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57)옹기장수
입력 2021. 01. 13 18: 55
![](https://blog.kakaocdn.net/dn/df5RrZ/btsius56fGp/opwkCNTKQtOzlcBkjQL0MK/img.jpg)
그림/이미애(삽화가)
세월은 흘러 그새 십여 년, 그럼에도 다행히 못생겼다는 그 정씨 부인에게 간간이 잠자리는 하였던지 아이들을 다섯이나 낳아 기르고 있었다.
수캐골이라 해서 그랬을까? 개들이 새끼들을 많이 낳아 기르기도 하는 것인데 참 홍수개가 자녀복은 있는가 보았다.
아버지 홍진사가 죽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고 이제 홍수개도 마흔 줄에 들어섰다. 그 많던 재산을 거의 다 그 짓으로 탕진해 버리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반드시 품에 안고야 말던 홍수개도 바깥출입이 현저하게 잦아들었다. 못생겼다고 대놓고 악다구니를 쓰고 포악을 하던 터라 시집 온 후로 속을 끓이며 살던 정씨 부인은 이제 남편 홍수개가 마음을 다 잡고 속이 좀 들었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터였다.
그해 겨울 아버지 홍진사의 제삿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 수캐골로 웬 소달구지가 하나 들어오고 있었다.
해마다 추수 끝난 이맘때면 들어오는 옹기장수 달구지였다. 가지고 온 옹기와 농부들이 추수한 곡식을 바꿔 가는 것이었다.
항상 늙은 옹기장수 부부가 소달구지에 갓 구워낸 빛나는 항아리들을 지푸라기 더미로 괴고 새끼줄로 묶어 싣고 와서 마을 어느 집 사랑방에 유숙하며 서너 날 물건을 팔고 가던 터였는데 이번에 소달구지를 끌고 수캐골로 들어온 옹기장수는 스물을 갓 넘긴 부리부리한 눈망울에 눈썹이 짙고 각진 턱을 가진 파릇한 젊은이였다.
더구나 그 옹기장수가 데리고 같이 온 아낙은 그 젊은 옹기장수의 아내인 듯 했는데 큰 키에 허리가 야들야들 버드나무 늘어진 듯 한대다가 볼에 홍조가 피어 마치 춘삼월에 복숭아꽃이 발갛게 물오른 듯 고왔다. 찬바람이 불어서 추운 날씨라 솜옷을 걸쳐 입었는데 풍만한 젖가슴 깨며 치마를 두른 엉덩이가 풍만해 보였다.
그 젊은 옹기장수 달구지를 마침 아버지 홍진사 제사 지낼 돼지를 잡을 요량으로 골목에 나온 홍수개와 맞닥뜨렸다. 홍수개는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 항아리 달구지를 끌고 오는 황소 고삐를 잡은 젊은 옹기장수에게 눈이 가서 박혔다.
“허 허흠!”
홍수개는 사납게 헛기침을 했다. 좁은 골목길에 황소를 몰고 들어오는 옹기달구지가 길을 막은 것에 순간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솜옷에 짚신을 신은 젊은 옹기장수는 황소 고삐를 붙들어 잡고 피하려하였으나 피할 곳이 없었다. 그 길을 지나가야 홍진사 집 뒤에 자리한 너른 당산 느티나무 아래에다 옹기달구지를 쉬어놓고 물건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구! 어르신 길을 막아 미안하구만요!”
그때 야들야들한 물젖은 젊은 여인네의 목소리가 달구지 뒤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반상의 차이가 분명한 세상에서 한갓 옹기장수 따위가 감히 수캐골의 대장 홍수개 나리의 행차를 막으려 하다니 기분이 팍 상해 ‘이놈아! 어서 썩 길 비켜라!’ 하고 성질 내키는 대로 사납게 악다구니를 쓰고 찢어 발겨버리려 했는데 그만 꾀꼬리 같은 목소리에 홍수개는 순간 ‘이게 뭐야!“ 하고 두 눈이 번쩍 틔었던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홍수개의 눈에 들어온 그 여인은 홍수개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버렸던 것이다.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58)옹기장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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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삽화가)
홍수개는 그 여인의 얼굴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것은 정말 봄바람에 피어나는 붉은 기운 올라 발갛게 자태를 나타내는 한 송이 복숭아꽃이었다. 고요한 호수에 맑은 여울을 차고 날아올라가는 청둥오리처럼 맑게 빛나는 눈동자에 진달래 꽃잎처럼 부끄러운 뽀얗게 물든 뺨에서 마치 건강한 젊은 여인네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홍수개는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저 형편없는 옹기장수 주제에 제법 근사한 각시를 달고 다니는구나! 절대로 그래서는 아니 되겠지! 아암! 그럼 그렇지!’
홍수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불꽃처럼 타오르는 욕망을 억누르며 재빠르게 계책을 궁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하릴없이 못생긴 꽃잎 져가는 마누라나 쳐다보고 지내기가 짜증이 났고 그렇다고 멀리 사람들 많은 거리로 나가 만판 즐기며 지낼 엽전도 이제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런 어여쁜 꽃이 제 발로 굴러 들어왔으니 수캐골의 천하 난봉꾼 홍수개가 가만 둘리가 있겠는가 말이다.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면 조선의 양녕이라던가 누구라던가 하는 왕자가 그랬다고 하던데 유부녀든 처녀든 혈족이든 누구든 가리지 않고 갖은 수작을 다해 제 품에 안고야 말았다고 하는데 한갓 옹기장수 아내쯤이야 홍수개에게는 식은 죽 먹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허! 허흠! 옹기가 아주 좋네 그려! 이 옹기 다해서 얼마인가?”
홍수개는 속으로 저 옹기장수 각시를 빼앗아 차지할 갖은 수작을 재빠르게 셈하며 얼른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런 생활고에 시달리는 푼돈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들의 환심을 사려면 우선 돈냥부터 던져주고 볼일이었던 것이다. 아니다. 돈냥이 많음을 과시하며 틈을 내보이며 찰싹 달라붙게 수작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아이구! 어르신! 그 말씀 지지......... 진 진짜입니까?”
홍수개의 말에 반색을 하고 비명을 지르듯 말하는 것은 오히려 젊은 옹기장수였다.
“이놈아! 너는 속고만 살아왔느냐! 너 지금 감히 누굴 의심하려 드는 것이냐!”
홍수개는 날카롭게 눈을 치뜨며 젊은 옹기장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의심의 뭉치를 절대로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애초에 싹을 확 분질러 잡아 꺾어 대번에 짓밟아버려야 했던 것이다.
“아이구! 어르신 아닙니다요! 아이구 잘못했습니다요!”
달구지 황소 고삐를 잡은 젊은 옹기장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수그리고 말했다.
“좋다! 그럼 나를 따라오너라!”
홍수개는 아버지 제사에 쓸 돼지를 알아보려고 아랫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자기 집 마당으로 그 옹기달구지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일단 사냥을 해서 맛나게 시식을 할양이라면 집안으로 깊숙이 끌어 들여놓고 그 다음 수를 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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