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를 가다 (6)
직접 본 듯이 말을 하다니 틀림없이 임사홍이 사주하여 올린 글이다
6장
승지가 임상홍의 아내 이씨의 상소를 올리니, 임금은 임사홍이 사주하였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상소를 거절하여 내치지는 못했다. 이씨는 태종의 증손녀이며, 효령대군의 손녀로 성종과는 가까운 종친이다. 특별히 공주의 시어머니가 아닌가.
성종은 이씨의 상소를 펼쳤다. 가는 붓으로 쓴 한문 글씨체가 가지런해 보였다.
“지난 4월 22일 무렵에 이창신과 채수가 신의 남편이 숙직하던 곳에 찾아와서 서로 이야기하며 신의 남편에게 주상의 돌보심이 중하셔서 두 번씩이나 승정원에 들어갔으니, 여러 사람이 우러르는 명망(名望)에 합한다고 칭찬하며 여러 가지 많은 회포를 논하면서 밤이 깊어서야 파하였는데, 그 뒤 5, 6일 사이에 상소하여 신의 남편을 지극히 헐뜯었습니다. 주상께서 몸소 물으실 때에 이창신은 거침없고 능란한 말솜씨로 교묘한 말이 생피리를 부는 것 같았습니다. 채수는 신의 남편과 일찍이 교분이 없고 서로 왕래하며 사귀어 친한 일이 없었는데도, 오히려 이르기를, 선대로부터 친한 집으로 사귀어 친했기 때문에 임사홍이 소인인 것을 잘 안다고 하였습니다.”
성종은 여기까지 읽고는 중얼거렸다.
“이건 틀림없이 임사홍이 사주하여 올린 글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직접 본 듯이 이러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임금은 다시 상소에 눈길을 두었다.
“이처럼 속이고 꾸며서 아뢰자, 성상께서 실정을 밝게 비추어 곧 전원 파직을 명하셨으나, 채수와 이창신과 표연말 등이 이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은밀히 심원을 부추겨서, 즉시 입궐하게 하여, 일이 사직에 관계된다고 하고 스스로 아뢰어, 신의 남편을 모해한 것입니다.”
성종은 비록 불쾌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였으나 여인이 쓴 상소가 문장이 수려하고 글씨가 단정하여 은근히 감탄하였다.
‘심원의 좋은 문장은 집안의 내력이구나.’
“그들이 간사하기가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심원의 아비 평성도정 이위가 신의 오라비인데, 신녀와 더불어 말하기를, 아들 심원은 채수와는 숙질이고, 이창신과 표연말 등 4, 5인이 서로 깊게 사귀니, 심원의 전날 상소와 근일에 친히 아뢴 일은 모두 다 이들이 시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창신이 전일 경연에서 심원을 어진 종친이라고 일컬었으니, 서로 칭찬하면서 그럴듯하게 속이는 것입니다.”
성종은 글을 읽으며 여인의 독한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이창신이 평시에 신의 남편과 친애하기를 골육과 같이 하고 신의 남편이 숙직하던 날에 와서는 부드럽게 이야기하였는데 마음속에는 칼날을 품고, 소매 속에는 상소할 초안을 가지고 언동을 엿보면서 그 허물을 찾고자 하였으니 간사한 마음과 속이는 꾀가 진실로 고금에 없는 소인입니다. 종친과 서로 사귀며 겉으로는 공의(公議)를 주창하며 남의 허물을 모함해서 상소하고, 은밀히 종친을 부추겨서 성상의 뜻을 감동시키려고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아뢰었으니, 그 간사함이 극심합니다.”
임금은 읽기를 마치고 상소문을 덮었다.
‘지난번 임광재가 임사홍의 글을 가지고 과인을 만나려고 하는 것을 거절하였는데, 이것은 그 글을 그대로 보고 쓴 것임에 틀림없다.'
성종은 이씨의 상소를 내려주며 승지들에게 물었다.
"채수와 이창신이 일찍이 남보다 말이 많았다.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으니, 국문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승지 홍귀달이 아뢰었다.
