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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61)폭풍전야 <제4화>기생 소백주 (62)연막(煙幕)

by 까망잉크 2023. 6. 7.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61)폭풍전야   

입력 2021.01. 19 17: 00

그림/이미애(삽화가)

홍수개의 분부를 받은 옹기장수가 지게에 짚을 깔고 새끼줄로 옹기 짐을 단단히 묶어 짊어지고 품속에 편지를 간직하고는 한손에 작대기를 들고 대문을 향해 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요.”

대문까지 친절하게 따라가 배웅을 해주는 홍수개를 보며 옹기장수가 말했다.

“그래, 험악한 산길에 몸조심하고 날 저물면 그 집에서 자고 오거라! 옹기 값은 두둑이 달라고 했으니 잘 받아오고 편지 꼭 전해주거라!”

홍수개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잘 알겠습니다요”

옹기장수가 말을 마치고는 발길을 재촉했다.

“아참! 너 산길에 호랑이 조심해야 한다 알았지!”

홍수개가 떠나가는 옹기장수의 뒤통수를 보고 말했다. 그 말을 옹기장수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대답도 없이 그냥 가는 것이었다.

홍수개는 발길을 돌려 집안으로 향했다. 남편이 옹기지게를 지고 가자 옹기장수 아내가 부엌에서 전을 지지고 있다가 옹기지게에 옹기를 묶는 것을 도와주고는 대문 앞까지 따라 나와서 말도 못하고 서 있다가 돌아서는 홍수개와 눈빛이 마주쳤다.

“어허! 너무 걱정 말게! 잘 다녀오겠지!”

홍수개가 옹기장수 아내를 은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 예!......”

옹기장수 아내가 화들짝 놀란 눈빛으로 홍수개를 피해 얼른 발길을 돌려 부엌을 향해 갔다. 홍수개는 옹기장수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야수 같은 눈빛을 흘기며 혼잣소리를 했다.

“으음! 그새 저 솥단지가 뜨거워졌단 말인가! 허! 바야흐로 폭풍전야(暴風前夜)로다! 허! 허흠!”

밤송이의 귀찮은 가시를 따 훌렁 벗겨버린 홍수개는 이제 토실토실한 미끈한 밤알을 손에 움켜쥐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남모를 미소를 삼켜 무는 것이었다.

그날 밤 진수성찬의 제사상을 차리고 자시(子時)가 되어 제사를 다 지내도록 산 너머 마을로 배달을 나간 옹기장수는 홍수개의 예상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곳에서 밤을 만나 하룻밤을 지내고 올 양이었다. 홍수개는 아버지 홍진사의 지방(紙榜)을 써서 붙여놓고 격식에 맞춰 제사를 지냈다. 분향(焚香)을 하고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 정씨 부인과 자녀들까지 대동해 정말로 극진한 효자라도 된 양 정성껏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62)연막(煙幕)

그림/이미애(삽화가)

제사를 다 지낸 홍수개는 아버지 지방을 마루로 나가 불살라 태우고 가족들에게 음복(飮福)을 하라며 음식을 나누어 먹도록 했다. 그리고 홍수개 자신도 서너 잔 술을 들이켰다. 제사 음식을 마련하느라 며칠 동안 힘들었을 가족들이라 깊은 밤중에 남이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잠에 곯아 떨어져버릴 한밤중 그 시간을 홍수개는 노리고 있었다.

적을 공략할 때 팔팔하게 힘이 넘치는 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잘 알 것이었다. 강한 적이 스스로 힘이 팔려 쓰러져 넘어질 때 까지 쉴 틈을 주지 않고 괴롭히는 것, 그게 바로 강적을 쓰러뜨려 이기는 최상의 전략이었다.

더구나 어여쁜 아녀자를 불시에 품에 안고 맘껏 즐기려 한다면 주변을 쥐 죽은 듯이 모조리 잠재워 버려야 했다. 홍수개는 아버지 홍진사의 제삿날이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분주함 속에서 모조리 피곤에 절어 쓰러져 버리는 그 고요함을 틈타 옹기장수 아내마저 죽은 듯이 잠들어 버리는 그 틈을 노려 자신은 너무도 손쉽게 욕망을 채워 버리는 것이었다.

강한 적이 공격해오면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줄행랑을 쳐라. 공격하는 적이 지쳐 쉬면 쉬지 못하도록 거짓 공격을 가장하여 방해하라. 다시 적이 공격해오면 줄행랑을 쳐라. 그러다가 적이 지쳐 쉬거들랑 한꺼번에 공격하여 섬멸하라!

어려운 손자병법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방면으로 닳고 닳아온 난봉꾼 홍수개는 연약한 여인 하나쯤 품에 넣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웠던 것이다. 홍수개에게 여인의 정절이나 의사 따위는 도무지 해당 밖의 사항이었다. 언제나 오직 자신의 욕망만 존재했고 그것이 항상 삶의 최우선이었다.

홍수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각,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헤아리며 날카로운 신경 줄을 놓지 않은 주도면밀함을 나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제삿날이 아닌 평상시라면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을 것이기에 정씨 부인이나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 더더욱 저 토실토실한 먹잇감인 옹기장수 아내의 눈을 속여 방심시키기 어려웠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어지럽고 분주하고 피곤하다는 것이 곧 깊은 안개 속 연막(煙幕)이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 홍진사의 제사가 끝나고 모두 다 잠든 깊은 한밤중, 그 암흑의 시간 홍수개는 일어났다. 드디어 행동 개시의 시간이었다.

홍수개는 정씨 부인이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두운 방을 슬그머니 빠져나와 집 뒤 옹기장수 아내가 잠들어 있을 오두막으로 향했다. 이미 그 집에서 사는 할머니에게는 밤에 제사 음식을 싸가지고 나가 마을 친척 집으로 가서 먹고 자고 오라고 은밀히 지시를 내렸던 것이었다. 물론 홍수개는 그 방의 문고리도 걸어 잠글 수 없도록 낮에 미리 용의주도하게 슬그머니 고장을 내 놓았던 것이다. 홍수개는 정말로 발정한 수캐가 되어 이 밤에 남의 집 담장 아래 뚫린 개구멍을 아무도 몰래 기어들어가 암캐와 달콤하게 흘레붙는 그런 수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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