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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27)천명(天命) <제4화>기생 소백주 (28)기이한 방

by 까망잉크 2023. 5. 10.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27)천명(天命)

입력 2020. 11. 30. 18: 51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렇다면 공자가 흠모했던 주나라 주공 단도 촉나라의 재상 제갈량도 모두 천운과 지운과 인운을 다 잘 타고났던 존재들인가? 그렇다면 시운은 어떠한가? 주공 단은 스스로 어린 조카를 대신하여 왕위에 오를 것을 사양했고, 제갈량 또한 황제에 오르라는 유비현덕의 말을 거절했다.

주공은 예도에 따라 형의 아들 어린 조카 성왕을 보필하는 것을 천명(天命)으로 여겼고, 제갈량은 황제자리가 아니라 백성의 안위와 평화를 천명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그러한 하찮은 인간에게 하늘이 부여해준 운이란 것을 뛰어넘어버린 깊은 경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황제라는 권력을 뛰어넘은 현자(賢者)로 대대로 칭송받고 숭앙받지 아니한가!

그러나 조선의 세조, 수양대군은 어떠한가? 수양은 형인 문종이 죽고 열세 살의 어린 조카 단종이 즉위하자 그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수양은 애초에 왕위에 오를 천운을 타고 나지 못했다. 왕의 천운을 타고 나지 못한 자가 왕이 되기 위하여서는 왕의 천운을 타고난 자를 죽여야 했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끝없는 살육으로 이어졌다.

하늘의 순리대로 왕의 천운을 타고 난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탐욕으로 왕위에 오른 수양이 누린 세월은 몇 해인가? 고작 14년이었다. 그동안 아들이 죽어 나가고 딸이 등을 돌렸다. 4촌 형이고 오빠이던 단종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아 차지한 아버지 수양에 대하여 인간으로서의 도의(道義)와 권력의 속성을 파악할 나이였던 그들은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14년 동안 동생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을 비롯해 사육신(死六臣)등 숱한 반대파들을 죽이고 애초에 자신에게 없는 운이었던 왕위를 억지로 잡아 누렸던 세조는 과연 그 순간에 무엇을 느꼈을까? 숨 끊어진 순간 하루아침에 티끌로 사라져 가버릴 짜릿한 권력 맛을 마약처럼 만끽 했던 것일까? 과연 하늘의 이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선비는 작금의 조선이라는 나라를 생각해 보면 볼수록 유교의 나라가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에 젖어드는 것이었다. 유교의 성현 공자가 꿈속에서도 흠모해 마지않았던 주공 단은 어린 조카의 왕위를 결코 넘보지 않았고 간악한 자에게 모함을 받아 쫓기면서 까지도 결코 마음 변하지 않고 끝까지 보필했다. 그리하여 주공 단은 성현 공자의 이상적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에게 쫓김을 당했다. 유교에서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는 효(孝)를 이방원은 어기고 아버지 이성계가 낳은 신덕왕후의 아들들을 죽이고 마침내 왕 자리를 거머쥐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이성계의 최고의 동반자 노회한 정치인 정도전도 이방원의 칼날에 쓰러졌다.

고려 왕실을 피로 물들였던 그들은 똑같이 그렇게 피를 내뿜으며 다름 아닌 같은 편인 나이 어린 이방원의 칼날을 받았던 것이다. 더구나 수양은 어떠한가? 주공 단과는 다르게 조카 단종을 유폐시켜 죽이고 왕위를 거머쥔 자가 아닌가! 실상이 이러할 진데 어찌 조선이 충과 효 그리고 인의예지를 숭상하는 유교의 나라란 말인가?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28)기이한 방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렇다면 지금 김선비 자신은 또 어떠한가? 천운도 지운도 인운도 모두 가득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시운은 어떠한가? 작금의 실정은 이정승 같은 외척이 온갖 권세를 누리는 시대였다. 호랑이 없는 산에는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틀림없이 그런 시대였다.

그런 시대의 선비는 힘이 없어 불의의 세상을 바로 잡지 못한다면 초야에 묻혀 학문을 벗 삼아 욕심 없이 자신의 청정한 가슴에 품은 굳센 뜻 하나 우뚝 지키고 고단하게 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야 하는데 김선비는 그 간악한 여우에게 모든 집안의 재물을 탈탈 털어 뇌물로 바치고 벼슬을 구걸하려 했으니 인생의 최하위 밑바닥까지 가버렸지 않은가! 천운에 벼슬자리가 없는 것을 뇌물을 바쳐 사려한 것이 아닌가! 천운에 왕 자리가 없는 수양이 살육을 통해 왕위를 거머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늘의 이치에 부당하기는 수양이나 김선비나 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하하하하! 그리하여 불가(佛家)에 이르기를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요,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 했던가!(삼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동안 탐한 재물과 권력은 숨 끊어지는 하루아침 먼지가 되어버리는구나!) 아아! 조선 천지에 나 같은 바보천치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탐욕으로 썩어 빠진 이내 가슴엔 모진 설한풍만 들이치구나!”

김선비는 누가 듣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미친놈같이 큰 소리로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남으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점심도 쫄쫄 굶고 바삐 걷는다고 걸었는데 땅거미가 질 무렵 당도한 곳은 수원이었다. 허기가 질대로 진 몸에 기운이 다 빠져 머리에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지나오면서 배고픈 속에 우물물만 잔뜩 들이켰더니 더욱 시장기가 더하였다. 엽전 한 닢 없는 자신의 처지에 과연 어디에 들어가 시장기를 때우고 잠을 청해 다시 길을 떠날 것인가? 바보처럼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먼 길을 떠나온 자신을 생각하면서 김선비는 답답한 가슴을 치며 어디 기가 막힐 구원자라도 있을 양 막연한 기대를 하며 수원거리를 이리저리 헤맸다.

한참 거리를 헤매는데 길모퉁이 담벼락 앞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웅성거리는 것이었다. 김선비는 무슨 일인가 하고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벽에 붙어있는 기이(奇異)한 방(訪)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용인즉 ‘수원 기생 소백주가 서방님으로 삼을 글 잘 짓는 선비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저게 무슨 소리인가요?”

김선비는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영문을 몰라 검은 수염을 늘어뜨린 넓은 갓을 쓴 옆 선비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직 저것을 모른단 말인가?”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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