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43)봄밤의 혼례식
입력 2020. 12. 22. 18:41
![](https://blog.kakaocdn.net/dn/c0Rwbd/btsdZp7UlCX/8iYsYKexWfDUS0Hl9T2SnK/img.jpg)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다홍치마에 청색 저고리를 입은 화사한 젊은 여인이 김선비를 향해 무릎을 꿇고 단정히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자리에 오르고서도 뜻을 지키는 이를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뜻을 지키고 사는 무명(無名)의 선비가 더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서방님!”
고운 얼굴의 아리따운 여인이 말을 이었다. 그녀는 바로 소백주였다. 절을 마친 소백주가 순간 눈앞에서 쓱 사라져 버렸다.
“허어! 그 참!........”
저만큼의 정신을 지닌 여인이니 기생이면서도 천하 사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 아니었겠느냐고 김선비는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탄성을 지르면서 말문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때 김선비 앞으로 일하는 아낙이 새로 지은 옷 한 벌을 들고 나타났다.
“주인아씨가 선비님과 오늘 밤 정식으로 혼례식을 올리시겠답니다. 옷 갈아입으시고 사모관대를 입으시고 마당으로 나오십시오.”
일하는 아낙의 말을 들은 김선비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비로소 알아챘다. ‘흐흠!....... 글을 배워 벼슬살이를 하지는 못했지만 계집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 계집의 서방이 될 운은 있었나 보구나! 아무렴 어떤가! 이 지경에 이른 마당에 뭇 사내들이 안고 싶어 안달인 조선 최고의 기생 소백주를 아내로 얻어 그녀의 서방이 되는 것도 과히 싫은 일은 아니로고!........’
이렇게 생각한 김선비는 입었던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의기양양하게 내준 새 옷을 잽싸게 갈아입었다. 새 옷을 걸치고 사모관대를 입고 나니 글줄이나 읽는다는 연약한 서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위풍당당한 제법 근사한 사내로 탈바꿈을 하는 것이었다. 벼슬이라도 하나 꿰차고 이렇게 사모관대를 걸치고 고향에 금의환향 했더라면 금상첨화이겠건만 그런 운명은 김선비에게는 아직 없었다.
그렇다고 조금도 서운해 할 일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의 글이 소백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지금쯤 수원 밤거리 어디를 헤매며 잠자리가 될 만한 남의 집 문전을 기웃거릴 처량한 강아지 신세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잠시 후면 내로라는 조선의 글 잘한다는 선비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오로지 단 한 사람으로 선택된 김선비 자신이 조선 최고의 기생 소백주를 품에 안고 이 한밤 격렬한 사랑을 나누며 지새울 것을 생각하면 이것 또한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행운인 것만은 분명했다.
안마당에 청사초롱 홍사초롱 불 밝혀 켜지고 때마침 살구꽃 흩날리는 봄밤에 달은 휘영청 밝으니 혼례식 치르기는 그만한 밤이었다. 긴 덕석 깔려진 가운데 대례상이 놓아져 있는데, 어디서 잡아왔는지 암탉수탉이 한 쌍 묶여있고 밤 대추가 가득히 담겨져 오늘밤 탄생할 부부의 백년가약을 축복하고 있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44)백년가약
![](https://blog.kakaocdn.net/dn/QG9Mw/btsd1jk0sec/4BT7IVvkqM92NndIJyyZxk/img.jpg)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초례청이 다 꾸며지자 새신랑이 된 김선비는 준비해준 기러기를 싸안고 집안에서 일을 하는 사내들을 둘을 거느리고 밖으로 나갔다. 김선비는 마당가에 피워둔 짚불을 건너 뛰어 넘어 안방 문 앞에 준비해둔 상에 기러기를 놓고 두 번 절을 했다. 기러기를 전달하는 전안례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백 살을 먹도록 오래 산다는 기러기는 짝을 잃어도 홀로 사는데 이는 사랑의 언약을 영원히 지킨다는 것을 상징했다. 또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는 상하의 예를 잘 지키며 어디를 가도 흔적을 남기는데 이는 훌륭한 삶의 업적을 남기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소백주의 어머니가 없는 탓에 대신 집안일을 보는 늙은 할미가 기러기를 받아 안고 들어갔다.
다음은 교배례였다. 초례청 동편에 우뚝 선 늠름한 자태의 김선비는 어흠! 헛기침을 하며 신부 소백주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잠시 후 물빛 뽀얀 볼에 불타는 듯 고운 진달래 꽃빛 연지 곤지를 찍은 천하의 미색 신부 소백주가 족두리 쓰고 원삼 입고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나오는 것이었다.
달빛에 고요히 어리는 한 마리의 화려한 공작새처럼 눈부시게 장식한 신부 소백주는 마치 천상에서 막 하강한 선녀와 같았다. 김선비는 소백주의 아름다운 자태를 본 순간 눈앞이 아득해오는 희열을 가슴깊이 맛보는 것이었다. ‘과연 조선 최고의 미색 소백주로구나!’ 김선비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만족의 미소를 입가에 쓱 흘렸다. 그것은 무슨 기대감에 대한 흡족함의 표현이었다.
서로 맞절을 하러 가린 얼굴을 들어낸 소백주의 얼굴을 김선비는 놓치지 않고 유심히 바라보았다. 달빛아래 비추는 소백주의 고운 얼굴은 하얀 달덩이 그대로였다. 뽀얀 살결에 둥근 이마. 반짝이는 눈빛은 과연 소백주가 절세미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서로 맞절을 하고 교배례는 끝이 났다.
이제 합근례 차례였다. 둘로 나눈 표주박에 술을 채우고 서로 마시는 것이었다. 첫째 잔은 지신(地神)에게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고수레로 바치고 둘째 셋째 잔은 부부가 서로 화합하라는 의미로 나누어 마시는 것이었다. 둘째 잔이 김선비에게 오고 셋째 잔이 소백주에게로 갔다. 김선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백주를 바라보며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소백주의 붉은 앵두 같은 불타는 입술이 새하얀 술잔에 닿자 그만 투명한 술이 일순 발갛게 빛나는 것이었다.
그 술이 소백주의 붉은 입술 속으로 서서히 흡입하듯 타고 들어갔다. 부부가 될 것을 백년가약(百年佳約)하는 혼례식을 마친 그날 밤 드디어 첫날밤을 맞이하기 위하여 김선비와 소백주는 함께 방안으로 들었다.
등잔불심지가 발간 방안 아랫목에 탐스러운 비단이불로 잠자리가 보아져 있었고 윗목에 조그마한 술상이 놓아져 있었다. 부부가 첫날밤을 치를 때 마신다는 합환주였다.
김선비는 뜻하지 않게 조선 최고의 미인을 얻어 혼례식을 치르고 그녀와 함께 뜨거운 이 봄밤을 보내게 된 것을 생각하니 이것이 온통 꿈만 같았다. <계속>
출처:남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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