에 맡겨 키웠음을 임금에게 상기시켰다.

 “현숙 공주는 이제 임씨 집안의 사람이 되었지만, 실제로 다섯 살 때부터 그 집안의 보호를 받았어요. 왕실은 그 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간들은 홍문관의 채수와 이창신을 옥에서 석방하기를 청하였다.

 "채수와 이창신은 공론(公論)에 의거하여 대간들과 함께 말하였는데, 마침내 임사홍의 아내가 다른 일을 들어서 고(告)하였기 때문에 옥에 갇혔습니다. 뒤에 간하는 자가 어찌 두려워하고 꺼리지 않겠습니까?”

 노사신도 대간들의 말을 거들었다

 "대저 사대부가 서로 화목한 뒤에야 조정이 안정되는 것입니다. 다른 일을 들어서 고하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아니되옵니다. 임사홍의 아내가 상소를 올려서 한 말은 보복하는 것이니, 이는 아름다운 풍속이 아닙니다.”

 

 성종은 대간과 대신들이 합심하여 아뢰자, 그들의 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옳은 말이다. 과인도 본래 국문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알았으나 이창신은  임사홍의 면전에서 칭찬하고 뒤에는 헐뜯었다고 했으므로,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국문하기를 명한 것이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채수와 이창신을 석방하라.”

 

 임사홍과 관련된 자들의 처벌을 결정하는 날이 임박해졌다. 한명회는 유자광에게 원한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유자광은 대간도 아니면서, 주제넘게 두 번이나 상소하여 나를 천하의 간신인 조고와 양기에 비유하였다. 내가 임금을 속였고 권력을 전횡하였다고 나의 죄를 엮어서 만들었다. 유자광의 상소로 대간들은 나를 먼 지방으로 유배시켜 생명이 없어지는 날까지 소환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고, 결국 재상의 관직에서 파면되지 않았던가.'

 

 한명회는 유자광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눈이 이글거렸다.

 “물실호기(勿失好機)다. 유자광이 임사홍과 더불어 붕당 죄가 정해졌으니,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반드시 유자광을 참형에 처해야 한다. 또한 유자광의 가산을 몰수하고 처자를 종으로 삼아,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원한을 갚아야 한다.”

 한명회는 임금의 성품을 보아 공신인 유자광을 사형에 처하지는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렇다면 유자광에게서 공신의 지위를 떼어내고 장(杖)을 때려, 몸을 부서뜨려서 유배 길에 나서게 해야 한다.”

 

 우부승지 이경동이 임사홍과 유자광 등의 처벌에 대해 의금부에서 형률을 적용한 것을 가지고 아뢰었다.

 "유자광과 임사홍, 박효원, 김언신은 붕당을 맺어 조정을 문란케 한 죄이니, 참대시(斬待時)하고, 그 처자는 종으로 삼으며, 가산은 몰수해야 합니다. 또한, 표연말과 김괴, 김맹성은 거짓으로 속이고 사실대로 아뢰지 아니한 죄이니, 장(杖) 1백 대에, 도(徒) 3년에 처하고, 모두 관직을 삭탈해야 합니다. 대사간 손비장은 마땅히 아뢸 것을 아뢰지 아니한 죄이니, 장(杖) 80대에, 품계를 3등급 내려야 합니다.”

 참대시(斬待時)는 참형의 형 집행을 할 때 춘분(春分)에서 추분(秋分)까지 만물이 나서 자라는 시기를 피하여 연기하여 집행하던 일이었다. 음력 5월이므로 추분이 지난 후 참형을 집행하자는 것이었다.

 

 성종은 유자광과 임사홍을 참형에 처하고 처자를 종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금부의 보고에 형벌이 너무 과중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사람들은 죄를 범한 것이 깊고 중하나 사형에 이르는 것은 마땅치 않다. 사형을 감하여 먼 지방에 내쳐서 종신토록 서용(敍用, 죄를 용서하여 다시 임용) 하지 말게 하라.”

 

 승지 이경동은 법에 정한 대로 처리하자고 아뢰었다.

