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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39/40 <제4화>기생 소백주 (39)허망한 수작질 <제4화>기생 소백주 (40)단꿈

by 까망잉크 2023. 5. 20.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39)허망한 수작질

입력 2020. 12. 16. 16: 35

그림/이미애(삽화가)

그것은 어느 시대를 불문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는데, 기생 소백주 그녀는 그것을 획득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남편으로 삼을 사내를 고르는데 다름 아닌 시를 써내서 그것이 마음에 들면 선택하겠다는 것은, 소백주 스스로가 자신의 사랑의 선택에 적극적인데다가 세속의 이권과는 전연 영합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사내의 파릇한 정신과 인생을 살아가는 낭만을 아는 그 어떤 경지를 시험해 보겠다는 것이었기에 참으로 각별했다. 여느 대갓집 가문 좋은 양반 문벌 귀족의 권력과 부와 지위를 두루 갖춘 능력 많은 정숙한 규수들과는 절대로 비길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신분제도가 엄격한 그 시대를 한편으로 마음껏 우롱하면서 뭇 사내를 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소백주는 멋을 아는 여인이었고, 그 시대의 허상을 꿰뚫고 있었고, 더구나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속의 권력과 지위와 재물과 영합해 오직 남편과 자식의 출세만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는 세속 여인들의 영악함과 고단함이 기생 소백주에게는 있을 수 없었다. 아니 기생에게는 그런 욕망이 절대로 허가되지 않은 사회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소백주는 오히려 여인으로서 자신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 갈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일하는 아낙에게 술값이라며 썼던 글을 들려 보낸 김선비는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하루 종일 걸어 겨우 수원에 도착하여 기생 소백주의 희한한 시험으로 저녁을 때우긴 했으나 이 낯선 땅에서 어디 가서 캄캄한 밤을 지낼 것인가 다음일이 막막하였다. 글이란 것이 본래 어린애들 산수 시험처럼 정답이 적확하게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기만 갖추어진 다음에는 모조리 읽는 사람 마음이고 보면 저 과거시험만큼이나 허망한 수작질도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저 기생 소백주가 훌륭한 인품을 지녀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봐주고 챙겨주는 지혜롭고 너그러운 사람도 아닌 바에야 자신보다 몇 배나 뛰어났을 글 잘하는 지위 높은 선비들이 이곳에 들락거려 별의별 명문을 들이밀어 넣었을 것이건만 속속들이 퇴짜를 맞았다고 보면 자신 또한 결과는 빤한 것이었다.아마도 저 기생 소백주는 조선의 문장가란 문장가를 다 제 집안으로 불러들여 퇴자를 쾅쾅 먹이며 그들을 희롱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세상의 최 하층민인 기생의 존재를 보란 듯이 드높이며 알량한 사내들의 탐욕의 속살을 백일하에 발기발기 발가벗겨 세상에 들어내 보이며 그들을 송두리째 싸잡아 비틀어 비웃고 우롱하면서 말이다.

“보아라!?이놈 사내들아! 고작 네놈들이 운 좋게 좋은 집안에서 나고 자라 호의호식 글을 배웠다고 한들 한갓 기생 년 치마폭에 나가떨어지는 그렇고 그런 추저분한 속물들 아니었더냐!?호호호호호!........”<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40)단꿈

그림/이미애(삽화가)

그러고 보면 김선비 자신은 이 같은 허망한 수작질에 잠시 놀아나 퇴자를 먹더라도 처지가 좀 덜한 편이었다. 벼슬을 돈 주고 사려한 극한 수렁에까지 나가떨어진 주제에 그것도 성사 시키지 못하고 집안까지 말아먹었으니 저 기생에게 궂은 속을 보여 한 끼 허기를 면한 것쯤이야 치욕이라 할 것도 없었다.

“과거에 급제도 못하였고, 벼슬을 하지도 못했기에 지킬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무슨 체면이 남아있다고 헛된 망상을 이리 붙잡겠느냐!”

소백주의 깔깔거리는 웃음이 번뜩 뇌리에 스쳐오고 그 집 문을 터덜터덜 쫓기듯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김선비는 나지막이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며 아득히 눈을 감았다.

한 동이 술을 들이 켠 탓으로 그 취기가 한껏 올라 거의 신선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정신 속으로 곧이어 떠나갈 깜깜한 낯선 밤길이 걱정되었건만 김선비는 그만 꾸벅꾸벅 잠이 몰려들었다. 하루 종일 고단하게 걸어온 몸이 노곤하게 풀어지며 자꾸 눈꺼풀이 무거워졌던 것이다.

그렇게 얼핏 찰나의 잠에 빠졌던 것일까! 어두컴컴한 의식 바깥으로 봄밤의 별이 가득 하늘을 채우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이 밤 꽃잎 지는 아름다운 광경이 달빛에 스치는 것이었다. 거기 아름다운 선녀 같은 여인이 방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꿀 향내 가득한 옷섶에서 흠흠 건강한 계집의 진한 살 향내가 물씬 풍겨오는 것이었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계집의 보드라운 살 향내인가! 집 떠나고 그새 삼년 남의 집 사랑방에 머물며 이냥 홀로 나이만 먹어왔지 않은가! 김선비는 코끝을 향내 나는 계집의 옷섶 깊숙이 박으며 슬그머니 눈을 떴다.

“선비님! 어서 일어나세요!”

언뜻 잠든 새 단꿈을 꾸었단 말인가? 번쩍 눈을 뜨고 보니 일하는 아낙이 앞에 서있었다. ‘이제 낙방 하였으니 이 집을 어서 나가라는 것이로구나!’ 생각하고 김선비는 쓴 입맛을 다시며 끙! 하고 신음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어디로 발길을 돌려 밤이슬을 피해 한데 잠을 자고 또 길을 떠난단 말인가? 마음에서 온갖 고민이 뒤 헝클어져 사납게 샘솟았다.

“선비님! 어서 방으로 드시랍니다!”

‘어엉! 시방 뭐라고 했나? 방으로 드시라니!’ 순간 김선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과연 자신의 글이 오뉴월 불어오는 훈풍처럼 아니면 달빛에 스치는 밤 꽃잎처럼 소백주의 마음을 한바탕 뒤 흔들어 놓기라도 했단 말인가!

“어 어흠! 그 그게 무 무슨 말이더냐?”

김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일부러 태연을 가장하며 일하는 아낙을 보고 말했다.

“안주인께서 선비님을 어서 안으로 모시랍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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