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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4화>기생 소백주 (17) 뇌물 삼천냥

by 까망잉크 2023. 5. 3.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17) 뇌물 삼천냥

입력 2020. 11. 15 18: 10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러나 그 기대는 말짱 허사였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무려 일 년, 이제나 저제나 이정승이 자신을 불러 주기만을 기다리며 가슴 졸이며 사랑방의 식객 노릇을 해왔건만 도무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렇게 이정승의 사랑방 식객이 되어 기다리는 동안 김선비는 조선 팔도의 그렇고 그런 변변찮은 수많은 선비들이 세도가인 이정승 집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누구누구 연줄을 타고 돈 꾸러미를 챙겨들고 몰려와서 벼슬을 청탁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 드물게 몇몇은 소원을 성취하여 가기도 했는데 거개가 자신과 같은 꼴이 되어 하염없이 세월만 죽이고 기다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스스로 지쳐서 그곳을 떠나 낙향하기도 했고 또 다른 실력자를 찾아 청탁을 하러 떠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선비는 이정승 말고는 비빌 연줄도 없었고, 다른 뾰쪽한 방도도 없었다. 죽으나 사나 여기서 승부를 보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아무래도 돈을 많이 가져다바친 사람 순으로 벼슬자리를 먼저 얻어 나가고 자신처럼 돈을 적게 바친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나보다 하고 생각하기에 이른 김선비는 하인을 시켜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 얼마간 남은 논밭을 팔아 처분하여 다시 천 냥의 돈을 만들어 보내라고 했다.

몇 달 뒤 그렇게 하인의 등짐에 짊어져 올라온 돈 천 냥을 김선비는 이정승에게 또 가져다 바쳤다.

“뭘 힘들게 이런 거를 또 가져왔어 ! 으음 !……그거라면 저기 사랑방에 가서 며칠 묵으면서 기다려 보시게나 !”

이정승은 지난번 같이 똑같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김선비는 설마하니 이번에는 정말로 무슨 소식이 있겠지 하고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또 맹꽁이 파리 잡아먹은 듯 돈 천 냥을 꿀꺽하고 삼켜먹고는 꿩 구워먹은 속처럼 감감무소식이었다. 가슴을 바삭바삭 태우며 다시 일 년을 더 기다려보아도 소식이 없자 답답한 김선비는 아무래도 바친 뇌물이 아직도 부족한가 보다고 생각하고는 또 하인을 시켜 고향의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 남은 논밭을 더 팔아서라도 천 냥의 돈을 더 만들어 보내라고 하였다.

기왕에 벼슬을 구걸하러 작정을 하고 돈을 짊어지고 한양 길을 왔는데 뜻도 이루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선다고 한다면 도무지 아니 될 일이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생각한 김선비는 집안의 전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기필코 뜻을 이루어야만 했다.

더구나 지금 이정승에게 바친 돈이 얼마인가? 논밭을 팔아 마련한 돈 이천 냥이 아닌가 ! 여기서 포기한다는 것은 조상대대로 물려온 전답을 팔아 만든 그 피 같은 돈 이천 냥을 포기한다는 것과 진배없었다.

몇 달 뒤 또 김선비는 아내가 전답을 팔아 마련해준 돈 천 냥을 하인이 지게에 짊어지고 오자 또다시 이정승에게 고이 가져다바쳤다.

김선비가 이정승에게 바친 뇌물은 이제 삼천 냥이나 되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18) 청천벽력

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거금 삼천 냥을 갖다 바쳤으니 반드시 지방의 미관말직이라도 하나 붙들어 주겠지 하고 김선비는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기다렸다.

“으음!...... 그래! 그거라면 저기 사랑방에 가서 며칠 묵으면서 기다려보시게나!”

지난번과 똑같은 이정승의 이 말을 들은 김선비는 이번에는 절대로 거짓이 아니겠지 하고 굳게 믿으면서 사랑방으로 물러나왔다.

그런데 아뿔싸! 이제나 저제나 이정승이 언제나 불러주려나 하고 가슴 졸이며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도무지 소식 한 점 없었다.

삼천 냥을 갖다 바쳤는데도 도무지 이정승에게서 이렇다 할 소식 한 자락 없자 김선비는 아무래도 그 삼천 냥이란 돈도 이 나라의 벼슬자리 하나 사기에는 아직 작은가 보다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심고심 하던 어느 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다시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집안에 있는 남은 논과 밭과 세간을 모두 팔아 돈이란 돈은 전부 다 긁어모아서 하인 편에 올려 보내라고 말이다.

이왕 작정한 것 몇 만 냥이라도 긁어다가 죄다 갖다 바쳐 기필코 뿌리를 뽑자고 김선비는 생각했던 것이었고, 또 이정승 하는 꼴에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하는 단단한 오기가 옹이처럼 가슴에 들어차 이글이글 타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하인 편에 들려 편지가 가고 한 달 뒤 아내에게서 답장이 왔다.

부랴부랴 편지를 읽는 김선비의 낯빛이 일순 침통하게 일그러져 버렸다.

내용인즉슨 이제 집안의 돈이란 돈은 죄다 없어지고 그간 삼천 냥 바친 돈 마련하느라 가산을 모두 탕진하였고, 더구나 늙은 어머니의 몸이 많이 편찬은 데다가 사실은 식구들이 모조리 굶어 죽게 생겼으니 벼슬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이 편지를 받은 즉시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김선비는 하늘이 온통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학문을 연마해 과거를 치렀는데도 보는 족족히 낙방을 했고, 또 벼슬을 구걸해 뇌물을 바치기를 삼천 냥, 삼 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있는 대로 모조리 돈을 긁어다 바쳐서라도 반드시 뜻을 이루고 난 다음에야 고향에 떳떳이 내려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 그 길도 아예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당장에 이정승에게 쫓아가 멱살이라도 부여잡고 패대기를 치며 벼슬을 주지 않으려거든 돈 삼천 냥을 당장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기실은 돈 달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제 손으로 돈을 싸들고 가 바리바리 바치지 않았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도무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낙망한 김선비는 당장 혀라도 콱 깨물고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막상 또 그러지도 못하겠고 그만 뜬눈으로 한밤을 꼬박 지새우며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난 세월을 홀로 아련히 회상해 보는 것이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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