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4화>기생 소백주 (31)여인의 꿈
<제4화>기생 소백주 (31)여인의 꿈
입력 2020. 12. 06. 1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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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온갖 사내들의 짓궂은 장난과 그 등살에 놀아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것이 생활이 되고 보니 지긋지긋했다. 서른이 올려다 보이는 어느 봄날 소백주는 모진 것이 세월이라고 울밑에 난향같이 싱싱하던 자신의 몸도 초가을 단풍 물 들어오는 나뭇잎처럼 한풀 시드는 낌새를 느끼고는 떠억 하니 평소 꿈꾸어오던 것을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내놈들은 인생살이의 목적이 권력이고 돈이고 출세인줄은 몰라도 또 계집들 또한 남편이나 자식들 출세시키는 일인 줄은 몰라도 소백주는 그것이 아니었다. 기왕에 이 세상에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마음이 통하는 멋있는 사내를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며 비록 고대광실 좋은 집에 살며 맛난 것 먹고 호의호식하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진실한 마음 교환하며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여인으로서의 소박한 꿈을 실현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소백주는 담장너머로 따뜻한 바람 불어오는 봄 진달래꽃 피는 앞산을 바라보며 남녘 파란하늘 멀리 그 꿈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그날부로 소백주는 당장 기생 일을 집어치우고는 글 잘하는 단정한 사내 하나를 찾는다는 방을 저자거리에 대담하게 내다 붙였던 것이다. 적어도 글을 아는 선비라야 세속의 권세와 지위와 돈의 탐욕에서 벗어난 진정한 사람의 도리를 알 것이고, 또 시절 따라 모진 칼바람 불어오는 궂은 세상사를 지혜롭게 간파하며 살 줄 알 것이고 또 무엇보다도 사람으로서 삶의 진실한 멋과 고매한 운치를 알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백주가 수원 저잣거리 골목마다 방을 내다붙이자 사내들이 거센 태풍에 격랑을 타고 구름같이 들이닥쳤다. 과연 소백주의 명성은 그저 빈말에 뜬 구름만은 아니었다.
예쁘고, 글 잘하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소백주와 인생의 뜨겁고 질긴 사랑의 연을 맺어보려는 일대의 이름 난 사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한양 땅에까지 소문이 퍼졌는지 조선 각지의 선비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무리지어 날마다 몰려드는 것이었다.
내로라는 학식을 지닌 문장가들이며 고관대작들이 소백주의 환심을 사려고 들이닥쳤던 것이다. 높은 관리를 지내며 과거께나 급제했다는 사내들은 그저 소백주를 눈 아래로 흘겨보며 네깟 기생 주제에 무슨 글재주를 시험하느냐는 식으로 깔보며 허세가 잔뜩 담긴 글을 휘휘 내리갈겨놓고는 거드름을 잔뜩 피우는 것이었다.
화려한 기교와 잔재주 잔뜩 부린 허세 가득한 글 내용은 곧 그 사내의 삶의 태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소백주는 그런 류의 교만과 허풍에만 가득 찬 글들을 두어줄 읽다가 그만 구겨 불 쏘시개거리로 내팽개쳐 버리는 것이었다.
“고명하신 대감께서는 어려서부터 어렵게 익힌 천재적인 글 솜씨로 얻은 높은 지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났군요. 그리하여 진실 한 톨 없는 치기에 가득 찬 허세로 교만하게 세상을 살아가시는 구려! 안됐지만 낙방이올시다!”
소백주는 보기 좋게 낙방을 쾅쾅 먹였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32)사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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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나라의 임금도 그의 글재주를 높이 사서 과거에 급제 시키고 그의 재주를 인정해주고 높은 벼슬을 내려 부리고 있건만 소백주는 그런 관리에게도 여지없이 낙방을 먹이며 ‘호호호호홋!’ 마음껏 비웃는 것이었다.
또 어떤 부류의 사내는 비굴하게도 아첨 가득한 내용의 글을 써내는 것이었다. 그것 또한 낯 간지러운 꼴불견이었다. 어디 아첨할 곳이 없어서 한갓 인생의 최하위 밑바닥인 천한 기생에게 글재주랍시고 아양을 잔뜩 부리면서 허망한 감정을 죄다 들어내 보이고 체신 머리 없이 알랑거리려하니 이 또한 바로 구겨져서 불 쏘시개거리로나 써야할 것이었다.
“도무지 글을 배운 선비라 할 수 없는 한심하고 비루한 족속이로군! 사내의 기백도 기상도 전연 없으니 어찌 저들이 세상의 정의와 낭만을 알랴! 하물며 인간의 사랑을 알까 부냐! 그럭저럭한 탐욕에 빠진 아낙이나 만나 평생 그 등살에 기대어 밥맛타령이나 하고 알랑거리며 헛기침이나 하고 살다가 가야할 비루한 인생이구먼!”
소백주는 그저 씁쓸한 미소를 마음속으로 삼키는 것이었다. 한 부류는 제 잘났다고 기고만장하여 교만하게 날뛰는 것이 고작이고, 또 한 부류는 저 못났다고 잘 좀 봐달라고 잔재주를 부리며 설설 기고 들려하니 참으로 둘 다 상종해서는 아니 될 꼴불견들이었다.
있어도 없는 듯 고요하고, 없어도 있는 듯 든든한 정신의 푯대가 없는 그저 한심한 속물들뿐이었다. 거기다가 쥐꼬리 같은 자신의 재주와 경력과 지위를 들이대며 뇌물에 연줄을 동원해 득세한 그저 이름과 돈다발과 지위만 있는 그야말로 앞뒤가 모조리 구리고 추저분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속물들이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나 잘났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떨며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오로지 탐욕만으로 덤비던 것이다.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사내다운 사내 하나 없고, 그럴듯하게 말과 겉만 앞세우는 가짜들만 오만 곳에서 득실득실 개판을 치니 이 나라가 이토록 탐욕스런 욕망으로만 굴러갈 밖에…가진 만큼 표독하고, 없는 만큼 비굴하고 그러하니 사방천지가 어지럽고 부정부패가 난무할 밖에…”
적어도 소백주는 저들 부류 사내들의 앞과 뒤가 얼마나 다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목적으로 삼는 단 꿀을 빨기 전에는 온갖 위세와 갖은 아첨을 떨며 덤비다가도 막상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 몰라라 쥐도 새도 모르게 갖은 변명으로 비겁하게 배신 짝을 턱 놓고 ‘나 잡아봐라!’ 하고 아예 줄행랑을 쳐버리거나, ‘이제 너는 내 것이다!’ 라고 제 멋대로 생각하고는 하찮은 계집이라, 그것도 기생이라 얕잡아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만 악다구니를 쓰며 폭력도 마다않고 마구 휘두르면서 교활한 독재자처럼 암팡지게 틀어 앉아 사납게 군림하며 지배하려 드는 것이었다. 저들과 무슨 인간의 순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꿈이요 환상이란 걸 기생 소백주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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