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3)어리석은 바보
입력 2020. 09. 08. 18: 12
![](https://blog.kakaocdn.net/dn/c3Hd70/btr5RSCeMcN/t5Z0YnvK5MvBo25nUOKWvK/img.jpg)
그림/전슬기(국민대 의상디자인학과 졸업)
오히려 저렇게 호기 있게 덤비는 적동의 태도에 저의기 기대가 바짝 되어 긴장이 되는 것은 이진사였다. 아니, 혹여 용케 걸려든 저 맛난 고기감이 뒤늦게 눈치를 채고 재빨리 빠져 나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 이진사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좋다! 그러면 그 약조를 지금 당장 문서로 쓰겠으니 거기 서명하렷다. 정말 약속한 시간 안에 소를 훔쳐가지 못한다면 그 목숨을 내어놓는 거다!”
그래도 글줄이나 읽은 인품 있는 선비인 이진사는 그 약조 내용을 다시 환기 시키며 적동에게 재차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예! 나리, 그렇게 하겠습니다.”
적동이 다시 서슴없이 말했다. 이진사는 적동의 기백에 놀라면서도 ‘이제 저놈을 아주 혼 구멍을 내줄 좋은 기회가 왔구나!’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지필묵을 꺼내 그 내용을 그 자리에서 써서 적동의 서명을 떡하니 받았다. 반상의 차이가 분명한 세상에서 이 약조를 감히 적동이 절대로 기만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제 꼼짝없이 저 도둑질 잘한다는 적동은 이진사의 손에 명줄이 단단히 잡힌 꼴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대문 앞에 붙들어 매어놓은 황소는 이진사가 앉아있는 툇마루에서 멀리 잡아도 서른 발짝 앞이라 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었기에 정신만 바짝 차리고 있다면 절대로 도둑질을 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소풍경이 덜러덩! 하고 울기만하면 그 즉시 발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해가 기울도록 이진사 집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 적동은 잠시 후 눈에 환하게 잘 띄는 위아래 눈부신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왔다. 더구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를 이 밤에 새하얀 옷이라니! 그것을 본 이진사는 ‘이제 보니 저 녀석은 참으로 소문 같지 않게 기실은 몹시 어리석은 녀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어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이 내기는 해보나마나구나 하고 흡족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었다.
더구나 적동이 다음하는 행동은 참으로 우스웠다. 대문 앞을 빙 두른 돌담 앞으로 줄줄이 늘어선 커다란 감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었는데 그것도 기와집 처마가 돌아가는 먼 감나무를 골라 그 위로 척 올라갔던 것이다. 툇마루에 앉아서 보면 그 감나무 위에 올라가서 흰옷을 입고 가지위에 걸터앉아있는 적동의 모습이 달 없는 칠흑 어두운 밤이라도 환히 내다보일 것이었다.
‘하하하하하! 천하에 어리석은 바보 녀석! 밤에 새하얀 옷이라니! 더구나 대문과 멀리 떨어진 저 감나무 위에 높이 올라가 어떻게 저 대문 앞 황소를 저 눈에 잘 띄는 흰옷을 입고 나 몰래 도둑질을 한단 말인가? 내 이 툇마루에 벌렁 누워 저 흰옷 입은 녀석을 잘 감시만 하면 그만일 것을......., 세상에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고 얕은 제 기술만 믿고 바보처럼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종들이 많다더니 바로 저놈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무식한 일개 하찮은 도적놈에 불과한 녀석을 붙잡고 목숨을 잡을 내기를 하다니.......,,’
이진사는 스스로 실없는 짓을 했다며 만면에 실소를 가득 머금는 것이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4)귀신이 곡할 노릇
![](https://blog.kakaocdn.net/dn/2CzDs/btr5QyK1X0d/SqxQizENKUChkTtsnxOAe0/img.jpg)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허허! 소문의 실상이라는 것이 늘 그러한 것이거늘....... 혹여 저 적동이 도둑질을 실패하더라도 내 어찌 귀한 인명을 살상할까 보냐? 다시는 가난한 백성을 상대로 도적질을 하지 못하게 크게 혼을 내 가르침을 주고 그 못된 버릇이나 고쳐주는 것이 인생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선비유생(儒生)이 해야 할 일이거늘........ 어! 어흠!’
이진사는 감나무 위에 새하얀 옷을 입고 걸터앉아있는 적동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까지 해보는 것이었다.
밤이 오고 하늘에 둥근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대문 앞에 매어놓은 황소는 풍경을 시끄럽게 달랑거리며 쇠파리에 모기가 자꾸 엉기는지 주변을 돌며 꼬리를 휘돌리더니 이제는 생풀을 되새김질하며 길게 누워있었다.
이진사는 집안의 하인들이 저녁을 내오는 것을 먹고는 술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는 집안 사람들에게 사랑채와 대문 앞으로는 오늘밤 그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엄하게 지시를 내렸다. 만의 하나 다른 사람을 잘못 식별해 보고 도둑을 놓치는 실수를 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어서이기도 했고 또 저 적동에게 이진사 자신을 집안사람 그 누구도 오늘밤 이 내기에 원조하지 않는다는 한 치 기울어짐 없는 공정함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달밤에 흰옷을 입고 먼 감나무 가지위에 걸터앉아있는 적동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노라니 헛웃음이 자꾸 돋고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내기라 생각한 이진사는 무료하여 한잔 술로 먼저 자축을 하자는 것이기도 하였거니와 실상은 어리석은 무지렁이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커다랗게 난 소문과 다른 실상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씁쓸했던 것이다.
늦여름 밤이 드리워지면 한낮 시끄럽게 울던 매미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철 이른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그새 풀잎 사이에서 도란도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진사는 커다란 합죽선을 휘휘 휘둘러대며 간간이 엉기는 모기를 쫓아가며 서너 잔 알싸하게 술을 마시고는 감나무 사이의 흰옷을 주시하다가 가끔씩 대문 앞에 매어놓은 황소를 흘깃거리는 것이었다. 누워있던 황소가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주위를 돌며 자꾸 엉기는 모기를 쫓는지 풍경을 덜그렁덜그렁 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꼬리를 사납게 휘둘러댔다.
그러나 이진사는 저 황소보다도 감나무 위의 흰옷에 더욱 눈길이 갔다. 저 흰옷이 그대로만 있으면 적동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니 말이다. 서산으로 달이 기울어가고 그렇게 술시말(戌時末)이나 되었을까? 감나무 위의 흰옷만을 긴 하품을 해대며 따분하게 예의 주시하고 있던 이진사가 무심코 대문 앞의 황소를 살피려는데 그 황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헉! 이럴 수가?’
순간 제 눈을 의심한 이진사는 재빨리 감나무 위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 흰옷은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대문 앞의 황소가 보이지 않다니? 아마 누워 있겠지?‘ 휘영청 밝은 달빛에 비추는 곳을 재차 꼼꼼히 확인해보는 이진사의 눈에 황소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이진사는 아뿔싸! 하고 짧게 비명을 내지르며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붙잡고 설마 하는 마음에 맨발로 대문 앞의 황소를 확인하러 쏜살같이 달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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