"임사홍의 처가 올린 글을 믿고, 국문하여서는 안 될 듯합니다.”
다른 승지들도 홍귀달을 거들며 말렸으나, 임금은 가까운 종친이며 공주 시어머니의 글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승지 이경동이 아뢰었다.
“채수와 이창신은 임사홍을 면대하여 지극히 칭찬하고는, 후에 글을 올려 나무라고 헐뜯었다니 사풍(士風)에 큰 폐가 됩니다. 또 일전에 심원과 더불어 사귄 남효온이 올린 글에 경연(慶延)을 천거하였는데, 심원이 올린 글과 말뜻이 서로 합하니, 이창신 등이 이들의 붕당이 아닌지 어찌 알겠습니까?”
승지 홍귀달이 일이 커지는 것을 염려하여 말했다.
"채수는 심원에게 외삼촌이므로, 종친과 사귄다는 예로 말할 수 없습니다.”
성종은 승지들을 돌아보며 명했다.
"채수는 그대로 두고, 이창신은 의금부에 가두어서 표연말과 아울러 국문하라."
홍문관 응교 채수는 임사홍의 처가 쓴 상소로 홍문관 수찬 이창신이 의금부로 압송되는 것을 보고, 임금에게 곧바로 나아와 아뢰었다.
"지금 임사홍의 아내가 상소하여 이창신을 의금부에 가두었습니다. 신은 이창신과 더불어 같은 일을 했는데 태평하게 벼슬에 있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으니, 청컨대 옥(獄)에 나아가서 변명하게 하소서.”
성종은 채수의 요청에 승지들을 돌아보며 역정을 냈다.
"근래에 궐내의 일을 외부에 모두 즉시 알려지니, 승정원에서 무언가 잘못하여 그런 것이 아닌가? 예전에 어떤 이가 공광(孔光)에게, ‘온실성(溫室省) 가운데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냐?’고 물으니, 공광이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무릇 궐내의 일을 가볍게 외간에 누설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임사홍의 아내가 올린 글을 이제 막 승정원에 내렸는데, 채수가 와서 스스로 국문받기를 청하니, 채수는 어디로부터 알았는가?”
공광(孔光)은 한나라의 승상으로 황제의 질문에 대해 영합하지 않고 소신껏 대답하였으며, 가족과 이야기할 때는 정치에 대한 것은 입에 담지 않아 조정의 일은 어떠한 사소한 일이라 해도 누설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온실성은 한나라의 대전(大殿)이 있는 궁을 말했다.
임금의 꾸중에 쩔쩔매매 승지들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채수가 나서서 아뢰었다.
"신이 홍문관에 있으면서 이창신이 갇힌 것을 들었는데, 신이 마음이 편치 못하여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알고자 승정원 주서 방에 들렸다가, 임사홍의 아내가 상소를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성종은 채수가 이씨의 상소를 보았다고 하니, 궁금한 내용을 물었다.
“이창신과 더불어 임사홍이 숙직하는 방에 이르러 말한 것이 무슨 일인가?”
“임사홍은 도승지 겸 예문관 직제학이었고, 신은 홍문과 응교 겸 예문관 응교이니, 임사홍은 신에게 당상입니다. 신이 벼슬에 제수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나, 성품이 게을러서 한 번도 서로 만나보지 못하였습니다. 마침 야대(夜對)를 마치고 이창신과 더불어 승정원에 갔다가 임사홍이 숙직하는 것을 알고 함께 그곳에 이르러서 하례하였지만, 이른바 여러 사람이 우러러본다고 한 말은 신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성종은 결국 채수가 요청한 대로, 의금부에 가두고 함께 국문하게 하였다.
조선사회에서 부인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부인이 상소를 올리는 것을 자발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남편이 사주한 일로 간주되어 죄가 가중될 우려도 컸다. 자녀가 상소를 올리는 경우에도 임광재의 경우처럼 아비가 억울하다든지 아비 대신 용서를 빈다든지 하는 상소가 종종 있으나 이것도 아비가 아들을 사주해서 글을 올리게 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워, 상소를 통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유배,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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