 "대저 대간은 백관을 책망하고, 임금의 이목이 되어야 합니다. 대간이 털끝만치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으면 시비와 선악이 뒤섞이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 임사홍은 붕당을 맺어 은밀히 대간을 부추겨서 대신을 모함하였으니, 나라가 세워진 이래로 이와 같은 자가 없었습니다. 죄악이 지극히 무거워 죽어도 허물이 남으니, 법에 따라 처단하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죄가 비록 참형의 법에 해당하나, 어찌 일의 형편을 헤아리지 않겠는가? ”

 "옛사람이 이르기를, 사람을 참형시킬 때에는 여러 사람과 의논하여한다고 하였으니, 청컨대 대신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죄를 결정하소서.”

 

 이경동이 임금이 단독으로 결정하기보다는 공론에 부칠 것을 건의하자, 성종은 그의 말을 따랐다.  

 "이것은 과인의 판단에 달려 있으나, 의정부의 증경 정승과 육조의 참판 이상과 대간을 불러서 의논해 아뢰게 하라. 옛 제왕은 공신을 우대하여 비록 큰 죄가 있어 사약을 내려 죽게 함은 있을지라도 욕보이는 것은 없었다. 유자광은 익대 공신이니, 장(杖)을 때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울러 의논해서 아뢰게 하라.”

 

 대신들과 대간들은 임금의 명으로 함께 모여 임사홍과 관련된 자들의 처벌을 의논하였다. 대신들은 임금의 뜻대로 사형을 감형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임사홍과 유자광, 박효원, 김언신은 단지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모함하였을 뿐이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이르지는 아니하였으니, 사형은 지나치다고 봅니다.”

 한명회는 중신들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로부터 붕당은 그 해가 헤아릴 수 없이 큰 것이오. 이를 제대로 징계하지 않으면 뒤에 경계하는 바가 없을 것이오. 반드시 이들을 법에 의하여 참형에 처해야 하오!”

 

 임금은 대신들과 대간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대간들은 법대로 처리하자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대저 붕당을 맺은 사람은 자기와 뜻이 다른 자는 배척하고, 자기를 편드는 자는 가까이하여 조정의 정사를 문란하게 하고 나라가 망하기에 이르게 하니, 심히 두렵습니다. 지금 임사홍과 유자광, 박효원, 김언신 네 사람은 은밀히 결탁하여 대신을 모함하였으니, 의금부에서 붕당 죄에 해당시킨 것은 매우 합당합니다. 청컨대 법에 따라 참형에 처하소서.”

 

 임금은 법집행을 담당하는 형조의 의견을 물었다.

 “형조의 의논은 어떻소?”

 형조참판 이극균이 아뢰었다.

 “임사홍과 유자광 등은 모의하여 단지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탄핵하였을 뿐이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이르지는 아니하였으니, 성상께서 판단하시어 시행하소서. 김괴와 김맹성, 표연말, 손비장은 법에 의하여 시행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형조의 의논이 옳다. 임사홍과 유자광 등은 사형을 감하라.”

 

 한명회는 임금의 명을 듣고, 분연히 나섰다.

 "유자광은 서자의 몸으로 지위가 일품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성은의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를 도모해야 할 것인데, 붕당을 맺어 성총을 모독하였습니다. 겉으로는 충직함을 가장하며 안으로는 실로 간사하니, 이는 바로 소인의 모습입니다. 청컨대 법에 의하여 참형으로 처단하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대간들도 한명회의 말을 거들었다.

 "법이란 것은 하늘 아래 공평하게 집행해야 하는 바이고, 임금이 사사로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사홍과 유자광은 죄악이 깊고 중하며 법이 있는데, 전하께서 특별히 사형을 감하심은 옳지 못합니다. 청컨대 법에 따라 과감하게 결단하시어 여러 사람의 마음에 응하소서.”

 

 성종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임금은 감형을 기정사실화하며 말했다.

 “유자광은 공신이니 장(杖)을 때리는 것이 마땅치 않다. 이에 대한 대신들과 대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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