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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41)비몽사몽 <제4화>기생 소백주 (42)선우후락(先憂後樂)

by 까망잉크 2023. 5. 21.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41)비몽사몽

입렫 2020. 12. 20. 16: 15

그림/이미애(삽화가)

김선비는 이런 뜻밖의 우연에 기가 막힌 인연도 다 있구나싶어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순간 ‘아!’하고 탄성을 지를 뻔 했다.

세상에 살다보니 기생에게 글이 합격하는 행운도 다 있더란 말인가! 어허허허! 그러고 보면 이 야밤에 남의 집 헛간 신세를 지며 거지처럼 맨흙바닥에 뒹굴며 묵어갈 신세는 면한 것이 아닌가!

김선비는 아낙을 따라 ‘어흠! 어흠!’ 낮게 헛기침을 하며 이게 꿈이냐? 생시냐? 비몽사몽(非夢似夢) 가느다란 정신 줄을 겨우 붙잡고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김선비가 일하는 아낙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가 앉자 큰방 옆으로 긴 대발이 쳐져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인생의 장난인가! 김선비는 정신을 가누며 방바닥에 점잖게 앉아 ‘어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선비님! 시를 잘 읽었습니다. 문재(文才)가 뛰어난 진솔한 선비님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순간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대발 쳐진 저쪽에서 김선비의 귀 고막을 치며 들려왔다.

분명 소백주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는 봄날 꽃잎에 앉은 벌의 날갯짓이나 나비의 소리 없는 펄럭임처럼 투명하고 맑아 그 목소리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김선비는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허! 허흠! 그대의 혜안이 각별하여 마음에 들었다면 그게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김선비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두르고 겸양을 갖춰 말했다.

“그래요 선비님, 감사합니다. 주제넘게 제가 한마디 묻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소백주가 김선비를 이제 면접시험을 치르려는 것일까? 김선비는 그 말에 저 기생 소백주가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려나 하고 당황 했으나 예서 멈칫거릴 수는 없었다,

“어 허흠! 내 비록 견문이 짧다고는 하나 어찌 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선비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좋아요! 선비님, 기꺼이 받아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럼 질문을 드리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는 네 가지 삶의 유형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아시는지요?”

김선비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당황했다. 네 가지 삶이라? 그게 무엇일까? 도대체 저 기생 소백주가 무슨 답을 원하는 것일까? 도무지 그 마음을 김선비는 헤아릴 길 없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었다, 김선비는 속으로 끙! 하고 신음을 토했다. 기생 소백주의 질문이 여러 인생살이의 유형을 물을 만큼 심오할 줄이야 꿈에나 생각했겠는가?

김선비는 저 여인이 참으로 특별한 여인은 여인이구나 생각하고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42)선우후락(先憂後樂)

그림/이미애(삽화가)

“으음! 인류의 역사 이래로 네 가지 삶의 유형은 이와 같소. 첫째는 공자를 필두로 하는 유가(儒家)의 삶이요. 사람의 본성을 밝혀 인의정치를 통해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실현하는 것이요. 둘째는 묵자를 필두로 하는 묵가(墨家)의 삶인데 그들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고 약자를 위한 봉사의 삶을 살며 공리(公利)를 실현하는 것이요. 셋째는 노자를 필두로 하는 도가(道家)의 삶인데 이들은 인위를 거부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요. 넷째는 석가를 필두로 하는 불가(佛家)의 삶인데 모든 삶의 무상(無常)을 체득하고 해탈(解脫)을 실현하는 것이요. 이런 네 가지 삶의 유형이 현재까지 인류가 발견한 인간 삶의 전부로 알고 있소.”

김선비는 힘주어 말했다.

“역시 글을 읽은 선비님이십니다. 그러나 저 같은 기생에게는 그게 맞지 않지요.”

소백주의 낭랑한 목소리가 대발 저쪽에서 들려왔다. 그렇다면 기생에게는 무슨 네 가지 삶의 유형이 있는 것일까? 김선비는 소백주의 말에 흠칫 놀라며 조용히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생 소백주의 음성이 다시 김선비의 귀 고막을 울려왔다.

“세상에는 첫 번 째로 기생을 업신여기면서도 기생을 가까이 하여 쾌락적으로 이용하려는 삶이 있고, 두 번째로는 기생을 업신여기며 사람으로 취급하려 하지도 않고 짐승대하 듯 하는 삶이 있고, 세 번째로는 기생을 불쌍히 여겨 동정을 하려는 삶이 있고, 네 번째로는 기생을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함께 하려는 삶이 있지요. 선비님께서는 제 말의 뜻을 잘 아시겠지요?”

소백주의 그 말을 들은 순간 김선비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기생 소백주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길에서 이미 세상의 허상과 삶의 모순과 오묘한 깊이를 모조리 헤아리고 있었다. 김선비는 역시 소백주로구나 생각하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으음! 참으로 옳으신 말씀이구려! 내 아직껏 유가도 묵가도 도가도 불가도 다 터득하지도 못했고 동경(憧憬)만 할 뿐 또 그러한 삶을 살아보지도 못했다오. 다만 저 북송조의 선비 범중엄 선생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밝힌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낙이락여!(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천하 사람들에 앞서서 근심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하라’ 희!미사인, 고수여귀!(噫! 微斯人, 吾誰與歸!) 아! 이런 사람들 없었다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배우고 살아갈 것인가? 라고 했는데 내 비록 재주가 모자라서 뜻을 펼치지는 못하였으나 그 범중엄 선생의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이 바로 선비의 정신이라 여기고 살아간다오. 그런 정신 속에 어찌 빈부귀천(貧富貴賤)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순간 김선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을 가르고 쳐져있던 기다란 대발이 스르륵 올라가더니 소백주의 낭랑한 목소리가 오뉴월 이른 새벽 푸른 풀잎에 이슬 구르듯 흘러 나왔다.

“서방님! 소녀 절 받으십시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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