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19) 귀거래사
입력 2020. 11. 17 17: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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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지나 온 세월 나름대로는 열심히 글공부를 한다고는 했으나 생각해보니 건성건성 술과 풍류를 즐기며 노는데 더 열중이었던 것만 같고, 부모에게는 늦도록 공부 핑계를 대며 살아왔으나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했으니 커다란 불효를 한데다가,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식들만 맡겨두고 고생만 시킨 것이었다.
자식들에게는 또 어떤가? 무관심으로만 일관하지 않았는가! 김선비는 자신의 과거사를 생각해 볼수록 잘못만 하고 살아온 인생살이였던 것이다.
급기야는 이렇게 집안을 버리고 벼슬을 사러 떠나와서는 조상 대대로 물려온 가산을 모조리 팔아 탕진하도록 뇌물을 바칠 돈을 마련해 올리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인생인가!
자식으로도 남편으로도 아버지로도 모조리 소홀히 한 실패한 인생이었다. 이제 집안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 이정승에게 바쳐버린 탓으로 늙은 홀어머니는 병이 들고 가족들이 굶주린다는데 도대체 이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저 흉악한 원수 같은 이정승을 만나 종국에는 원하던 벼슬도 사지 못하고 집안의 돈이란 돈은 모조리 긁어다가 갖다 바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집안을 온통 망쳐버렸지 않은가!
김선비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천 길 낭떠러지 수렁 속에 깊숙이 추락해 빠져 박혀버린 캄캄한 앞날을 생각하고는 길게 한숨을 쉬며 장탄식을 했다.
터무니없는 벼슬자리 욕심은 당초에 갖지를 말고 행실을 수양하고 학문을 깊이 연마하며 고요히 제 주어진 일에나 충실히 하였다면, 그러면서 혼탁한 시절을 매섭게 비평하는 지조 높은 청빈한 선비로 초야에 은일(隱逸)하며, 동진(東晉)의 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거울삼아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자급자족하면서 살아왔더라면 결코 이런 낭패는 없을 일이 아니었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선비는 자신에게는 애시 당초 조정의 녹을 먹을 관록이 없는 사주팔자인데다가 이정승에게 삼천 냥을 갖다 바친 것은 재수가 없어 손재수(損財數)가 든 것으로 여기자며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급기야 김선비는 이게 다 부정부패로 이 세상이 온통 썩은 탓이 아니겠는가하고 생각하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기대를 접고 내일 아침에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 굶주리는 노모부터 챙기고 식솔들이라도 잘 건사하자고 마음을 다잡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혀를 깨물고 그 자리에서 죽어 넘어지더라도 집에 돌아가서 죽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부당하게 벼슬을 탐한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온갖 생각에 젖어 한잠도 자지 못하고 가슴을 치고 길이 탄식을 하며 밤새 뒤척이다가 낙향을 결심한 김선비는 날이 밝기 무섭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길 떠날 행장을 꾸렸다.
그리고는 사랑방에서 나가 아직 입궐하기 전인 이정승을 찾아갔다. 이정승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아침을 먹을 채비를 하고 있다가 김선비를 맞이했다.
“아침 일찍 무슨 일인가?”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20)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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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예, 정승나리, 오늘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직(下直) 인사차 왔습니다.”
이 말을 할 때 김선비는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한 자락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정승도 사람이라면 삼천 냥이나 되는 뇌물을 받아먹고 나 몰라라 하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삼 년이라는 긴 세월을 꼼짝하지 않고 이정승의 식객으로 사랑방에서 목을 빼고 기다렸으니 무슨 작은 벼슬자리라도 하나 챙겨 주겠다는 약속의 말이라도 있지 않을까 김선비는 내심 고대하였던 것이다.
“무 무어?......... 왜? 좀 더 있지 않고........“
이정승은 김선비의 눈치를 살피는 듯 잠시 바라보다가 말끝을 흐렸다.
“늙은 어머니를 뵙지 못한지가 그새 삼년이옵니다. 늙은 어머님이 몸도 편찬다고 하니 이제 고향에........”
“으음! 그래! 그럼, 잘 가시게나!”
이정승은 김선비가 더듬더듬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마치 가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렇게 무 자르듯 단박에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
그 말을 들은 김선비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이정승을 쓱 올려다보았다.
뭐라! 돈 삼천 냥을 갖다 바치고 벼슬자리를 기다리며 삼년 동안이나 사랑방 식객 노릇을 했는데 ‘그럼, 잘 가시게나!’ 저자가 도대체 사람인가? 짐승인가? 김선비는 순간 머리에 피가 몰리고 으드득! 이가 갈려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손에 쥔 칼이라도 있다면 당장에 달려들어 저자의 목을 따고 싶은 극한 충동을 꾹 눌러 참으며 김선비는 이정승을 다시 쓱 올려다보았다.
김선비의 눈에 들어온 이정승의 얼굴은 막 커다란 개구리를 삼켜 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독사의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탐욕스런 사악한 악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런 자에게 인간적인 기대를 걸고 돈을 있는 데로 다 긁어다가 뇌물로 바쳤다니!’ 김선비는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잠시 머뭇거렸다.
“저저....... 정승나리! 그 그간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가가 강녕(康寧)하시기 바 바랍니다!”
김선비는 욱! 하고 끓어오르는 순간의 감정을 겨우 억누르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김선비의 눈가로 울컥 불꽃같은 울분(鬱憤)의 눈물이 스미어 올라 그것을 재빨리 삼켜 무느라 자신도 모르게 말을 순간적으로 더듬거렸던 것이다.
이게 다 권력과 지위만 보고 사람을 볼 줄 몰랐던 자신의 잘못이지 않은가! 부정한 뇌물도 사람다운 사람에게 들이 밀어야 약발이 나는 것이던가! 벼슬자리에만 눈이 멀어 사람을 볼 줄 몰랐던 자신의 탓이지 않는가!
김선비는 씁쓸히 이정승의 방을 나왔다. 샛노란 현기증이 일어 김선비는 순간 하마터면 방문 앞에 쿵하고 고꾸라져 기우뚱 넘어질 뻔 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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